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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Oct 26. 2022

우울의 해부학 (6)

로버트 버턴

Claude Monet의 [해돋이] (1872)




 ( 역자 - 라틴어는 명조체로 진하게 표시합니다. )




     그런 글을 읽는 사람은 헛된 꿈과 쓸데없는 경박함 외에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칼리마코스①가 오래전에 비난했듯이) 훌륭한 책이 큰 해악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카르다노②는 프랑스인과 독일인들이 목적 없이 낙서하듯이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하지 못하게 막겠다고 말하지 않고 그들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그들이 글을 쓰는 것을 막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새로운 창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같은 그물을 짜고, 같은 밧줄을 꼬고 또 꼽니다. 만약 그것이 새로운 창작품이라면, 한심한 사람들이 읽고 한심한 사람들이 쓰는 천박하고 하찮은 글을 그 누가 쓰지 못하겠습니까?  작가는 반드시 불모의 재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낙서의 시대에는 그 무엇도 구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군주는 자신의 군대를 과시하고, 부자는 자신의 건물을 자랑하고, 군인은 자신의 남자다움을, 학자는 자신의 소소한 놀잇감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들은 읽어야 하고,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들어야 합니다. 


     한 번 말하고 기록된 것은 모든 남자들이 다 알아야 합니다. 늙은 부인들과 아이들이 그저 오고 가는 동안에 말입니다. 


     "이번 한 해 동안 한 무리의 시인들이 대체 무엇을 내놓았습니까?" 플리니우스③가 소시우스④에게 불평했습니다. "올해 4월에는 이 사람 아니면 저 사람 누군가가 매일 낭독을 했죠. 올해 내내, 이 시대 동안 (말하자면)  새로 나온 책의 목록이 프랑크포트 시장, 그러니까 우리 국내 시장에 나왔습니까? 우리는 1년에 두 번,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해서 뽐내며 우리의 지혜를 펼치고 판매하기 위해 준비를 하지요. 우리는 많은 공을 들이면서도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게스너⑤가 열렬히 바라는 것처럼, 군주들의 칙령과 진지한 감독자들에 의해 이러한 자유를 제지하기 위한  빠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끝도 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누가 그토록 책을 갈망하고, 누가 애써 책을 읽을까요? 이미 우리는 책의 큰 혼돈과 혼란을 겪고 있으며,  그것들로 인해 압박을 느끼고, 눈은 독서로 인해 고통받고, 손가락은 비비꼬입니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숫자 중 하나입니다.⑥ 우리는 숫자입니다. (우리는 단순한 암호입니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마크로비우스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이나 내 것이 아닌 것, 그것은 모두 내 것이고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닙니다. 솜씨 좋은 가정주부가 몇 개의 양털 뭉치로 한 장의 천을 짜듯이, 한 마리의 벌이 수많은 꽃들에서 밀랍과 꿀을 모아 새로운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듯이, 꽃이 만발한 숲 속의 빈 터에서 벌들이 각 꽃에서 한 모금씩 마시듯이, 나는 몇몇 작가들의 명작으로부터 이러한 시문을 발췌하여 열심히 모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상처 주는 일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작가에게도 잘못한 것이 없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책을 제공했습니다. 그것이 히에로니무스⑦가 네포티안⑧을 칭찬한 이유입니다. 그는 오늘날 일부 사람들이 하듯이 본 작가의 이름을 숨긴 채 전체 구절, 페이지, 소책자를 훔쳐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키프리아누스⑨의 것이고, 이것은 락탄티우스⑩의 것, 이것은 힐라리우스⑪의 것, 그리고 미누시우스 펠릭스⑫, 빅토리누스⑬, 아르노비우스⑭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나도 나의 저자들을 인용하고 차용합니다. (아무리 몇몇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엉터리 문인이 아는 체를 하며 자신들에게 형성된 세련된 취향과는 반대로 무지를 덮어 감추는 망토처럼 굴더라도, 나는 해야 할 일을 하고, 할 것입니다.) 나는 가져가지만 훔치지는 않습니다. 바로⑮가 그의 책에서 꿀벌에 대해 말하길, 그들은 거의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꿀을 채취하며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에 대해서 말하자면, 내가 누구를 상처 입히기라도 했나요? 이 글 내용의 대부분은 그들의 것이지만 제 것도 있습니다. 애초에 그것이 취하여진 곳은 분명합니다.(세네카⑯ 역시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새롭게 사용될 때 원래 있던 것과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자연은 우리 몸의 영양소를 통합하고, 소화하고, 동화하고, 내가 삼킨 것을 동화시키고,  내가 취한 것을 적절하게 배치합니다. 나는 나의 마세로니콘⑰을 실행하기 위해 그들에게서 공물을 취합니다. 그 방법은 나만의 것입니다. 이전에 말하여지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방법만이 예술가의 조건입니다. 우리는 이미 말하여진 것 외에는 말할 수 없으며, 오직 방법과 구성만이 우리의 고유한 것이고 우리가 학자임을 드러냅니다. 오리바시우스⑱, 아이시우스⑲, 아비켄나⑳는 갈레노스㉑로 부터 모든 것을 가져왔지만, 자신만의 방법과 다른 방식,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인들은 호메로스㉒에게서 훔치지요. 에일리안㉓이 말하길, 호메로스가 토한 것을 우리가 핥아먹는다고 하더군요. 신학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㉔의 단어들을 사용하며, 이야기꾼들도 그렇게 합니다. 그럼 마지막에 오는 사람이 가장 좋긴 하겠네요.


      더 후대로 갈수록 더 호의를 받을 것이며, 더 고귀한 글을 씁니다. 


     물리학과 철학에 고대의 거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디에고 데 에스텔라㉕의 말에 저도 동감합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있는 난쟁이는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더 많이 추가하고 변형함으로써 내 전임자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유명한 의사인  엘리아누스 몬탈투스㉖가 머리의 질병에 대해 쓰기 위해 제이슨 프라텐시스㉗, 헤르니우스㉘, 힐데스하임㉙ 등등의 글들을 차용한 것보다 나에 대한 더 큰 편견은 없겠죠. 수많은 말들이 한 경기장에서 달려갑니다. 한 명의 논리학자, 한 명의 수사학자가 엎치락뒤치락 차례차례 달려갑니다. 여러분을 약하게 만드는 것에 대항하십시오.

 

     여러분이 내게 마음대로 짖고 위협적으로 으르렁 거려도


     저는 그렇게 해결하겠습니다. 그리고 야만적인 실수, 도리스 방언, 즉흥적인 방식, 동어반복, 원숭이처럼 어리석은 모방, 여러 거름더미에서 찾아내어 붙여놓은 조각들의 광시곡, 작가들의 배설물, 혼란스럽게 굴러 떨어지는 장난감과 겉치레들, 이것들은 예술, 발명, 판단, 재치, 학습이 없이 거칠고, 날 것이며, 무례하고, 허황되고, 터무니없고, 건방지고, 무분별하고, 구성이 나쁘고, 소화가 안되고, 자만심이 강하고, 천박하고, 게으르고, 둔하고, 메마릅니다. 나 역시 부분적으로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내 행동보다 나를 더 나쁘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제 글이 읽을 가치가 없다는 걸 나는 인정합니다. 헛된 주제를 정독하느라 여러분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혹시나 누군가 내 글을 인용한다면 나는 나 자신을 싫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그럴 가치가 없으니까요.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나에게는 이소크라테스㉚가 그것을 죄지은 자들을 위한 피난처로 일컬었던 선례가 있다는 것입니다.㉛터무니없고, 자만심이 강하고, 게으르고, 읽고 쓸 줄도 모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 했고, 더 할 수도 있으며, 아마 그건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본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나를 신임하지 않는다면 나는 다른 이들이나 아마도 여러분을 차례대로 괴롭히게 되겠군요. 이러한 복수의 법칙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지금 가서 비난하고, 비판하고, 호통을 쳐 보시죠.









1) Callimachus - 기원전 3-4세기 경 고대 그리스의 학자이자 시인. 



2) Cardan - Gerolamo Cardano의 프랑스 이름. 지롤라모 카르다노는 16세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수학자이자 의사이고 점성술사이다.



3)  Pliny - 1세기 경 고대 로마 사람으로, 이 시절 두 명의 플리니우스가 있었다. 나이가 많은 쪽은 대(大)플리니우스 나이가 적은 쪽은 소(小)플리니우스로 불렸는데 여기서는 어느 플리니우스를 지칭하는지 모르겠다. (대)플리니우스는 정치가, 박물학자, 백과사전 편찬자이며 (소)플리니우스는 정치가, 저술가이다.  



4) Sossius Sinesius - 1세기 경 로마의 원로원 의원.



5) Gesner - 16c 스위스의 의사, 동물학자, 박물학자.



6) 만약 내가 한 번역이 맞다면 '숫자'가 표상하는 이미지에 대한 문학적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하다. 여러 숫자 중의 하나, 전체의 일부, 덧셈 뺄셈처럼 계산할 수 있는, 엄중함, 정확함, 상징성 등등... 그 뒤에 '우리는 암호입니다.'라는 표현은 '숫자'에 '비밀'이 추가되면서 그러한 특징이 더 강조되는 한 편 더 인간적이고 문학적이 된다. 



7)  Hierom - 4세기 경 살았던 가톨릭 성인으로 암브로시우스, 그레고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라틴 4대 교부로 일컬어진다.



8) Nepotian - 누구인지 찾지 못함.



9) Cyprian - 3세기 경 초기 기독교 작가.



10)  Lactantius - 3세기 경 초기 기독교 작가.



11) Hilarius - 4세기 경 그리스도교의 교부. 



12) Minutius Felix - 2-3세기 경 기독교 학자.



13) Victorinus - 2-3세기 경 라틴어 성경 주석을 최초로 저술한 인물.



14) Hilarius - 3-4세기 경 초기 기독교 신학자.



15) Varro - 기원전 1세기 경 고대 로마의 저술가. 



16)  Seneca - 에스파냐 출신의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자 극작가. 스토아 철학자로 네로 황제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17) Maceronicon - 무슨 뜻인지 찾지 못함. 마카로니 같은 일종의 음식 이름이 아닐까?



18) Oribasius - 4세경 의학 작가였으며 로마 황제 줄리앙의 개인 의사.



19) Aesius - 누군지 찾지 못함. 맥락상 의사인 듯. 



20) Avicenna - 이븐 시나(Ibn Sina)의 라틴명으로 10-11세기 경 아라비아의 철학자. 근대 의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21) Galen - 2세기 경 활동했던 의사로, 1000년 이상 의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많은 저서를 남겼다. 의학의 황제라고 칭송되었다.



22) Homer - 기원전 8세기 경의 위대한 음유 시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23) Aelian - 정확하지는 않으나 2-3세기 활동했던 로마의 역사가이자 저술가인 듯함.



24) Austin - 누군지 모르겠음. '성 아우구스티누스'일 수도 있지만 성인이라는 (St.) 표시가 없음.  



25) Didacus Stella -  16세기 경 스페인의 신비주의자이자 신학자.



26) Aelianus Montaltus - 누군지 찾지 못함.



27) Jason Pratensis - 15-16세기 네덜란드 의사이자 시인. 



28) Heurnius - 네덜란드 의사이자 철학자.



29) Hildesheim - 누군지 찾지 못함.



30) Isocrates - 4-5세기 경 고대 그리스의 변론가, 수사가, 연설가, 웅변가. 



31) 이소크라테스는 영원불멸의 진리나 고유한 사상을 갖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조절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이라고 주장했다. 이 글의 저자는 '죄지은 자들', 즉 다른 사람의 사상과 저작에 의지해서 글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정당성을 이소크라테스에게서 찾고 있는 듯 하다.



32) '숨길수 없다'는 뜻인 듯하다.







/번역/우울증의 해부/우울의 해부/The Anatomy of Melancholy/Robert Burton/로버트 버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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