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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Mar 11. 2022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보았을 연극 - 7



     요 근래 몇 번이나 이 글을 쓰려다가 접고 또 쓰려다가 접고는 했다. 인터파크 티켓을 아무리 뒤져봐도 도무지 보고 싶은 연극이 없어서였다. 새로운 연극 제작은 거의 답보상태인 듯했다. 무리도 아니지. 코로나가 그 어느 때보다 창궐하는 데다가 코앞으로 닥친 대선이 어느 연극보다도 재미있는데 누가 일부러 연극을 보러 가겠는가. 대선은 결국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막을 내렸다. 누군가 - 어느 후보의 말을 빌리자면 '집단지성'이라는 작가가 - 신랄하게 쓴 시나리오 같았다. 누가 당선되었는지와는 상관없이 정말 내 평생에 이렇게 재미있고 희한한 대선은 처음이었다. 스릴러, 코미디, 액션, 누아르, 미스터리, 공포, 탐정, 판타지의 장르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소위 작가라는 작자들은 현란한 현실 앞에서 한없는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매일매일 생산되는 뉴스들, 대장동, 도이치모터스, 사과와 사과들, 녹취록들, 증인들, 구설수들, 마이클 잭슨, 소고기와 초밥, 주옥같은 어록들, 어퍼컷과 발차기가 난무하는 데스매치는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의 흥미까지 유발하는 데 성공했다.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인간의 흥망성쇠를 우리 국민들 모두 재미있게 관람했으리라. 정치가 이토록 연극적인데, 대체 연극이 어떻게 먹고살 수 있단 말인가. 

     








연극 : 죽음의 집

공연장소 :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공연기간 : 2022년 4월 9일 ~ 2022년 4월 24일



    예전에 이 연극을 예매하려고 했다가 일찌감치 전석이 매진되는 바람에 보지 못했다. 하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특별히 재미있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 가르치는 교수님이 연출한 연극이라도 되나, 뭐 대충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던 것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도 전석이 매진이었다.  이런 시국에  딱히 대중적인 소재도 아닌데 이 정도 반응인 걸 보면 꽤나 괜찮은 작품인 모양이다. 못 먹는 떡이 더 커 보인다고 갑자기 기대감이 높아졌다. 인터파크에 소개되어 있는 안내 만으로는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삶과 죽음, 그리고 '나'라는 경계에 대한 질문과 성찰이 있을 듯하다.  이런 연극은 대사의 진정성과 깊이가 중요한데, 과연 그것을 잘 살렸을지 궁금하다. 부조리극이라고 되어는 있지만 사실 그 부분은 의심이 간다. 가끔 '미스터리'나 '판타지'를 '부조리'라는 장르로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공개되어있는 정보가 너무 부족해서 대충이라도 짐작해 볼만한 거리가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그런 신비주의가 전석 매진의 비밀인지도 모르지. 그래도 죽음과 비밀, 매진이라는 삼박자를 갖춘 연극이라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연극 :오델로 - 죄

공연장소 : 대학로 민송아트홀 1관

공연기간 : 2022년 4월 2일 ~ 2022년 5월 15일



     오델로와 이아고와 데스데모나가 함께 있는 지옥이라니? 일단 이것만으로도 취향을 저격당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특히 '지옥'이라는 말은 여전히 내 향수를 자극한다. 한 번도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는 나에게도 지옥은 아직 매력을 잃지 않았다. 물론 다소 낡고 촌스러운 서커스 같은 이미지로 풍화되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오늘날 '지옥'을 연극으로 다루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옥'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지나치게 연극적이기 때문에 자칫 풍자적이고 냉소적이며 얄팍하고 유치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거기다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처럼 내적으로 완벽한 작품은 재해석의 무덤이 되기 십상이다. 관객들은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으로 빠르고 깊게 몰입하는 것만큼이나 빛을 속도로 실망과 식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저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같은 거물의 작품을 재해석하려면 셰익스피어와 단단히 맞짱을 뜰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셰익스피어를 때려눕힐 수는 없더라도 그가 절대 잊지 못할 한방을 그의 주먹코에 정확히 명중시켜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저 무례하고 무능한 기회주의자 될 뿐이다. 과연 이 연극은 어느 쪽일까? 이 연극도 안내 페이지에서 많은 정보를 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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