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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ul 05. 2021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보았을 연극




     내가 마지막으로 연극을 본 것이 작년 11월이고, 마지막으로 연극에 대해 글을 쓴 것은 작년 12월, 그러니까 장장 7개월 가까이 연극을 보지도 연극에 대한 글을 쓰지도 않았다. 코로나는 진정될 기미가 없었고 나는 자칭 연극 애호가이기는 하지만 코로나에 걸릴 최소한의 위험마저 감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확진자 100명 이하]를 연극 관람을 위한 기준으로 정해놓았는데 요즘도 800명 가까이 찍고 있으니 이제는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이다. 사실 처음에는 좀 안달이 나더니 한편으로는 속이 편하기도 하다. 연극을 보기 위해 길바닥에서 소모해야 하는 왕복 4시간의 시간과 번거로움이 나에게는 고행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공연을 보는 시간까지 합하면 6-7시간 정도를 꼬박 부담해야 하는데, 그것을 일주일에 1번씩 많게는 2번씩 해왔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다소 객기와 집착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연극을 보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 연극을 보지 않아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기분 전환, 기껏 해봐야 그 정도가 아닌가. 기분 전환. 그러나 나는 연극 관람 외에는 기분 전환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오랫동안 기분 전환을 하지 못했다. 물을 내릴 수 없는 고장 난 변기에 계속 배설을 하는 - 뭐, 사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 그런 비슷한 기분. 고여있고, 막혀있고, 갇혀있는 기분. 그래서 요즘 들어 슬슬 인터파크를 보며 보지도 않을 연극을 골라보는 괴벽이 생겼다. 만약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분명히 보았을 연극들을 살펴보며 어떤 연극일까 공상해보는 것이다. 사실 소풍은 가기 전날이 가장 즐겁고, 책은 표지가 가장 재밌는 것처럼 홍보 페이지를 뒤적이며 어떤 연극일까 짐작해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그래서 여기에 보고 싶은 연극 몇 편을 정리해 보았다. 내가 연극을 고르는 기준은 딱히 없다. 좋아하는 작가, 연출가, 배우도 없고 관람평도 믿지 않는다. 다만 지나치게 특정 장르적이거나 노골적으로 이념적 혹은 시사 고발적인 건 피하고, 관객을 교육하고 계몽하려는 목적이 뚜렷한 연극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실험성이 엿보이거나, 내적인 완성을 기대할 수 있거나, 그냥 왜인지 모르지만 입맛이 당기면 크게 재지 않고 선택하는 편이다. 고급 정찬도 좋고 불량식품도 좋은데, 어쨌든 칭찬하거나 욕할 거리가 무언가는 있어야 한다. 






연극 : 빈센트 리버

공연장소 :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공연기간 : 2021년 04월 27일 ~2021년 07월 11일



     동성애가 주제인 연극은 지나치게 교훈적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당연한 가르침을 받기 위해 1시간 넘게 앉아 연극을 보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특히 동성애자와 그 부모가 나오는 이야기는 더더욱 피하게 되는 데, [동성애자도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입니다] 따위의 뻔한 감상적 슬로건을 되새길 마음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관계나 사회의 모순과 혼란을 훌륭하게 표현한 '동성애' 연극들도 많기 때문에, 그리고 이 연극이 제법 진중한 분위기인 것 같아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연극 : 하늘은 위에 둥둥 태양을 들고

공연장소 : 스튜디오 76 극장

공연기간 : 2021년 07월 02일 ~ 2021년 07월 11일



     이 연극을 선택한 이유는 조금 애매한데, 이 연극의 시놉시스가 대체 어떻게 연극으로 구현될지 궁금했기 대문이다. 소설로는 딱히 새로운 감성이나 내용은 아니지만 이 미묘하고 정적인 내적 압력을 어떻게 무대 위에서 표현하려는 것일까. 엄청 괜찮거나 엄청 구리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인데, 사실 이런 연극의 열에 아홉은 구리기 마련이다. 매우 날카롭고 예리한 감각이 요구되는 이 시도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한 번 보고 싶다.










연극 : 코리올라누스

공연장소 : LG아트센터

공연기간 : 2021년 07월 03일 ~ 2021년 07월 15일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책으로도 공연으로도 접한 적이 없다. 혹자는 셰익스피어 최고의 비극이라고 치켜세웠다고 하니 속물 같지만 챙겨 보고 싶어 진다. 어쨌거나 셰익스피어 작품은 웬만하면 중타는 치기 마련이고 최소한 분노를 유발할 수 있으니 괜찮다.


   







연극 : 믿을지 모르겠지만

공연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공연기간 : 2021년 07월 15일 ~ 2021년 07월 18일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 형식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여러 인물을 어떤 개기로 (혹은 어떤 핑계로) 한 장소에 모아놓고 각각의 아픔과 고통을 조망하는 식이다. 가장 단순하고 쉬운 방식에, 상상력 결여에, 진부하고, 지루하고, 교훈적이기 십상이다. 이 연극도 얼핏 그런 것 같아 지나치려고 하려다가 일단 포스터가 내 눈길을 끌었고, 각각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에 흥미로운 밀도와 갈등의 여지가 있어서 선택하게 되었다. 이런 연극은 작가의 역량에 크게 좌우되기 마련으로, 번지르르하고 그럴듯한 유행어 미사여구 그 안 깊은 바닥까지 닿을 수 있을 것인가. 한 번 지켜보고 싶다.







  


연극 : 뤼송

공연장소 : 뜻밖의극장

공연기간 : 2021년 07월 02일 ~ 2021월 07월 25일



     위에서 딱히 작가로 연극을 선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러고 보니 이오네스코의 연극은 되도록 보려고 하는 편이다. 그의 [수업]은 내가 꽤 좋아하는 희곡으로 이미 여러 번 연극으로 보았지만 또 한 번 보는 수고를 결코 마다할 생각이 없다. 이 연극 제목인 [뤼송]은 아마도 '수업'의 프랑스 말인 모양인데, 왜 굳이 프랑스 말을 제목으로 했는지는 매우 미스터리하지만 뭐 크게 상관은 없겠지. 나는 주로 '교수'의 인물 표현과 해석에 집중해서 보는 편인데 이 연극에서는 '교수'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하다. 젊은 배우가 노인 분장을 하고 '교수'역을 맡는 것을 굉장히 혐오하는 편인데, 홍보 사진으로 보아 이 연극에서는 그렇지 않아서  여전히 노인은 아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배우의 남성성과 마초성이 강한 것처럼 보여서 염려가 된다. 희곡에서 '교수'가 '노인'인 이유가 분명히 있는데 대부분의 연극이 그것을 간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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