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해부학 (5)

로버트 버턴

by 곡도


Mario Sironi, Solitude, 1922-24,.jpg Mario Sironi의 [고독] (1922-24)



( 역자 - 라틴어는 명조체로 진하게 표시합니다. )




여러분의 격렬한 소요는 자주 내게 분노와 웃음을 일으켰습니다.


나는 때때로 루키아노스⟦1⟧을 비웃고 조소했습니다. 메니포스⟦2⟧를 풍자적으로 비난했고, 헤라클레이토스⟦3⟧에게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변덕스러운 울분으로 키득거리며 웃기도 했고 담즙이 내 간을 태우기도 했습니다. 내가 고칠 수 없는 그 폐단을 보면서 나의 마음도 심란했습니다. 설사 그나 그들에게 공감할지라도, 그런 이유로 그의 이름 아래 숨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만 말의 자유를 조금 더 얻기 위해 익명의 가면을 썼을 뿐이거나, 굳이 알고 싶다면, 히포크라테스가 다마게토스⟦4⟧에게 보낸 서신에서 길게 밝힌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서신에서 어느 날 데모크리토스⟦5⟧를 방문했던 일에 대해 말합니다. 그는 아브데라⟦6⟧ 교외에 있는 정원에서 데모크리토스⟦5⟧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무릎에 책을 얹고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때로는 쓰고 때로는 걷고 있었습니다. 그의 책의 주제는 우울과 광기였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여러 짐승들의 사체들이 놓여있었는데 그는 그것들을 막 잘라 해부한 상태였습니다. 그가 히포크라테스에게 말한 것처럼 신의 창조물들을 멸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흑담즙⟦7⟧, 즉 우울의 자리가 어디인지, 어디로부터 발생하는 것인지, 그것이 사람의 몸에서 어떻게 생기는지를 알아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더 잘 치료하기 위함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저술과 관찰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도 그것을 예방하고 피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죠. 관찰은 언제나 예방하고 피하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니까요. 그의 훌륭한 의도를 히포크라테스는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리하여 데모크리토스⟦5⟧ 주니어도 그를 모방하기 위해 용기를 내봅니다. 데모크리토스⟦5⟧가 자신의 연구를 완전히 끝내지 못했으며 오늘날 그것이 유실되었기 때문에, 데모크리토스⟦5⟧의 보충자로써, 이 논문으로 그것을 소생시키고, 수행하고, 완수할 것입니다.

이 책의 제목에는 나름의 정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 이 제목과 글이 다른 사람에 대한 비난을 충분히 정당화할 만큼 여러분의 격식에 맞지 않다면, 나는 앞표지에 더 환상적인 이름을 내 건 냉철한 논문들, 심지어 설교 그 자체를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은 팔려고 내놓는 책 앞 면에 환상적인 제목을 다는 것이 일종의 전략이기도 하죠. 하지만 종달새가 새 잡이 그물 속으로 내려올 때⟦8⟧, 실속 없는 많은 독자들은 마치 순진한 행인들이 그림 가게에서 익살스러운 그림을 바라보듯 머뭇거리며 바라볼 것입니다. 사려 깊은 작품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요. 사실 스칼리게르⟦9⟧가 관찰한 것처럼 "예상하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논증만큼 독자를 끄는 것은 없으며, 외설적인 소책자보다 더 잘 팔리는 것도 없습니다." 특히 새로움이 미각을 자극할 때 더 그렇지요. 겔리우스⟦10⟧가 말하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제목을 요란하게 꾸며서" "(플리니우스⟦11⟧가 세네카⟦12⟧의 글을 인용한 것처럼) 당장 아이를 낳을 준비가 된 딸을 위해 조산사를 급히 데려오던 사람조차 길에서 멈춰 서게 할 수 있습니다."⟦13⟧) 내 경우에는 내가 한 일에 대해 나보다 앞서서 명예로운 전례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모두를 위해 하나를 인용하겠습니다. 안토니 자라의 '지혜의 해부학'⟦14⟧이 그것인데, 4개의 부문으로 나뉘어 있고, 항들, 세부항목 등등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나 태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면, 나는 한 가지 이상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바쁘게 만들어서 우울을 피하기 위해 우울에 대한 글을 씁니다. "일보다 더 나은 치료법은 없다"라고 라제스⟦15⟧가 주장한 것처럼, 게으름보다 더 큰 우울의 원인은 없습니다. 어리석은 수고는 하찮은 일에 불과하고 장난같은 일에 매달리는 것은 별 소용이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차라리 무슨 일이든 하는 편이 낫다고, 설령 아무런 목적이 없더라도 무엇이든 하는 편이 낫다고 말한 위대한 세네카⟦12⟧의 말을 되새깁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썼고, 그래서 나는 이 놀이 같은 노동에 스스로를 바쁘게 묶어 두고, 여가를 부지런함으로 채워 휴일의 무기력한 권태를 피하려 합니다. 나는 한가함을 유익한 일로 바꿀 것입니다.


삶에 유익하고 즐거운 것을 말하여,

독자를 즐겁게 하면서 동시에 교훈을 줍니다.


이를 위해 나는 씁니다. 다음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말이죠. 루키아노스⟦1⟧가 말했습니다. "청중이 없으니 나무를 향해 암송하고 기둥을 향해 연설합니다." 파울루스 아이기네타⟦16⟧은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무언가 알려지지 않았거나 생략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연마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누군가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그들의 몸에도 좋고 영혼에는 더 좋을 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만일 명성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처럼 하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보여주세요. (다른 사람이 여러분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여러분의 앎은 아무것도 아니까요.) 나는 투키디데스⟦17⟧의 다음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어떤 것을 알면서도 표현하지 않는다면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처음 이 일에 착수했을 때, 그가 말했듯이 나는 어떤 내적 충동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글을 써서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내 목표였습니다. 나는 무거운 마음, 부풀어 오른 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건 일종의 머릿속의 종양과 같습니다. 나는 이 짐을 내려놓기를 몹시도 원했고, 이보다 더 적합한 배출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내가 제대로 자제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고통이 있는 곳에 손가락이 있기 마련이어서 가려운 곳은 반드시 긁어야만 합니다. 나는 이 병으로 인해 적지 않게 마음이 상했습니다. 오히려 우울이 나의 연인, 나의 아에게리아⟦18⟧, 즉 나의 사악한 수호령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전갈에 쏘인 사람처럼 침을 침으로 빼내고, 슬픔을 슬픔으로 위로하며, 게으름을 게으름으로 평안케 하고, 뱀 독에 대한 해독제를 뱀의 독에서 얻듯이, 나는 내 병의 주된 원인에서 해독제를 만들고자 합니다. 펠릭스 플라터⟦19⟧도 그렇게 했죠. 그가 밝혔듯이 그는 아리스토파네스⟦20⟧의 개구리들 중 일부가 그의 뱃속에 들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레에에켁스, 코악스, 코악스, 웁스, 웁스⟦21⟧ 하고 울면서요. 그래서 그는 7년 동안 의학을 공부했고 자신을 달래기 위해 유럽을 여행했습니다. 나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나는 우리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거나 개인적으로 아는 이들이 빌려준 의학서들을 뒤적이는 수고를 들였습니다. 안될 이유라도 있나요? 카르다노⟦22⟧는 자신의 아들이 죽은 후 '위안'이라는 책을 썼다고 합니다. 툴리우스⟦23⟧ 역시 딸이 죽은 후 그러한 의도로 같은 주제의 책을 썼습니다. 분명 그의 책이 맞을 겁니다. 만약 어떤 사기꾼이 그의 이름으로 퍼트린 거라면 립시우스⟦24⟧가 아마도 의심했겠지요. "다른 사람들이 듣거나 읽는 것을 나는 느끼고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책을 통해 지식을 얻었고 나는 우울을 통해 지식을 얻습니다"라고 했던 마리우스⟦25⟧에게 나는 동감을 표합니다. 그것을 경험했던 로베르토⟦26⟧를 믿으세요. 내 경험을 통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 내게 가르침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인의 말처럼, 나는 불행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기에 불행한 이들을 돕는 법을 배웁니다. 나도 동지애로써 다른 사람들을 도울 것입니다. 옛날의 고결한 여인이 "자신이 나병 환자이면서도 전 재산을 들여 나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세웠듯이" 나도 나의 가장 큰 재산인 시간과 지식을 공익을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네, 그러나 여러분은 이것이 행동을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불필요한 작업이고, 양배추를 두 번 삶는 것, 다시 말해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대체 목적이 뭐냐구요?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빠짐없이 이미 말해졌습니다." 루키아노스⟦1⟧ 역시 같은 주제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이미 얼마나 많은 의사들이 우울이라는 주제에 대한 책과 정교한 소책자들을 저술했습니까? 제 글에 새로운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남들로부터 빼앗아온 것이고, 내 책장은 나를 도둑이라 말합니다. 시네시우스⟦27⟧의 혹독한 판단이 사실이라면, "죽은 자들의 옷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노동을 훔치는 것이 가장 큰 죄악이 될 것입니다." 그럼 대부분의 작가들은 어떻게 될까요? 나는 이런 종류의 중죄를 범한 사람들과 함께 손을 들고서, 피고인으로서 유죄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형벌을 감수하겠습니다. 여기서 가장 큰 진실은 많은 사람들이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집필에는 끝이 없다"라고 그 지혜로운 사람이 오래전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이 낙서의 시대에 계속 써 내려갑니다. 책이 무수히 많은 가운데 (훌륭한 사람이 말한 것처럼) "인쇄기는 혹사당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보여줘야 한다는 갈망에서 명성과 명예를 원하여 (배운자나 못배운 자나) 무엇이든 상관없이 써 내려가면서, 어디에서 긁어모았는지는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명성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심지어 아픈 와중에도, 건강이 훼손되고, 펜조차 잡을 수 없게 되어도, 무언가를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스칼리게르⟦9⟧가 말하길, 다른 사람들을 몰락과 파멸로 이끌더라도 그들은 명성을 얻으려 합니다. 작가로 인정받기 위해, 작가로 불리기 위해, 박식한 학자로 생각되고 신뢰받기 위해, 무지한 군중들 사이에서 쓸모없는 재능으로 명성을 얻기 위해, 종이의 왕국을 얻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익의 희망은 없고 오직 명성만을 바라보며 이 침전하는 야심 찬 시대에, 나이가 들 수록 미숙한 학문 속에서 그들은 야망에 부풀고 성급합니다. (이것이 스칼리게르⟦9⟧의 비판입니다.) 청중도 되기 어려운 자들이 청중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반드시 전문가이자 선생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배움으로 뛰어들 것입니다. 시민, 군대, 신, 작가들에 대해서요. 메모하기 위해 색인과 팸플릿을 긁어모으고, 물건을 수송해 오라고 상인들을 낯선 항구로 보내고, 대단한 책을 쓰지만, 그들이 더 많이 배웠기 때문이 아니라 말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더 나은 학자가 아닌 더 대단한 수다쟁이가 됩니다. 그들은 보통 공익을 가장하지만 게스너⟦28⟧가 관찰한 것처럼 그것은 그들을 부추기는 자부심과 허영심일 뿐입니다. 어떤 새로운 것도 없고 주목할 것도 없으며 그저 다른 말로 되풀이할 뿐입니다. 어쩌면 인쇄공들이 놀지 않게 하려고, 혹은 자신이 살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무언가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약사처럼 우리는 매일 새로운 혼합물을 만들고 한 그릇에서 다른 그릇으로 부어 넣습니다. 그리고 옛 로마인들이 입지가 좋지 않은 그들의 로마를 꾸미기 위해 온 세상의 도시들을 약탈했던 것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지혜의 알짜배기를 걷어내고 그들의 가꾸어진 정원에서 꽃을 골라 우리의 불모의 작은 땅에 옮겨 심습니다. 자신들의 빈약한 책을 남의 기름기로 살찌우기 위해 다른 이들을 거세합니다. (그래서 요비우스⟦29⟧는 비판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야윈 책을 다른 사람이 쓴 작품의 살찐 지방으로 비계 기름을 입힙니다.⟦30⟧ 이름 없는 도둑이지요. 내가 지금 하는 것과 같은 잘못을 많은 작가들이 찾아내지만 그들 또한 같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세 글자의 남자들⟦31⟧, 모두 도둑들입니다. 그들은 새 논평을 채우기 위해 오래된 작가들의 것을 훔치고, 내가 했던 것처럼 엔니우스⟦32⟧의 쓰레기와 데모크리토스⟦5⟧의 구덩이를 긁어모읍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들과 책방들 뿐만 아니라 모든 실내용 변기와 옥외 화장실까지 우리의 부패한 종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똥을 싸면서나 읽을 법한 시를 쓰니까요. 그것들은 파이 밑에 넣어서 양념 바른 고기가 타지 않도록 하는 데나 쓰이죠. 스칼리게르⟦9⟧가 말하길 "프랑스에서는 글을 쓸 자유가 있지만 소수만이 그럴 능력이 있습니다." 이전까지 배움은 현명한 학자들의 은총을 받았지만, 이제 고귀한 과학은 비천하고 읽고 쓸 줄도 모르는 엉터리 문인들에게 헐뜯깁니다." 또한 그 엉터리 문인들은 자만심, 필요, 돈벌이, 혹은 거물들에게 기생하며 그들에게 아부나 떨고 공모나 하기 위해 글을 쓰면서 허접한 일, 쓰레기,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을 생산합니다. 수천 명의 작가들 속에서 여러분은 제대로 된 단 한 명을 찾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들의 책을 읽으면 여러분은 조금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한 편으로는 훨씬 더 나빠질 겁니다. 완성되기보다는 감염된다고나 할까요.







1) Lucian - 루키아노스는 2세기 로마 제국 시기의 그리스어 작가다. 시리아 사모사타 출신으로, 철학자라기보다 수사학자이자 풍자 작가에 가깝다. 그는 철학을 신념 체계로 존중하지 않고, 스토아·플라톤·피타고라스 계열의 교리를 신화적 허구처럼 다뤘다. 대화편 형식을 통해 죽은 자들, 신들, 철학자들을 한자리에 세워 말하게 하며, 권위·진지함·고상함을 해체한다. 그의 태도는 “진리를 제시”하는 데 있지 않고, “진리가 말해지는 방식” 자체를 폭로하는 데 있다. 루키아노스는 의미를 세우지 않는다. 의미가 만들어지는 장치, 담론이 신성화되는 순간을 조롱으로 드러낸다. 회의적이되 인식론을 세우지 않고, 냉소적이되 윤리를 설교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언어의 공허와 인간이 그것을 얼마나 쉽게 숭배하는가라는 문제다.



2) Menippus - 메니포스는 기원전 3세기 가다라 출신의 키니코스 학파 인물로, 저술은 전부 소실되었고 전승은 주로 루키아노스를 통해 남아 있다. 그는 철학을 체계로 세우지 않았고, 철학자들의 태도 자체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 메니포스의 특징은 사변을 반박하는 논증이 아니라, 형식 파괴다. 진지한 담론을 갑자기 일상어·속어·우스꽝스러운 장면으로 끌어내려 철학의 위엄을 무너뜨린다. 신, 사후 세계, 윤리, 형이상학을 다루되 그 어느 것도 성역으로 두지 않는다.



3) Heraclitus - 헤라클레이토스는 기원전 6–5세기 에페소스 출신 철학자다. 단편만 남아 있으며, 의도적으로 난해하게 썼다. 설명보다 이해의 태도를 요구한다. 그의 사유의 핵심은 변화와 대립이다. 존재는 고정되지 않고 흐르며, 동일성은 안정이 아니라 긴장 속에서 성립한다. 삶과 죽음, 낮과 밤처럼 서로 반대되는 것들은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성립시킨다. 이를 관통하는 개념이 로고스다. 세계에는 질서가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상식적 이성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점을 보지 못하는 다수를 “잠든 자들”이라 불렀다. 우울증에 걸린 악인으로 여겨졌으며 웃는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와 반대로 '우는 철학자'로 알려졌다.



4) Damegetus - 다마게토스는 기원전 6세기 말–5세기 초, 에페소스에서 활동한 귀족 가문의 인물이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부친으로, 에페소스의 세습적 권위‧제의적 직위를 지닌 집안에 속해 있었다.



5) Democritus - 기원전 5세기 말에서 4세기 초에 활동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원자론을 기반으로 한 우주론을 체계화시켰으며 유물론적 철학을 지향했다. 그는 세계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입자, 곧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고, 이 원자들이 텅 빈 공간 속에서 운동하며 결합과 분리를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사유에서 자연은 신의 의도나 목적이 아니라 필연과 우연의 결과로 움직인다. 감각은 원자들의 배열이 우리에게 남기는 인상일 뿐이며, 단맛·쓴맛 같은 성질은 관습적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원자와 공허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웃는 철학자’라는 별칭으로 전해지는데, 인간사와 운명의 어리석음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태도 때문이었다. 윤리에서도 쾌락을 단순한 방종이 아니라 영혼의 평정, 균형 잡힌 기쁨으로 이해했다. 후대의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가 그의 사상을 이어 받아 서양 유물론의 한 줄기를 만들었다. 거의 동시대 사람이었던 플라톤의 관념론과 대립했다. (작가는 자신을 데모크리토스의 후계자로 자처하고 있다.)



6) Abdera - 아브데라(현대 그리스어) 혹은 압데라 (고대 그리스어) 라고 읽는다. 데모크리토스가 태어나고 정착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7) 흑담즙 (검은 담즙) - 고대에는 우울증을 흑담즙이라고 불렀다. 흑담즙은 고대 그리스 의학의 4체액설에서 말하는 네 가지 체액 중 하나다. 히포크라테스 전통과 갈레노스 의학에서 인간의 기질과 정신 상태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쓰였다. 흑담즙이 과도하다고 여겨질 때 나타나는 상태가 우울이다. 이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침울함·고독·비관·사유의 과잉을 동반하는 기질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철학자·시인·사유하는 인간은 종종 흑담즙적 성향을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8) larks come down to a day-net - 안전하다고 믿는 것에 이끌려 스스로 덫에 걸린다는 뜻이다. 낮에 보이는 그물은 새에게 위험으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경계 없이 내려오다 붙잡힌다는 관찰에서 나온 표현이다.



9) Scaliger - 스칼리게르는 16세기 전반,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전성기에 활동한 학자다. 이탈리아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으며, 문헌학·문법·자연철학 전반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고전 권위를 절대적으로 신뢰했고,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를 방어하는 데 집요했다. 동시대의 에라스무스적 유연함이나 회의보다는, 체계·위계·정통성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문헌 비평에서도 창조적 해석보다는 규범 설정자에 가까웠다. 그의 이름은 르네상스 학문이 지닌 권위 회복의 욕망과 배타성을 함께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10) Gellius - 겔리우스는 2세기 로마의 학자이자 문필가다. 그는 체계적인 철학자라기보다, 읽고 들은 것을 밤마다 공책에 적어 두는 수집가에 가까웠다. 그 기록이 훗날 '아티카의 밤들'이 되었다. 이 책에는 법률, 문법, 역사, 기이한 일화, 잊힌 시 구절이 뒤섞여 있다. 겔리우스는 옛 문헌의 목소리를 보존하는 일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그의 글 덕분에 사라졌을 수많은 라틴 작가들의 흔적이 오늘까지 남았다.



11) Pliny - 1세기 경 고대 로마 사람으로, 이 시절 두 명의 플리니우스가 있었다. 나이가 많은 쪽은 대(大)플리니우스 나이가 적은 쪽은 소(小)플리니우스로 불렸는데 보통 (대)플리니우스를 지칭하는 듯 하다. 플리니우스는 1세기 로마 제국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관료로 '박물지'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연·의학·광물·동식물·기술·예술까지 당시 알려진 거의 모든 지식을 수집해 체계화하려 했다. 독창적 사상가라기보다는 지식의 집적자이자 편찬자에 가깝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고대 세계가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플리니우스의 자연은 중립적 대상이 아니다. 경이롭고 기이하며, 인간의 도덕과 질서와 끊임없이 연결된다. 그의 글은 과학과 신화, 관찰과 전승이 아직 분리되지 않았던 지식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12) Seneca - 세네카는 1세기 로마 제국의 철학자이자 정치가다. 네로의 스승이었고,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스토아 윤리를 설파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철학은 체계적 이론보다 삶의 훈련에 가깝다. 분노, 두려움, 죽음, 시간, 고통 같은 문제를 추상적으로 다루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반복해 다듬는다. 그래서 그의 글은 논증이라기보다 자기 점검과 권고에 가깝다. 세네카의 특징은 모순이다. 금욕을 말하면서 부유했고, 초연함을 말하면서 권력에 깊이 관여했다. 이 긴장은 그의 철학을 위선으로 보이게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 속에서 윤리가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이기도 하다.



13)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을 방해하고 헤매게 할 수 있다'는 뜻인 듯하다.



14) Anatomy of Wit (지혜의 해부학)은 16세기에 출판된 책으로 John Lyly가 저자다. 안토니 자라가 쓴 '지혜의 해부학'은 찾지 못했는데, 안토니 자라가 쓴 '지혜의 해부학'이 따로 있는 것인지, 저자가 착각을 한 것인지, 내가 번역을 잘못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15) Rhasis - 라제스는 9–10세기, 아바스 왕조 시기의 페르시아 의사이자 철학자다. 그는 임상 관찰을 중시했고, 질병을 이론보다 증상·경과·차이로 구분했다. 특히 천연두와 홍역을 명확히 구별한 최초의 의사로 평가된다. 의학은 권위의 반복이 아니라, 경험의 축적이어야 한다는 태도가 일관된다. 알라지는 갈레노스 권위를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았고, 이성·관찰·회의를 의학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의 저술은 중세 유럽 의학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의학을 신학과 분리된 실천적 지식으로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16) Paulus Aegineta - 파울루스 아이기네타는 7세기, 비잔틴 제국 말기에 활동한 의사다. 아이기나 섬 출신으로 전해진다. 그는 '의학총서' 7권을 편찬한 인물로, 고대 그리스 의학을 요약·정리·실용화했다. 독창적 이론가라기보다, 실제 치료에 쓰일 수 있는 지식을 선별해 남긴 편찬자에 가깝다. 특히 외과 분야에서 중요하다. 탈장, 결석, 절단, 농양 등 수술적 처치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술했으며, 이 책은 중세 이슬람 세계와 라틴 서유럽에서 표준 의학서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파울루스 아이기네타는 고대 의학이 단절되지 않고 중세로 이행되는 관문 같은 인물이다.



17) Thucydides - 투키디데스는 기원전 5세기,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직접 겪은 아테네의 역사가다. 그는 신화나 전승을 배제하고, 자신이 목격했거나 교차 검증한 사실만으로 역사를 쓰려 했다. 그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연대기라기보다 권력·공포·이익이 어떻게 인간의 판단을 왜곡하는지를 분석한 기록이다. 연설문은 실제 발언의 축약·구성물이지만, 상황의 논리를 가장 정확히 드러내는 형태로 제시된다.



18) Aegeria - 아에게리아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님프로, 로마의 전설적 두 번째 왕 누마 폼필리우스의 조언자이자 동반자로 알려져 있다. 아에게리아는 숲과 샘의 정령으로, 누마에게 종교 의례와 법, 제의 질서를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말은 신탁이 아니라 조용한 조언의 형태를 띠며, 폭력이나 정복이 아닌 규율과 절제의 기원을 상징한다. 누마가 죽은 뒤 아에게리아는 슬픔에 잠겨 눈물로 변했고, 그 눈물이 샘이 되었다는 전승이 있다. 이로써 그녀는 로마에서 법과 종교의 기원, 그리고 지혜가 자연에서 흘러나온다는 관념을 연결하는 상징적 존재로 기능한다.



19) Felix Plater - 펠릭스 플라터는 16세기 후반–17세기 초, 바젤에서 활동한 의사이자 해부학자다. 근대 의학으로 이행하는 시기의 핵심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질병을 체액의 불균형보다는 증상과 임상 경과로 분류하려 했고, 특히 정신 질환을 신학이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의학적 대상으로 다뤘다. 멜랑콜리아, 광기, 환각을 비교적 세밀하게 구분한 점에서 중요하다. 플라터는 고전 권위를 존중했지만 그대로 반복하지 않았다. 관찰·기록·분류를 통해 의학을 경험적 학문으로 재정렬하려 했으며, 중세 의학에서 근대 임상 의학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놓인 인물로 평가된다.



20) Aristophanes - 아리스토파네스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 민주정의 한가운데서 활동한 희극 작가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희극의 거의 전부가 그의 작품이다. 그의 희극은 노골적인 풍자와 과장으로 정치가·철학자·시민 전체를 공격한다. 소크라테스를 조롱한 '구름', 전쟁을 비웃은 '아카르나이 사람들' 처럼, 희극은 오락이 아니라 공적 담론에 대한 폭력적 개입이다. 아리스토파네스에게 웃음은 비판의 도구다. 그는 이상을 제시하지 않고, 민주정·전쟁·지식인의 위선을 웃음으로 해체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시대적이면서도, 동시에 정치가 반복될 때마다 다시 읽히는 잔혹한 기록으로 남는다.



21) Brecececex, coax, coax, oop, oop -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개구리]에서 개구리의 울음 소리를 흉내낸 코러스 부분이다.



22) Cardan - 카르다노는 16세기, 르네상스 말기의 이탈리아 의사이자 수학자, 점성가다. 한 분야에 묶이지 않는 전형적인 혼종적 지식인이다. 그는 의학에서는 임상 경험과 개인적 사례를 중시했고, 수학에서는 3차 방정식 해법을 정식화해 대수학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동시에 점성술과 예언을 진지하게 다루며, 합리성과 미신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넘나들었다. 카르다노의 핵심은 체계가 아니라 불안정성이다. 천재성과 자기 파괴, 과학과 미신, 이성적 계산과 강박적 운명이 한 인물 안에 공존한다. 그는 르네상스 지성이 얼마나 쉽게 균열되는지를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23) Tully - Marcus Tullius Cicero (키케로)를 뜻하는 듯하다. 툴리우스는 기원전 1세기,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웅변가다. 본명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로, ‘툴리’는 성씨에서 온 호칭이다. 그는 그리스 철학을 라틴어로 옮겨 정치·윤리·법의 언어로 재구성했다. 독창적 체계의 창시자라기보다, 철학을 공적 삶에 맞게 번역한 인물이다. 웅변술은 설득의 기술이 아니라 공화정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로 이해했다. 툴리우스의 글은 이상과 현실의 긴장을 드러낸다. 공화정의 덕을 말했지만 권력 투쟁 속에서 끝내 희생되었다. 그래서 그는 철학자라기보다, 사유를 정치의 언어로 밀어 넣다 실패한 인물로 읽힌다.



24) Lipsius - 립시우스는 16세기 후반–17세기 초, 네덜란드 출신의 인문주의 학자다. 필롤로기스트이자 정치 사상가로, 후기 르네상스와 초기 근대를 잇는 인물이다. 그는 스토아 철학, 특히 세네카와 타키투스를 재해석해 '신스토아주의'를 정식화했다. 이는 금욕적 철학을 개인 수양에만 두지 않고, 불안정한 시대를 견디는 정치적·윤리적 태도로 전환하려는 시도였다. 립시우스의 사유는 혼란을 제거하지 않는다. 전쟁·폭력·권력의 불가피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감정의 절제와 내적 규율로 버티는 법을 제시한다. 그의 스토아는 이상이 아니라 위기 관리의 철학이다.



25) Marius - 마리우스는 기원전 2세기 말–1세기 초, 로마 공화정 말기의 군인·정치가다. 평민 출신으로 일곱 차례 집정관에 오른 이례적 인물이다. 그의 핵심 업적은 마리우스 군제 개혁이다. 토지 소유 요건을 폐지해 무산 시민을 병사로 편입했고, 군을 국가의 임시 소집대에서 직업 군대로 바꾸었다. 이는 로마의 군사력을 비약적으로 강화했지만, 병사의 충성을 국가보다 장군 개인에게 묶는 결과를 낳았다. 마리우스는 공화정을 수호하려 했다고 주장했으나, 그의 개혁은 오히려 내전의 조건을 만들었다. 그는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는 구조적 균열의 출발점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26) Roberto -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버튼(Robert Burton)이 자기 이름을 라틴화한 형태다.



27) Synesius - 시네시우스는 4–5세기, 후기 로마 제국 시기의 철학자이자 기독교 주교다. 북아프리카 키레네 출신으로, 플라톤주의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었다. 그는 네오플라톤주의와 기독교 신앙을 긴장 속에서 병존시켰다. 영혼의 상승, 우주의 질서 같은 철학적 개념을 유지하면서도, 주교로서 교회 제도와 현실 정치에 관여했다. '꿈에 대하여'에서는 예언·상징·무의식을 철학적으로 해석한다. 시네시우스의 특징은 미결성이다. 철학자로서 완전히 개종하지도, 신학자로서 철학을 버리지도 않았다. 그는 고전 철학이 기독교 세계로 흡수되기 직전의 균열과 망설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28) Gesner - 게스너는 16세기 중엽, 취리히를 중심으로 활동한 스위스의 박물학자이자 의사, 문헌학자다.

그는 '동물지'를 통해 고대 문헌, 중세 전승, 동시대 관찰을 한데 모아 자연 지식을 총집합했다. 직접 관찰과 전승, 심지어 오류까지도 배제하지 않고 나란히 배열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게스너는 자연을 해석하거나 설명하려 하기보다, 가능한 한 모두 기록하려는 태도를 취했다. 그의 작업은 근대 생물학 이전 단계의 자연사가 어떤 형태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질서보다 집적과 분류의 충동이 앞선 지식의 형식을 드러낸다.



29) Jovius - 요비우스는 16세기,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역사가이자 인문주의자다. 코모 출신으로, 교황청과 유럽 궁정의 중심에서 인물과 사건을 기록했다. 그의 역사 서술은 연대기적 분석보다 인물 중심의 서사에 가깝다. 장군·군주·교황의 성격과 명성을 중시했고, 권력은 추상적 구조가 아니라 개인의 명예와 평판을 통해 움직인다고 보았다. 요비우스는 비판적 역사학자라기보다, 르네상스적 의미에서의 기억 관리자다. 그의 글은 사실의 엄밀함보다는, 당대 유럽이 스스로를 어떻게 기념하고 전시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으로 읽힌다.



30) 윤색한다는 뜻.



31) 라틴어로 fur (세 글자)는 도둑이란 뜻.



32) Ennius - 엔니우스는 기원전 3–2세기, 로마 공화정 초기의 시인으로 흔히 라틴 문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남이탈리아 출신으로 그리스어·오스코어·라틴어를 모두 구사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대표작 '연대기'는 로마 건국에서 동시대까지를 서사시로 엮은 작품으로, 로마의 역사를 신화가 아닌 역사적 시간 속에 배치하려는 시도였다. 형식 면에서는 호메로스적 서사시를 로마에 이식했다. 엔니우스의 중요성은 완성도보다 전환에 있다. 그는 로마가 그리스 문화를 모방하되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의 역사와 언어로 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열어 보인 인물이다.






/번역/우울증의 해부/우울의 해부/The Anatomy of Melancholy/Robert Burton/로버트 버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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