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민담 모음집

조지프 제이콥스 엮음

by 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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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민담 모음집 ] 조지프 제이콥스 엮음




개인적으로 민담을 좋아해서 즐겨 읽는 편이다. 그것은 노동과 같은 독서에서 잠시 벗어나는 휴가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은 영어 원문과 한글 번역본이 나란히 실려있는데, 처음에는 영어 원문을 읽을 생각이 결코 전혀 없었다. 심지어 페이지 수를 늘려서 책 가격을 올려 받으려는 심사가 아니냐고 의심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1/3 정도를 읽다가 나는 처음부터 영어 원문으로 다시 읽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영어 수준임)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꽤나 많은 나라의 민담을 읽어보았다. 그런데 영국의 민담은 그것들과는 전혀 달랐다. 심지어 이것을 민담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부적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영국의 민담들은 전설이나 이야기의 발원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발언을 따라가고 있는 듯했다. 시보다 더 근원적이고 오래된 것. 뭐랄까, 이것은 언어적 신경증적 증상에 가까웠다. 나는 처음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읽었을 때, 그 무작위 하고 개연성 없고 부조리하면서도 천진하고 시적이고 발작적인 언어의 유희에 감탄에 감탄을 연발했었다. 도대체 이 소설은 세상 어디에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그런데 이 책을 읽고서 나는 그것이 지극히 '영국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영국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랐던 것이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들은 전혀 아이들에게 '교육적'이지 않은지도 모른다. 이런 류의 언어유희는 너무 적나라해서 머리를 빙글빙글 돌게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뇌의 한 구석을 손톱으로 긁는 것만 같은 쾌감이 있다. 만약 언어를 담당하고 있는 뇌의 부위를 송곳으로 찌른다면 생각지도 못한 단어들이 튀어나와 저절로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언어적 악몽처럼 유쾌하면서도 동시에 음산하 기운을 풍기며 우리를 꼼짝없이 사로잡을 것이다. 의미 없는 사물들처럼 의미 없는 언어들의 실존은 이미 머리가 굳어버린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것이지만, 언제나 그리고 여전히 그것은 우리의 꿈속을 헤매고 다닌다.

그래서 단언컨대, 이 책은 반드시 원어로 읽어야 한다. 한국어 번역도 그리 잘 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설사 잘 되었다고 해도 한국어로는 그 느낌을 결코 살릴 수가 없을 것 같다. (나는 문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설명하려는 취지 자체를 이해해주기 바라며) 한국어에는 조사와 종결 어미가 있어서 단어 자체의 단순성과 순수성을 다소 저해하는 측면이 있는데, 영어는 형식이 달라서 문장 안에서도 단어의 시적인 독립을 강조할 수 있다. 단어 고유의 발음, 변형, 라임, 리듬, 그리고 끊임없는 단어들의 반복. 특히 반복에 대한 집착과 그 집착이 구성해내는 예상치 못한 미학에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만약 우리가 '고양이'라는 단어를 10번 반복해서 쓴다고 하자.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과연 10번째 '고양이'는 첫 번째 '고양이'와 같은 '고양이'일까? 아니, 무언가가 달라졌나? 아니, 오히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나? 대체 이 '고양이'들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아무 것도. 그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일 뿐. 같은 단어가 반복되는 동안 '고양이'는 거추장스러운 내용물을 털어버리고 점점 자유로워진다. 말하자면 [식육목(食肉目) 고양이과의 포유류에 속하며, 애완용의 고양이 또는 고양이과의 총칭하는 생물학적 고양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저 '고양이'가 된다. 우리는 비로서 '고양이'라는 단어에 오롯이 집중하고 그것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누가 언어를 단지 의미를 위한 기호라고 했던가. 누가 의미가 먼저이고 언어가 나중이라고 했던가. 오히려 언어가 더 근원적이며 의미야 말로 그저 언어에게 기식하고 있는 기생충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을 하기 위해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음이 아닐까. 우리 뇌의 신경을 직접 때리는 그 감각적이고 신비한 비물질적인 도드라짐. 같은 발음이 계속해서 반복될 때 우리는 그만 영문도 모른 채 웃음을 터트리게 된다. 마치 반대로 너무나 쉬운 단어의 발음이 생각이 안 날 때 우리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이 책에는 지금 우리에게는 다소 괴이해 보이는 언어-현실의 세계가 담겨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우리의 어린 시절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언어의 어린 시절과 조우하게 된다. (심지어 우리가 영국 사람도 아닌데!) 글을 마감하면서 나는 이 책에 나오는 민담 중 - 가장 짧은 - 한편을 소개할까 한다. 영어 원본이지만 그리 어렵지 않으며 모르는 단어 몇몇은 사전에서 찾아볼 수도 있지만, 사실 뜻을 몰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그 발음과, 리듬과, 반복에 집중한다면 말이다.






MOUSE AND MOUSER



The Mouse went to visit the Cat, and found her sitting behind the hall door, spinning.



MOUSE
What are you doing, my lady, my lady,
What are you doing, my lady?


CAT (sharply)
I'm spinning old breeches, good body, good body,
I'm spinning old breeches, good body.


MOUSE
Long may you wear them, my lady, my lady,
Long may you wear them, my lady.


CAT (gruffly)
I'll wear 'em and tear 'em, good body, good body,
I'll wear 'em and tear 'em, good body.


MOUSE
I was sweeping my room, my lady, my lady,
I was sweeping my room, my lady.


CAT
The cleaner you'd be, good body, good body,
The cleaner you'd be, good body.


MOUSE
I found a silver sixpence, my lady, my lady,
I found a silver sixpence, my lady.


CAT
The richer you were, good body, good body,
The richer you were, good body.


MOUSE
I went to the market, my lady, my lady,
I went to the market, my lady.


CAT
The further you went, good body, good body,
The further you went, good body.


MOUSE
I bought me a pudding, my lady, my lady,
I bought me a pudding, my lady.


CAT (snarling)
The more meat you had, good body, good body,
The more meat you had, good body.


MOUSE
I put it in the window to cool, my lady,
I put it in the window to cool.


CAT (sharply)
The faster you'd eat it, good body, good body,
The faster you'd eat it, good body.


MOUSE (timidly)
The cat came and ate it, my lady, my lady,
The cat came and ate it, my lady.


CAT (pouncingly)
And I'll eat you, good body, good body,
And I'll eat you, good body.


(Springs upon the mouse and kills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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