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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Sep 30. 2021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보았을 연극 - 3



연극 : 리어왕

공연장소 :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

공연기간 : 2021년 10월 30일 ~ 2021년 11월 21일



     나는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소위 거장인 배우를 등장시킨 셰익스피어 연극이나 그리스 비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고, 만족스럽기는 커녕 쌍욕을 입에 물고 극장 문을 나서기가 대부분이었다. 그저 스케일만 키우고 고급스럽게 포장지만 둘렀을 뿐 - 셰익스피어나 그리스 비극의 광택은 얼마나 고급진가 - 정작 연극 자체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연극인 경우가 많았다. 티켓 값은 또 어찌나 비싼지, 티켓값과 연극의 질은 반비례하는 법칙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이 연극만 봐도 포스터에 이순재씨의 얼굴을 대문짝만 하게 올려놓고도 성이 차지 않아 '이순재의 리어왕'이라니... 이순재가 리어왕을 연기하는 것이냐 리어왕이 이순재를 연기하는 것이냐. 그러나, 어쨌거나, 나는 이 연극을 보러 갔을 것이다. 무려 9만 원이라는 티켓값을 지불하고서라도 말이다. 이순재와 리어왕 중 어느 쪽을 보러 가는 것이냐고? 아니, 당연히 이순재지. 리어왕이 과연 이 대단한 노배우보다 더 흥미로울까? 만약 무대 위에서 리어왕이 이순재 앞을 가로막는다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비키라고 소리칠 것이다. 내가 여러분께 단언컨대 이 연극 [리어왕]에는 리어왕이 나오지 않는다. 이 연극은 바로 그런 연극이다. (아마도) 









연극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공연장소 :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

공연기간 : 2021년 10월 12일 ~ 2021년 10월 31일



     뭔가 포맷이 익숙해서 찾아보니 예전에 이 연출가의 작품인 [대심문관과 파우스트]를 본 적이 있었다. 고전 소설에 대한 재해석, 같은 연출가에 같은 배우. 글쎄, 흥미가 돋기도 하고 흥미가 떨어지기도 한다. [대심문관과 파우스트]를 비교적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어쩐지 약간의 비슷한 다른 버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예술가가 스스로를 자기 복제하는 것만큼 씁쓸한 일도 없다. 그런 경우 그 예술가의 최고 작품 하나만 보면 될 뿐, 나머지를 보는 건 시간낭비가 된다. 글쎄, 이 연극은 어떨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이 연극을 보러 갔을 것이다. 일단 포스터는 자극적이다. 광대는 진부하고 광기는 가장 쉬운 공식이지만, 어쨌든 애피타이저로서 나쁘진 않다. 어, 그런데 뭐? 무려 7시간짜리 공연이라고?  일단  구미가 당긴다.  설사 그것이 관객석 한가운데서 7시간 동안이나 나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 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 아닌가. 1시간짜리 공연도 가지 못하고 있는 이틀에 걸쳐 7시간짜리 공연이라니, 불가능한 일이다. 그나저나 이 7시간이라는 공연 시간은 과연 내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코로나에 대한 신경증적인 반응일까. 흑사병이 돌았을 때 오히려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몰려다니며 춤을 추었다는 일화처럼 말이다.



      







연극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공연장소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공연기간 : 2021년 10월 08일 ~ 2021년 11월 21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먼저 영화로 보았지만 꼭 연극으로 보고 싶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매번 어긋나는 바람에 보지 못했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보지 못하게 생겼다. 일단 '잘 지은 제목 하나 열 작품 안 부럽다' 수준의 압도적인 제목이 인상적이다. 설사 내용이나 작품 배경을 전혀 모른다고 해도 이 제목 하나만으로도 나는 티켓을 예매했을 것이다. 거기다가 여성의 심리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흔치 않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기대가 된다. 사실 욕망이라면 우리도 하나같이 모두 전문가라고 자부할만하지 않은가. 야망도 사랑도 아닌 순수한 욕망의 구질구질함. 우리는 모두 하나 같이 욕망하지만 어째서 하나 같이 어긋나는 걸까? 아니, 어쩌면 반대로 우리는 모두 제각각인 것 같지만 하나같이 같은 걸 욕망하는 걸까? 과연 인간이 욕망의 본질인지, 욕망이 인간의 본질인지 한 번 따져볼 만한 일이다.  아, 그런데 코로나 시국에 다들 티켓값이 왜 이리 비싸단 말이냐. 연극을 보지 않는 내가 돈을 버는 느낌이네.








연극 : 블랙코메디

공연장소 : 스튜디오 76

공연기간 : 2021년 9월 30일 ~ 2021년 10월 10일



     

     시놉시스를 읽자마자 나는 이 작품에 곧바로 흥미가 생겼다. 가난한 조각가의 집에 한 날 한 시에 미술 수집가와 애인의 아버지가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 조각가는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옆 집 사람의 값비싼 물건들을 몰래 가져다가 자신의 아파트를 꾸민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직전 갑자기 아파트가 정전된다. 어둠 속에서 미술 수집가에게 자신의 조각 작품을 설명해야 하거나, 어둠 속에서 애인의 아버지에게 자신의 사랑을 설득해야 하거나, 어둠 속에서 값비싼 물건들을 보호해야만 하는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문학적으로나 연극적으로 흥미롭다. 가시적인 것들과 비가시적인 것들이 돌연 서로 자기주장을 하면서 무대는 소란해진다. 가면을 쓸 필요가 없는 어둠 속에서도 가면을 써야만 한다면 과연 우리 주머니 속에서는 어떤 가면들이 튀어나올 것인가. 모든 사물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언어는 마치 단단한 공처럼 자유롭게 무대 위를 굴러다닐까. 훤한 조명 밑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척 연기하는 배우들은 또 얼마나 뻔뻔하고 가식적일까? 상황적 아이러니와 언어적 아이러니와 연극적 아이러니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분명 크게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오늘 기대평을 올린 작품들 중에 이 작품이 가장 기대가 된다. 최소한 슬랩 스틱 코미디는 찰떡같이 보장되어있는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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