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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Sep 22. 2022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보았을 연극 - 11




      코로나가 애매하게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연극계에도 애매한 연극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뭔가 흥미가 끌리긴 하는데 딱히 보러 가기에는 내키지 않는 그런 연극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포스터까지 잘 만들어놓고도 안내 페이지에는 아무 정보도 올리지 않아서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사실 인터파크를 둘러보다 보면 이런 일이 종종 있는데, 정말 너무 궁금해서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포스터까지 찍어서 인터파크에 안내를 올려놓고는 정작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건 어떤 의도이며 어떤 심리인가? 관객이 없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핑곗거리를 뿌려놓는 건가? 아니면 그딴 것 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미어터질 거라는 자신감인가? 그도 아니면 예술가는 관객에게 구걸하지 않는다는 뭐 그런 웅장한 자존심인가? 모르겠다. 어쨌든 확 끌리는 연극이 없는 가운데 고심 끝에 4편을 골라보았다. 








연극 : 생일만찬

공연장소 : 아름다운 극장

공연기간 : 2022년 9월 22일 ~ 2022년 10월 9일



      일단 강렬한 포스터가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게 세련된 건지 촌스러운 건지는 얼른 판단이 서지 않지만 이 정도 기백이면 어찌 되었건 상관없어진다. 그로테스크는 언제나 취향을 뛰어넘어 취향을 저격하는 법이다. 어쨌건 죽이 됐던 밥이 됐던 뭔가 보여주겠다는 의지만은 확실하게 표명된 셈이니까. 그렇게 한껏 기대감을 품고 클릭을 했는데 의외로 안내 페이지는 평범하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냥 연습실에 배우들이 모인 김에 대충 찍은 몇 장의 사진을 성의 없이 올린 느낌이었고 특히 안내 페이지의 편집 수준을 보자면 한심할 정도였다. 포스터와 안내 페이지의 이 현기증 나는 간극이 어디에서 생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연극에 대한 기대감이 한없이 추락한 건 사실이다. 흠, 일단 포스터를 믿고 선택해 보았다. 







연극 : 모든 사람은 아프다

공연장소 : 하땅세극장

공연기간 : 2022년 10월 7일 ~ 2022년 10월 10일



     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그 닳고 닳은 '힐링' 연극이 아닌가 지레짐작했다. 포스터도 그런 분위기를 강하게 풍겼다.  코로나 시대의 고통을 노골적이고 비문학적으로 강조하면서. 사실 자세히 볼 것도 없이 클릭도 하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막상 내용을 살펴보니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왜 저 사진을 포스터에 넣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연극이 내세우는 메시지는 일단 거창하다. '몸을 매게로 한 인간의 실존과 내면'이라고 한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들었다. 펜데믹 상황을 전제로 연극의 주제를 설명하고 있는데 굳이 여기에 코로나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뭐 그렇다고 거슬리는 건 아니었다. 연극은 4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가슴을 쪼개 보이며 그가 말했다. 2부 죽이고 싶은 인간, 나도 있어요. 3부 나는 고인을 알지 못한다. 4부 얼마나 아프신가요. 개인적으로 1부, 2부, 3부의 제목이 마음에 들었으니 나로서는 타율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그나저나 무대 위에서 직접 침을 놓는다는데, 혹시 차력쇼처럼 될까봐 다소 불안불안 하다. 그럼에도 몸과 정신의 관계, 그리고 고통과 분노의 근원을 어떻게 펼쳐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연극 : 햄릿, 쓸모 있는 인간

공연장소 : CKL스테이지 

공연기간 : 2022년 10월 8일 ~ 2022년 10월 15일



     진심으로 나는 햄릿이 지긋지긋하다. 도대체 몇 번이나 햄릿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거의 어김없이 또 햄릿을 본다. 워낙 이 희곡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반은 습관적인 듯한데, 가장 큰 원인을 찾자면 원작이 너무 단단하기 때문에 다양한 버전으로 변형을 시키고 해체를 해도 부담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가 썩어도 준치라고 연출가나 배우가 아무리 망쳐도 중간은 가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이유도 있다. 일단은 이 연극의 제목이 내 흥미를 끌었다. '쓸모 있는 인간'이라. 대체 햄릿이 어디에, 그리고 누구에게 쓸모가 있다는 것인가. 오히려 햄릿의 고뇌는 '쓸모 없는 인간'의 비애가 아닌가. 솔직히 서양과 동양의 만남이니, 한국 전통 음악으로 재해석했다느니 하는 시도는 그리 기대가 가지 않았다. 나는 서양의 고전에 굳이 한국적 전통색을 입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서양 고전의 유명세에 묻어가려는 의도가 역력하고, 거기다 근본적으로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런 불후의 고전에 도전한 연극은 잘하면 잘하는 데로 재미가 있지만 망치면 망치는 데로 또 역시나 큰 재미를 주기 마련이다. 이 연극은 과연 어느 쪽일까? 








연극 : 겹괴기담

공연장소 : 더줌아트센터

공연기간 : 2022년 10월 21일 ~ 2022년 11월 6일



     이번에 고른 4편의 연극 중에 이 연극이 가장 기대가 간다. 개인적으로 공연 공간 자체의 변화를 시도한 연극에서 재미를 본 적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그런 연극들은 꼭 보러 가는 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고, 어쨌거나 안일하게 가지는 않겠다는 진취적인 야망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연극이 제공하는 정보는 매우 단출하다. 그대로 옮기자면 [정밀하게 꾸며 놓은 두 개의 무서운 괴기담은 거대한 검은 장막 속에서 진행된다. 무대는 총 다섯 개의 공간으로 구획되어 있으며 그 속에서 두 가지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다. 특별한 구조의 공간 전개는 관객으로 하여금 서사를 따라가는 전통적인 플롯의 전개에서 벗어나 마치 '틀린그림찾기'나 '퍼즐맞추기'처럼 두 이야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유형의 연극을 체험하게 한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될지는 더더욱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말이 번지르르하고 무언가 되게 멋질 것만 같다. 영업당하는 것 같은 기분도 지울 수 없지만, 그리고 공연이 상당히 산만해질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되지만,  솔직히 기대가 많이 된다. 관객을 공연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겠다는 것인데, 이런 경우 관객의 적극적인 비판 역시 감수하겠다는 뜻이겠지.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기세등등 살기등등하게 이 연극은 보러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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