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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Nov 13. 2021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보았을 연극 - 4




연극 : 울트라월드

공연장소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공연기간 : 2021년 11월 25일 ~ 2021년 11월 27일



     궁금하다. 이 연극이 내세우고 있는 가상현실이니 로그인이니 현실의 경계니 하는 것들은 별로 기대가 되지 않지만 - 개인적으로 이런 주제를 다루는 연극에 대한 신뢰가 별로 없다 - 그냥 무작정 궁금해진다. 대체 무슨 연극을 하려는 걸까. 우선 강렬한 무대디자인이 흥미를 돋운다. 공개한 몇 장의 사진으로 보이는 무대는 해체적이면서 기계적이고 동시에 환원적인 느낌을 주는데, 어쩌면 이 무대 디자인이 이 연극의 전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대단한 무대디자인에 형편없는 연극이라면 나는 그 연극을 보러 갈까? 흠, 이것은 진지하게 고민해볼 만한 일이다. 일단 내용은 컴퓨터 게임이라는 가상현실 속에서 가상 캐릭터인 주인공이 겪게 되는 여정인 듯하다. 적당히 고대 영웅 신화를 버무려 놓았을까? [트루먼쇼]의 아류작은 아닐까? 진부한 SF적 개똥철학을 늘어놓거나 (언제나 먹히는) 자아의 임의성에 대한 그럭저럭한 고뇌로 점철될까? 영화로 해야 적당했을 내용을 억지로 무대 위로 욱여넣진 않았을까? 현실이 가상현실을 흉내 내고 모방하느라 우스꽝스러워진다면? 모르겠다. 전혀 예상이 되지 않고 그래서 마냥 궁금할 뿐이다.  









연극 : 골목길 느와르 - 리처드3세를 찾아서

공연장소 : 여행자 극장

공연기간 : 2021년 11월 19일 ~ 2021년 11월 28일



     [울트라월드]에 이어 이 연극도 도통 감이 잡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보통은 안내 페이지를 보면 대충 느낌이 오기 마련인데 이건 전혀 모르겠다. 이런 연극을 보는 것은 일종의 모험으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재미있거나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유치하기 마련이다. 일단 안내 페이지에 구구절절 적혀 있는 어휘들은 현란하기 그지없다. '느와르' '미학적 사색' 미학적 배치' '말하는 자와 이야기 사이의 간극' '연극적 마법' '바라보는 방식' '변이' '추적' '인물의 복원' '각주' 등등등... 과연 이 연극이 이 번지르르한 단어의 값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까?  일단 리처드 3세를 여러 배우들이 연기한다는 설정은 마음에 든다. 리처드 3세는 결핍의 존재이고, 결핍을 통해 해방된 순수한 악이며, 피해자라는 알에서 탄생한 가해자이다. 그를 한 명의 인격 안에 가두어 두려 하면 다소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 되지만, 실은 우리 모두의 각각의 인격 안에서 가장 설득력 있고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 연극이 그 점을 표현하려고 하는 듯 하지만, 역시나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만약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이 연극을 꼭 보러 갔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뒤통수를 한대 세차게 얻어맞기 위해서 말이다.  









연극 : 믿을지 모르겠지만

공연장소 : 스튜디오 76극장

공연기간 : 2021년 11월 18일 ~ 2021년 11월 28일



     자극적이고 개성 있는 포스터에 이끌려 안내 페이지로 들어갔지만 연극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개인적으로 감상적이고 계몽적인 연극은 질색인데 교화되기 위해서라면 극장이 아니라 성당이나 절, 혹은 시민단체를 찾았을 것이다. 우선 이 연극의 등장인물들의 면면이 교훈의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어서 나를 긴장시켰다. 그러나 이 연극의 설명에서는 또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아서 - 보통은 매우 노골적이기 마련이기 때문에 - 나를 헷갈리게 했는데, 무엇보다 당황스러웠던 건 그것이 이 연극이 실제로 교육적이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저 무신경하기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연극의 제작자들이 안내 페이지를 만드는 데 적극적이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나 같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의도된 함정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타인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라는 주제가 '설교'가 되느냐 '통찰'이 되느냐는 종이 한 장의 차이이고, 나는 그 종이 한 장의 틈으로 파고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표를 샀을 것이다.  









연극 : SPRAY

공연장소 : 꿈의 숲아트센터 퍼포먼스홀

공연기간 : 2021년 11월 19일 ~ 2021년 11월 28일




    일단 말해둘 것은, 만약 이 포스터 디자인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연극을 클릭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연극 포스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바로 연극 제작자의 감각을 일면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내 페이지의 내용들은 다소 실망스러웠고 시노십스는 전혀 내 흥미를 끌지 않았다.  그런데 어허, 잠깐, 이 연극이 해외에서 큰상도 타고 국내 여러 지원작에 선정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고 하지 않은가. 이렇게 되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나 같은 속물이자 불만분자로서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런 작품은 좋으면 좋은데로 내 수준을 올려주는 것 같아 만족스럽고 나쁘면 나쁜데로 상대방의 권위를 까내릴 수 있어서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때로는 연극 자체를 보는 즐거움보다 그런 사악한 즐거움이 더 클 때도 있다는 걸 나는 부정하지 않겠다. 그래서 나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한 손에는 장미와 다른 한 손에는 계란을 들고서 이 작품을 보러 갔을 것이다.    








연극 : 팩트

공연장소 : 후암스테이지

공연기간 : 2021년 11월 19일 ~ 2021년 11월 30일




   [팩트]는 이번에 내가 언급한 연극 중에 가장 내 흥미를 끌었다. 사소한 사실들이 계속 부정당할 때 우리 존재의 정당성과 주체성마저 흔들린다는 설정은 철학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직접적으로 관련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래전에 보았던 '환상특급'의 한 에피소드가 곧바로 떠올랐다. 어느 날 주인공이 알고 있던 한 단어의 의미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부정되기 시작한다. 가령 먹는 과일 중 하나인 '사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몸을 씻을 때 거품을 일으키며 때를 씻어 내는 물건'이라고 알고 있는 식이다. 그건 수많은 단어 중 고작 사소한 한 단어일 뿐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주인공도 장난스럽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단어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결국 주인공은 그 누구와도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되고 만다. 아, 그러고 보니 문득 [콧수염]이라는 소설도 생각이 난다. 어느 날 주인공이 10년 넘게 기른 콧수염을 밀어버렸는데도 아내는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처음에는 아내의 장난인 줄 알았으나 아내는 주인공이 콧수염을 기른 적이 없다고 우기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그의 친구들조차 10년 동안이나 버젓이 있었던 그의 콧수염의 존재를 부정하고 나서자, 주인공은 엄청난 혼란에 빠져 자신의 콧수염을 증명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다가 결국 정신 이상을 일으킨다. (어쩌면 그는 없던 콧수염을 밀어버렸다고 믿기 전부터 정신 이상자였거나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정신 이상자인지도 모른다.) 과연 이 연극이 이 두 편의 이야기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줄 수 있을까?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연극 : 더 드레서

공연장소 : 국립정동극장

공연기간 : 2021년 11월 16일 ~ 2022년 1월 1일




     이런 류의 연극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중타는 치기 마련인 것 같다. '이런 류'가 무슨 뜻인지 묻는다면, 깊이를 끌어낼 수 있는 주제와 연기에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를 갖춘 연극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연극은 묵직한 무게가 있는 대신에 신선하거나 충격적이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나는 다소 보수적인 그런 연극도 좋아한다. 자학이 주는 긴장감과 쾌감이 예술의 묘미이긴 하지만, 우리는 늘 그런 성적 긴장감만을 가지고 살 수는 없으니까. 짐작건대 이 연극은 관객에게 어떤 울림을 주기 위해 노력할 테고 실제로 어떤 울림을 줄지도 모른다. 그럼 우리는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재미있는 건 안내 페이지에서 두 가지 종류의 포스터가 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하나는 위에 내가 올린 것으로 '노먼'인 오만석 배우가 '선생님'을 인간적이고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똑같은 장면의 포스터에서 '노먼'인 김다현 배우는 냉담한 표정으로 '선생님'이 아닌 관객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이것은 16년 동안 '선생님'의 드레서로 일해온 '노먼'이라는 인물에 대한 두 배우의 전혀 다른 해석을 상징하고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내 흥미는 몇 배나 높아질 것이고 기꺼이 두 배우의 연극을 모두 볼 의향이 있다. 단지 포스터만으로 평가를 하자면 김다현 배우의 '노먼'이 좀 더 도전적이긴 하다. '노먼'은 언제나 무대 뒤편의 유령으로 살아오면서 자신만을 위한 시선을 갈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연극은 정말 내가 상상하는 그런 내용일까? 봐야지 알 텐데.... 언제쯤 다시 극장을 찾을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그때까지는 이렇게 안내 페이지나 뜯어먹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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