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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Aug 17. 2021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보았을 연극 - 2




연극 :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

공연장소 : 문화기축기지 T2

공연기간 : 2021년 08월 14일 ~2021년 08월 22일



     놀랍게도, 나는 이 연극을 예매했었다. 야외무대에 좌석도 띄엄띄엄 놓여있고 더구나 무언극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코로나 시대에 딱 맞는 연극이 아닌가. 무려 2년 만에 보는 연극으로 이보다 더 적당한 건 없을 것 같았다. 핸드폰으로 결제를 마치고 나는 정말 설레기까지 했다. 마치 처음 연극을 보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런데 며칠 뒤 하루 확진자가 2000명이 넘었다는 뉴스가 터져 나왔다. 나는 그 뉴스가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연극 예매를 취소했다. 5만 원의 티켓 값에서 무려 만 원의 취소 수수료가 빠져나갔다. 가만히 앉아서 만 원을 날려먹다니, 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나는 코로나가 절대 걸려서는 안 되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고 연극 관람 때문에 내 운을 시험해 보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은 [관객모독]으로 알려진 '패터 한트케'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이 희곡이 원래 무언극인 건지 - 연극 설명에는 [침묵극]이라는 표현을 썼던데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 아니며 무언극으로 재해석한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야외라는 현장과 맞물려서 꽤나 독특하고 묵직한 공연일 거라는 짐작만 해 볼 뿐이다. 혹시 며칠 만에 다시 확진자가 줄어들면 다시 예매를 해볼 생각이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은 더 악화되는 듯하다. 이 연극과의 인연도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연극 : 햄릿의 비극

공연장소 : 알과핵 소극장

공연기간 : 2021년 08월 26일 ~2021년 08월 29일




     [셰익스피어라]는 미끼에는 언제나 걸려든다. 허영이나 속물근성 때문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본전은 건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 썩어도 준치라고 [햄릿]은 기대를 걸어볼 가치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해석된 햄릿을 무수히 보아왔건만 만족스러웠던 적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 원작의 명성과 수준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심산에 불과했고, '재해석'이라는 미명 하에 오히려 원작을 희화화시키고 모욕하기 일쑤였다.  재해석은 자유지만 이런 대작을 재해석할 때에는 더 혹독한 평가를 각오해야 하는 법이다. 이 연극은 작품 설명에서 [인과적인 플롯이 아닌 몽타주 구성을 따른다. 악몽처럼 비약과 연상으로  전개되는 몽타주 구성의 작품은 관객의 상상력과 연상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관객의 주체성과 능동성을 강조했던 포스트모던 문화에서 탄생한 '마로위츠 햄리'처럼 '햄릿의 비극'도 관객의 머릿속에서 완성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내가 이 연극을 보러 갔다면 나로 하여금 칼을 갈도록 했을 것이다. 


  






연극 : An ILIAD

공연장소 : 알과핵 소극장

공연기간 : 2021년 06월 29일 ~2021년 09월 05일



     저번에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보았을 연극]을 쓸 때 왜 이 연극을 못 보고 지나쳤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 고대 그리스 복장을 하고 트로이 전쟁을 재현하는 서사극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일단 1인극이어서 흥미가 끌리고 전쟁을 노래하는 뮤즈라는 설정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다만 전쟁에 대한 얄팍한 감상과 도덕주의로 점철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전쟁은 나쁜 거, 뭐 이런 결말 말이다. 혹은 좀 더 신경을 썼다면 권력자들의 욕망에 희생당한 민초들의 애환과 죽음, 그러니까 전쟁은 아주 나쁜 거, 뭐 이 정도라든지. 만약 그 이상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재미있는 연극이 될 것 같다. 그나저나 관객평이 상당히 좋던데, 내 경험상 이런 경우 정말 좋은 연극이거나 정말 신파극이거나 둘 중 하나다. 과연 어느 쪽일지 기대가 된다.



    






연극 : 하녀들

공연장소 : 동숭무대 소극장

공연기간 : 2021년 09월 01일 ~2021년 09월 05일




     장 주네 [하녀들]의 연극은 할 때마다 거의 보는 편이다. 볼 때마다 재미가 있고 무엇보다 보고 나면 속이 시원하다. 뭐랄까, '정말 연극스럽다'라고 해야 하나. 게다가 이토록 여성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연극은 흔치 않다. 그건 모든 배우들이 여자라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약자의 뒤틀린 수동성과 은밀한 여성적 환상을 잘 포착했기 때문이다. 이 희곡은 실제로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당시 많은 석학들과 철학자들까지 달려들어 분석과 논평을 할 정도로 논란이 되었던 사건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장 주네만큼 그 사건의 속살까지 파고들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 [하녀들]이란 희곡이 탄탄하고 기발하기 때문에 웬만큼 연출가가 엉망이 아니고서는 연극을 망치기 힘드니 안심하고 볼 수 있다.  







연극 : 밑바닥에서

공연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공연기간 : 2021년 09월 04일 ~2021년 09월 19일




      개인적으로 러시아 희곡을 크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다소 고루하고 장황하며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문득 강렬하고 찬란한 한 순간이 있어서 다시 나로 하여금 공연장으로 향하게 하는 것 같다. 이 희곡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오래된 여관으로 모여드는 낡고 쓸쓸한 인물 군상들이 내 흥미를 돋운다. 희망이 없는 자들이 모여서 과연 어떤 얘기를 나눌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 희망에 대해? 혹은 희망이 존재할 수 없음에 대해? 다만 거기까지였다면 좋았을 텐데, 거기에 구원자가 등장해서 무언가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냄새를 피우기 시작한다. 만약 내가 이 연극을 보러 갔다면 제발 구원을 염원하는 촌스러운 기도는 하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연극 :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

공연장소 : 한양레퍼토리 씨어터

공연기간 : 2021년 09월 09일 ~2021년 09월 19일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이라는 희곡으로 말하자면 꽤나 파격적이면서도 동시에 꽤나 고루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파격이 파격적이지 못하고 다소 구구절절하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작가를 찾아온 등장인물들'이라는 설정이 나름 의미심장하고 흥미롭긴 하지만 그것을 날카롭게 벼리지 못하고 다소 순박하게 처리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쨌거나 한 인물의 가면 아래에 그 가면과 똑같은 인물이 있다는 2중 3중의 환상과 혼란이 다소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이 희곡을 연극으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서, 만약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꼭 보러 갔을 것이다.    








연극 : 카포네트릴로지

공연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공연기간 : 2021년 09월 14일 ~2021년 11월 21일



    홍보 자료에만 근거한다면 이 작품이 바로 내 기대작이다. 한 호텔방에서 각각 10년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세 가지 사건, 여기까지만 읽고도 나는 곧바로 티켓을 예매했을 것이다. 이 호텔방은 폭력과 욕망과 고독의 지옥이 되고, 이 곳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영원히 호텔방 안에서 헤매게 되겠지. 설사 그 호텔방을 나간 뒤에도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지옥 - 일 거라고 상상해 본다. 하지만 어쩌면 그저 잘 빠진 갱스터 스릴러 인지도 모르겠다. 마피아와 창녀와 경찰의 조합은 언제나 잘 팔리니까. 모르겠다.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고 그래서 더 구미가 당긴다. 어쨌거나 내 전투력을 - 어쩌면 분노도 함께 - 꽤나 높여주었을 작품이라는 건 분명하다.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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