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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Aug 19. 2022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보았을 연극 - 10



     전체적으로 연극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띄는 건 사실인 모양이다. 인터파크 티켓을 죽 훑어보다 보면 보고 싶은 연극이 확실히 많아졌다. 이번에도 무려 7편이나 고른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강렬한 한 방 또한 없었는데, 어머, 이건 꼭 봐야 해, 뭐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야심작들은 여전히 주춤거리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을 몇 편의 연극은 건질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물론 아직, 아직도, 보러 갈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확진자가 1000명 아래로 내려가야 다시 연극을 보러 가겠다고 했던 나의 결심도 최근 들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확진자 3000명 정도까지는 괜찮지 않나... 어쩌면 5000명까지도 조심만 하면 위험하진 않을 거야... 검색해보니 오늘도 확진자가 1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마음이 편해지네.








연극 : 소실

공연장소 : 아트원씨어터 3관

공연기간 : 2022년 8월 5일 ~ 2022년 8월 21일



    이 연극이 내세우는 표어는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디스토피아에서 그리는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는 건 디스토피아에서만 가능하겠지. 그렇다면 디스토피아를 꿈꿀 수 있는 것도 유토피아에서만 가능한 걸까? 그렇다면 우리는 유토피아에서 살고 있나, 아니면 디스토피아에서 살고 있나? 언제나 곤란한 것은 속세적인 우리에게는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연극은 전체적으로 SF를 배경으로 한 듯한데 내용은 짐작하기 힘들다. 두 개의 달, 두 명의 형제, 어쩌면 유전자 복제를 다룬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안내 사진 속 주인공이 크리스마스트리 용 앵두 전구를 칭칭 둘러 조악하게 만든 공사장 헬멧을 쓰고 있는 걸로 봐서 가상현실이 주제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연극 전체는 차갑기보다는 꽤나 멜랑콜리한 감상적 분위기에 젖어있다. 감상적인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SF 장르는 종종 강렬한 철학적 명제를 던져주기 때문에 보러 갈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극 : 패밀리 M의 병

공연장소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공연기간 : 2022년 8월 17일 ~ 2022년 8월 27일



     사실 이 연극을 고를 때 많이 망설였다. 너무나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상처로 분열되었던 가족의 화해와 치유를 도모하는 얘기라면 단호하게 사양하고 싶었다. 포스터에 박아 넣은 [그 때는......온 세상의 슬픔이 나한테 다 몰려온 것 같았어]라는 표어 - 아마도 연극 대사 중 하나일 - 도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다. 다만 내가 희망을 걸어본 것은 정신과 의사가 등장한다는 것, 그리고 그 정신과 의사가 주체가 되어 이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이다. 내용은 다소 뻔할 것 같지만 구성의 재미가 있을 듯하여 이 연극에 기대가 생겼다. 








연극 : 천국으로 가는 길

공연장소 : 세종아트홀 혼

공연기간 : 2022년 9월 2일 ~ 2022년 9월 4일



    나는 보통 일주일도 공연하지 않는 연극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버리곤 한다.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연극은 포스터가 마음에 들어서 예외적으로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많은 설명이 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곧 이 연극에 마음이 끌렸다. 연극에 대한 설명은 단 4줄뿐이었고 흑백 사진이 8장, 그것도 연극에 관련된 사진이 아니라 지극히 화목하고 평범해 보이는 어떤 서양인 공동체의 사진뿐이었다. 건강해 보이는 아이들, 마을 행사, 수업 시간, 공원에서의 유유자적한 하루 등등. 이 연극에서 제공하는 설명이 길지 않으므로 한 번 전체를 그대로 옮겨보겠다.

     [2차 세계대전, 한 적십자 대표는 나치가 만든 유대인 수용서를 방문한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을 직접 확인하려고 했지만 그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보고서에 "나는 정상적인 도시를 보았다"라고 서술한다. 이 연극은 그 적십자 대표의 고백과 그가 본 것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저 '지극히 화목하고 평범해 보이는'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이 유대인 수용소에 갇혀있는 유대인들이라는 걸까? 무슨 반전이, 혹은 그 반전의 반전이 있단 말인가? 위의 설명에 나오는 한 단어가 내 상상력을 자극한다. [정상] - 정상이란 무엇인가.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독일의 만행을 고발하는 그 닳고 닳은 휴머니즘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은 나를 공연장까지 불러오기에는 충분하다. 









연극 : 12인의 성난 사람들

공연장소 : R&J씨어터

공연기간 : 2022년 9월 3일 ~ 2022년 9월 8일



   이 연극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이미 같은 제목의 영화가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매우 좋아하는 영화다. 내용을 뻔히 알지만 갈등과 반목과 반전, 그리고 메시지가 매우 뚜렷한 영화이기 때문에 연기자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하여 이 연극을 골랐다. 영화와는 달리 이 연극에서는 남녀가 골고루 캐스팅되었는데 연령대가 다양하지 않은 것이 기대감을 상당히 반감시킨다. 









연극 : 앨리스 인 베드

공연장소 : 명동예술극장

공연기간 : 2022년 8월 24일 ~ 2022년 9월 18일



     수전 손택의 미학 비평 글들을 재미있게 읽었고 그에 반해 소설은 별로였는데 희곡을 썼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유일한 희곡이라고 하는데, 글쎄, 솔직히 크게 기대는 안 가지만 워낙 인정받는 지성이다 보니 - 지성이라고 해서 꼭 예술성도 뛰어나라는 법은 없다 - 궁금하기는 하다. 연극 속 인물인 앨리스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판타지 같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듯한데, 일단 전체적으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페미니즘 기운을 풍긴다. 모든 등장인물이 여자인 데다가 앨리스의 아버지와 오빠가 자신들의 언어로 - 분명 남자들의 언어로 - 앨리스를 설득하려 한다는 설정이 분명하게 남녀 사이의 대립각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말하지만 페미니즘이면 어떻고 마초이즘이면 어떤가. 그것을 어떻게 구현하는가가 중요하며, 솔직히 말해 그에 비해 의도나 주제는 부차적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페미니즘이 부적절하고 나쁜 의도나 주제를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다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균형감각이다. 나로서는 단지 여성을 대표하는 것을 넘어 인간을 대표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연극 : 에드거 앨런 포의 불안

공연장소 : 시온아트홀

공연기간 : 2022년 9월 15일 ~ 2022년 9월 25일



    개인적으로 저렇게 '아무개의'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걸 상당히 질색함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개인적으로 에드거 앨런 포를 상당히 좋아하기 때문에 이 연극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만 봐도  '아무개의'라는 수식어가 얼마나 훌륭한 미끼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일단 가장 먼저 김소희 배우가 눈에 띄긴 했다. 예전에 한창 연극 공연을 보러 다닐 때 자주 보았던 배우이고 '믿고 보는' 수준의 언제나 만족감이 높았던 배우였다. 연희단연극패 사태로 난리가 난 이후 많이 활동을 하지 않으신 것 같은데 반갑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하고 잠시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안면인식 장애 수준의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 분이기 때문에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다.  안내문을 보니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을 뒤섞으면서도 완전히 재구성한 듯한데 그것도 기대감을 높이는 데 단단히 한몫한다. [그 남자는 군중 속에서만 영원히 존재하는 자이다. 아니, 군중 속의 영원한 불안이다.] 이것은 에드거 앨런 포의 말인가 아니면 이 희곡의 작가의 말인가? 어느 쪽이든 이 한 줄의 문장 만으로도 보러 갈 이유는 차고도 넘치겠다.









연극 : 반쪼가리 자작

공연장소 :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공연기간 : 2022년 9월 2일 ~ 2022년 9월 25일



    이 연극을 선택하기에 앞서 개인적인 저항감이 좀 있었다. 일단 나는 소설을 연극화한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완전히 해체해서 재구성과 재해석을 거치지 않은 이상 그것은 그저 소설의 유명세에 편승하는 아류작이 되기 십상이다.  거기에 또 문제는 내가 작가 이탈로 칼비노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 [반쪼가리 자작]이라는 소설을 상당히 싫어한다는 점이다. 이 소설의 가치 평가에 대해서 이해는 하지만 도무지 왜 사람들이 이 소설에 열광하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솔직히 너무 평이하고 진부하지 않은가? 오래전에 읽어서 가물가물하지만 다 읽고 나서 좀 어이없었던 기억만은 분명하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을 선택한 이유는 어쩌면 내가 놓친 부분을 이 연극이 바로잡아 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평이하고 진부한' 이야기가 오히려 연극에서는 풍부한 이미지로 탈바꿈할지도 모른다는 더 막연한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여전히 확신은 없지만 일단 리스트에 넣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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