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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an 29. 2022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보았을 연극 - 6



     와, 볼 연극이 없다.

     나는 인터파크 티켓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보고 싶은 연극이 없었다. 하긴 코로나 확진자가 만 오천 명이 넘어간 지금 누가 연극을 보러 가고 또 누가 연극을 만든단 말인가. 만약 누군가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는 연극에게 영혼뿐만 아니라 몸도 팔았을 것이다. 나도 꽤나 연극을 좋아한다고 자부했지만 2020년 11월 8일에 [신의 아그네스]를 본 후로 공연은 단 한 편도 보지 못했다. 나는 연극에 몸까지  팔 수는 없었다. 나는 아마도 그저 뜨내기였던 모양이다. 

     어쨌든 뭐든 쓰긴 써야겠기에, 선택한 것이 [엘리펀트 송]과 [프루프]이다. 하지만 [엘리펀트 송]은 예전에 이미 보았던 연극으로 찾아보니 써놓았던 감상평이 있기에 그대로 첨부한다. 지금 새로 하고 있는 공연에 예전 공연의 감상평을 덧붙이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포스터까지 똑같이 그대로니 뭐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듯하다. [프루프]는 긴가민가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이 초토화된 폐허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내 관심을 끌었다. 







연극 : 엘리펀트 송

공연장소 : 예스24스테이지 3관

공연기간 : 2021년 11월 26일 ~ 2022년 2월 13일


(이 감상평은 2019년 11월 23일의 공연을 보고 쓴 것입니다.)



     처음 인터넷 예매 사이트에서 이 연극을 접했을 때 나는 이 연극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의 거부감마저 들었다. 마이클 역을 맡은 배우들의 사진을 너무 예쁘장하게 찍어놓았기 때문이다. 요즘 공연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인데, 여성 관객들을 노린 듯한 여성향의 홍보물을 보자면 공연을 관람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고 만다. 그러다가 내가 이 연극을 보게 된 건 한 줄의 설명 때문이었다. [서로 연결될 수 없는 단어들이 결국 하나의 문장을 완성한다.] 이 정도면 공연장까지 달려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예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좀 지루했다. 그리고 지루함보다 더 나쁘게도 연극은 너무 감상적이었다. 문제는 [연결될 수 없는 단어들]도 [완성된 문장]도  딱히 흥미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기 위해 진실을 말하는 방식도 생각보다 파급력이 없었다. 이 연극에 대해 한 줄 평을 하자면 [초콜릿으로 흥한 자 초콜릿으로 망한 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설정과 이야기를 초콜릿이라는 한 점에 모으기 위해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그저 그게 다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초콜릿이 등장할 때부터 결말이 예상되긴 했지만 어쨌든 초콜릿을 향한 그 모든 노력은 감탄스러웠다. 문제는 이야기가 공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설정이야 머리로 이해하자면 못할 게 없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선 이 연극의 제목인 [엘리펀트 송]도 그럴듯하긴 해도 딱히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눈앞에서 아버지의 총을 맞고 죽어가는 코끼리의 선한 눈과 마주한 소년의 트라우마? 아이에게 충분히 충격적이었겠지만 그게 이 아이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물론 그 코끼리의 이미지가 바로 마이클의 화신이라는 건 알겠다. 알긴 알겠는데  설정도 설명도 너무 진부하고 단출했다. 어머니의 죽음도 사건의 중요성에 비하면 무성의하게 처리되었고, 무엇보다 대체 마이클이 왜 자살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했다. 이런 생활이 지겹다느니, 자유를 원한다느니, 로렌스가 나를 위해서 우는지 알고 싶었다느니 등의 잡다한 말들을 늘어놓았지만 그저 말, 말, 말일뿐, 딱히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마이클을 포함한 연극 전체가 오직 초콜릿을 먹을 생각에 전전긍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코끼리 사냥, 어머니의 죽음, 로렌스와의 사랑 등 모두 서로 연결점이 없는 각각의 파편화된 에피소드에 불과했고 심지어 다른 에피소드로 대체되어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마지막에 초콜릿을 먹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초콜릿이 마이클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오히려 자살의 무게는 초콜릿보다 가벼웠다. 사실 이 연극에는 원장과 간호사, 마이클 외에도 등장인물이 한 명 더 있는데 바로 로렌스다. 그는 배우로서 육화 되어 무대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실은 진짜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에 마이클이 로렌스와 통화하는 장면이야말로 이 연극의 절정이고 또한 무게중심인데 그것마저도 다급하게 처리해버린 것 같아 의아했다. 나는 무신경하고 가볍고 불필요하게 꼬아놓은 마이클의 자살보다도 오히려 마이클과 로렌스의 관계가 더, 아니, 그보다 로렌스라는 인물 자체가 더 궁금해졌다. 사실 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로렌스인데 알맹이를 쏙 빼버렸으니 공감이 생길 리가 없었다. 로렌스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마이클은 왜 그를 사랑했을까. 그도 마이클을 사랑했을까. 그것은 정말 사랑이었을까.

     마지막으로 무대 미술에 대해 언급해야겠는데, 기울어진 무대 벽과 바닥이 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진실의 불안함과 상대성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좌우로 자리를 이동함에 따라  배우들의 키가 더 크게 혹은 더 작게 보이기도 했는데 심리적으로나 시각적으로 효과적이었다. 다만 벽을 식물로 채운 것은 아마도 코끼리와의 연관성 때문이겠지만, 그리고 그것은 인상적이었지만, 그것을 연극에서 전혀 활용하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정신병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연극이, 그것도 정신병자인 주인공이 자살하는 연극이 지루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책임은 분명 희곡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그렇게 흡입력이 있지는 못했고 외화더빙 같은 배우들의 말투가 현실감을 떨어트리기도 했다. 무언가 할 얘기가 더 많은 것 같은데 황급히 마무리한 것만 같아서 어쩐지 2부, 3부, 시리즈물로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의 연극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관객석에 불이 들어왔을 때 나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는 것을 알았다. 이토록 달콤 쌈싸름한 자살에 마음이 동하다니 참 별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 프루프 Proof

공연장소 : 한양레파토리씨어터

공연기간 : 2022년 2월 10일 ~ 2022년 2월 20일



   일단 관계 구도는 흥미를 끈다. 수학천재이지만 정신분열을 일으킨 아버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아버지를 병간호한 딸 캐서린, 아버지의 연구 노트를 보여달라고 찾아온 아버지의 옛 제자 할, 캐서린이 아버지처럼 정신분열증 증상이 있다고 생각하는 캐서린의 언니 클레어. 뭔가 있을 것만 같은 근질근질한 구성이다. 이 구성 만으로도 이야기는 반쯤 성공한 것이나 진배없다. 그런데 광고 페이지의 설명만으로는 이야기가 전혀 예측이 되지 않는다. 장르조차 짐작이 가지 않는다. 캐서린과 할이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물일까? 아버지의 연구 성과를 가로채려고 캐서린에게 접근한 할의 범죄물일까? 아버지 삶의 비밀을 추적하는 탐정물일까? 할과 클레어가 캐서린에게 음모를 꾸미는 스릴러일까? 정신분열에 빠진 캐서린의 심리 상태를 조명하는 심리물일까? 흥미를 끌기 위한 전략인지 흥미 없는 내용을 감추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상 경력이 화려한 연극이라고 하니 일단 믿고 티켓 예매를 했을 것이다. 설사 실망한다 해도, 수상 경력이 화려한 연극을 푸짐하게 욕해주는 것도 쏠쏠이 재미있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이 연극을 보러 가지 못할 것다. 그러니 영원히 이 연극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연극은 결코 되풀이되지 않는다. 언젠가 또 [프루프]라는 또 다른 연극이 공연될 뿐이다. 이렇게 보지못한 연극들이 살아보지 못한 인생처럼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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