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버턴
( 역자 - 라틴어는 명조체로 진하게 표시합니다. )
그런 글을 읽는 사람이 헛된 꿈과 쓸데없는 경박함 외에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칼리마코스⟦1⟧가 오래전에 비난했듯이) 훌륭한 책이 큰 해악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카르다노⟦2⟧는 프랑스인과 독일인들이 목적 없이 낙서하듯이 글을 쓰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출판을 말리지는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같은 그물을 짜고, 같은 밧줄을 꼬고 또 꼽니다. 만약 그것이 새로운 창작품이라면, 한심한 사람들이 읽고 한심한 사람들이 쓰는 천박하고 하찮은 장난감이나 잡동사니를 그 누가 만들어내지 못하겠습니까? 이 낙서의 시대에 아무것도 지어내지 못하는 자라면, 그는 반드시 불모의 재주를 가진 자일 것입니다. 군주는 자신의 군대를 과시하고, 부자는 자신의 건물을 자랑하고, 군인은 자신의 남자다움을 내세우고, 학자는 자신의 소소한 놀잇감을 내놓습니다. 그들은 읽어야 하고,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들어야 합니다.
한 번 말하고 기록된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야 합니다. 늙은 부인들과 아이들도 그저 오고 가며 알게 됩니다.
"이번 한 해 동안 한 무리의 시인들이 대체 무엇을 내놓았습니까?" 플리니우스⟦3⟧가 소시우스 시네시우스⟦4⟧에게 불평했습니다. "올해 4월에는 이 사람 아니면 저 사람이든 누군가가 매일 낭독을 했죠. 올해 내내, 이 시대 동안 (말하자면), 우리의 프랑크포트 시장과 국내 시장은 새 책 목록을 얼마나 많이 내놓았습니까? 우리는 1년에 두 번,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해서 뽐내며 우리의 지혜를 펼치고 판매하기 위해 준비를 하지요. 우리는 많은 공을 들이면서도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게스너⟦5⟧가 열렬히 바라는 것처럼, 군주들의 칙령과 진지한 감독자들에 의해 이러한 자유를 제지하기 위한 빠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끝도 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토록 책을 탐하는 자가 누구이며, 누가 그것들을 다 읽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우리는 책의 큰 혼돈과 혼란을 겪고 있으며, 그것들로 인해 압박을 느끼고, 눈은 독서로 인해 고통받고, 손가락은 책장을 넘기느라 아픕니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숫자 중 하나입니다.⟦6⟧ 우리는 숫자입니다. (우리는 단순한 암호입니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마크로비우스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내 것은 모두 내 것이면서도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닙니다. 솜씨 좋은 가정주부가 몇 개의 양털 뭉치로 한 장의 천을 짜듯이, 한 마리의 벌이 수많은 꽃들에서 밀랍과 꿀을 모아 새로운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듯이, 꽃이 만발한 숲 속의 빈 터에서 벌들이 각 꽃에서 한 모금씩 마시듯이, 나는 몇몇 작가들의 명작으로부터 이러한 시문을 발췌하여 열심히 모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상처 주는 일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작가에게도 잘못한 것이 없으며 각 사람에게 그의 것을 돌려주었습니다. 그것이 히에로니무스⟦7⟧가 네포티아누스⟦8⟧을 칭찬한 이유입니다. 그는 오늘날 일부 사람들이 하듯이 본 작가의 이름을 숨긴 채 전체 구절, 페이지, 소책자를 훔쳐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키프리아누스⟦9⟧의 것이고, 이것은 락탄티우스⟦10⟧의 것, 이것은 힐라리우스⟦11⟧의 것, 그리고 미누키우스 펠릭스⟦12⟧, 빅토리누스⟦13⟧, 아르노비우스⟦14⟧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나도 나의 저자들을 인용하고 차용합니다. (아무리 몇몇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엉터리 문인이 아는 체를 하며 자신들에게 형성된 세련된 취향과는 반대로 무지를 덮어 감추는 망토처럼 굴더라도, 나는 해야 할 일을 하고, 할 것입니다.) 나는 가져가지만 훔치지는 않습니다. 바로⟦15⟧가 그의 책에서 꿀벌에 대해 말하길, 그들은 거의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꿀을 채취하며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에 대해서 말하자면, 내가 누구를 상처 입히기라도 했나요? 이 글 내용의 대부분은 그들의 것이지만 제 것도 있습니다. 애초에 그것이 취하여진 곳은 분명합니다.(세네카⟦16⟧ 역시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새롭게 사용될 때 원래 있던 것과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자연은 우리 몸의 영양소를 통합하고, 소화하고, 동화하고, 내가 삼킨 것을 동화시키고, 내가 취한 것을 적절하게 배치합니다. 나는 나의 마세로니콘⟦17⟧을 실행하기 위해 그들에게서 공물을 취합니다. 그 방법은 나만의 것입니다. 이전에 말하여지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방법만이 예술가의 조건입니다. 우리는 이미 말하여진 것 외에는 말할 수 없으며, 오직 방법과 구성만이 우리의 고유한 것이고 우리가 학자임을 드러냅니다. 오리바시우스⟦18⟧, 아이티오스⟦19⟧, 이븐 시나⟦20⟧는 갈레노스⟦21⟧로 부터 모든 것을 가져왔지만, 자신만의 방법과 다른 방식, 다른 문체로 했지 다른 신념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시인들은 호메로스⟦22⟧에게서 훔치지요. 아이리아노스⟦23⟧이 말하길, 호메로스⟦22⟧가 토한 것을 우리가 핥아먹는다고 하더군요. 신학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24⟧의 단어들을 사용하며, 이야기꾼들도 그렇게 합니다. 마지막에 오는 자가 대개 가장 낫습니다.
후대의 시대와 더 나은 운명이 더 위대한 것을 가져다줄 때까지요.
물리학과 철학에 고대의 거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디다쿠스 스텔라⟦25⟧의 말에 저도 동감합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있는 난쟁이는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더 많이 추가하고 변형함으로써 내 전임자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유명한 의사인 아이리아누스 몬탈투스⟦26⟧가 머리의 질병에 대해 쓰기 위해 야손 프라텐시스⟦27⟧, 헤우르니우스⟦28⟧, 힐데스하임⟦29⟧ 등등의 글들을 차용한 것보다 나에 대한 더 큰 편견은 없겠죠. 많은 말들이 한 경주에 달리고, 한 논리학자 다음에 또 다른 논리학자가, 한 수사학자 다음에 또 다른 수사학자가 나섭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반대하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끝까지 몰아붙이고, 부당한 짖음으로 계속 괴롭힌다 하더라도.
저는 그렇게 해결하겠습니다. 그리고 야만적인 실수, 도리스 방언, 즉흥적인 방식, 동어반복, 원숭이처럼 어리석은 모방, 여러 거름더미에서 찾아내어 붙여놓은 조각들의 광시곡, 작가들의 배설물, 혼란스럽게 굴러 떨어지는 장난감과 겉치레들, 이것들은 예술, 발명, 판단, 지혜, 학습이 없이 거칠고, 날 것이며, 무례하고, 허황되고, 터무니없고, 건방지고, 무분별하고, 구성이 나쁘고, 소화가 안되고, 자만심이 강하고, 천박하고, 게으르고, 둔하고, 메마릅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고백합니다(부분적으로는 의도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나 자신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쁘게 나를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제 글이 읽을 가치가 없다는 걸 나는 인정합니다. 헛된 주제를 정독하느라 여러분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나 자신도 그렇게 쓰는 그나 여러분을 읽기를 꺼릴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그럴 가치가 없으니까요.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나에게는 이소크라테스⟦30⟧가 그것을 죄지은 자들을 위한 피난처로 일컬었던 선례가 있다는 것입니다.⟦31⟧ 터무니없고, 자만심이 강하고, 게으르고, 읽고 쓸 줄도 모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 했고, 더 할 수도 있으며, 아마 그건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본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32⟧. 우리는 모두 자신의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나를 비난하듯이 나 또한 다른 이들을 비난해 왔고, 또 여러분을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번갈아 가며 그렇게 합니다, 이는 보복의 법, 곧 ‘눈에는 눈’입니다. 지금 가서 비난하고, 비판하고, 호통을 쳐 보시죠.
1) Callimachus - 칼리마코스는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헬레니즘 시대의 시인이자 문헌학자다. 그는 장대한 서사시를 거부하고, 짧고 정교한 형식을 옹호했다. '큰 책은 큰 악'이라는 태도로 대표되듯, 밀도·기교·학식이 응축된 시를 이상으로 삼았다. 신화도 장엄하게 재현하기보다, 주변적 인물과 사소한 계기를 통해 새로 배치한다. 칼리마코스는 시를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선별과 절제의 기술로 보았다. 그의 미학은 이후 로마 시인들, 특히 카툴루스와 오비디우스에게 결정적 영향을 주며, 고전 시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2) Cardan - 카르다노는 16세기, 르네상스 말기의 의사·수학자·점성가다. 의학에서는 임상 경험과 개인 사례를 중시했고, 수학에서는 3차 방정식 해법을 정식화해 대수학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그는 합리성과 미신을 동시에 진지하게 다뤘다. 계산과 확률, 예측과 운명이 한 인물 안에 공존한다. 카르다노의 의미는 체계가 아니라 불안정한 지성의 상태에 있다. 르네상스 이성이 얼마나 쉽게 균열되는지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3) Pliny - 1세기 경 고대 로마 사람으로, 이 시절 두 명의 플리니우스가 있었다. 나이가 많은 쪽은 대(大)플리니우스 나이가 적은 쪽은 소(小)플리니우스로 불렸는데 여기서는 (大)플리니우스인듯 하다. 플리니우스는 1세기 로마 제국의 학자이자 관료로, '박물지'의 저자다. 자연·의학·광물·동식물·기술·예술을 망라해 당시 세계의 지식을 집적했다. 그는 이론가라기보다 편찬자다. 직접 관찰, 전승, 소문까지 구분 없이 모아 배열하며, 자연을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경이와 도덕이 얽힌 세계로 다뤘다. 그의 저술은 과학과 신화가 아직 분리되지 않았던 지식의 상태를 그대로 보존한다.
4) Sossius Sinesius - 소시우스 시네시우스는 1세기 로마 제국 시기의 문인이자 출판 후원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플리니우스 대(大)와 교류했으며, 플리니우스가 자신의 저작을 헌정한 대상이기도 하다. 이 맥락에서 시네시우스는 지식 생산자가 아니라, 지식 유통과 명성 형성에 관여한 사회적 위치를 대표한다.
5) Gesner - 게스너는 16세기 중엽, 취리히에서 활동한 스위스의 박물학자·의사·문헌학자다.
그의 대표작 '동물지'는 고대 문헌, 중세 전승, 동시대 관찰을 구분 없이 수집해 배열한 방대한 집적물이다. 그는 자연을 해석하거나 이론화하기보다, 가능한 한 모두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게스너의 작업은 근대 생물학 이전 자연사의 전형을 보여준다. 질서 있는 체계라기보다, 세계를 놓치지 않으려는 집요한 수집 충동이 만든 지식의 형태다.
6) 만약 내가 한 번역이 맞다면 '숫자'가 표상하는 이미지에 대한 문학적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하다. 여러 숫자 중의 하나, 전체의 일부, 덧셈 뺄셈처럼 계산할 수 있는, 엄중함, 정확함, 상징성 등등... 그 뒤에 '우리는 암호입니다.'라는 표현은 '숫자'에 '비밀'이 추가되면서 그러한 특징이 더 강조되는 한 편 더 인간적이고 문학적이 된다.
7) Hierom - 히에로니무스는 4–5세기, 로마 제국 말기의 기독교 학자이자 교부다. 흔히 '성 제롬'으로 불린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다. 이는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히브리어·그리스어 원전에 대한 엄격한 문헌 비평을 바탕으로 한 언어적 재정초였다. 그는 금욕적 수도 생활과 학문을 결합했고, 문헌학적 엄격함으로 신학적 권위를 세웠다.
8) Nepotian - 네포티아누스는 서기 350년, 로마에서 잠시 권력을 장악한 '찬탈자'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조카로, 혈통을 근거로 황제를 자칭했다. 그의 집권은 불과 28일에 그쳤다. 군사적 기반이 거의 없었고, 곧 마그넨티우스의 군대에 의해 패배해 살해되었다. 고대 사가들은 그가 검투사와 민병을 동원해 즉흥적으로 권력을 시도했다고 기록한다.
9) Cyprian - 키프리아누스는 3세기 중엽, 로마 제국 아프리카 속주의 카르타고에서 활동한 기독교 주교이자 순교자다. 그는 박해 시기 교회의 질서와 권위를 강하게 옹호했다. 배교자 문제를 둘러싸고,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며 주교직의 통일성과 규율을 강조했다. 신앙은 개인의 열정이 아니라, 제도화된 공동체 안에서만 유지된다는 입장이다. 키프리아누스는 신학적 사변보다 교회 운영의 논리를 정식화한 인물이다. 그의 글은 박해 속에서 교회가 느슨한 연합체가 아니라, 규율과 복종으로 버티는 조직으로 변모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10) Lactantius - 락탄티우스는 3–4세기, 로마 제국 말기의 기독교 작가이자 변증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 이후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활동했다. 그는 기독교 교리를 수사학적으로 세련된 라틴어로 옹호했다. '신의 제도'에서 이교 철학을 비판하면서도, 논증의 형식과 언어는 고전 수사학에 깊이 의존한다. 이 때문에 “기독교의 키케로”라 불리기도 한다.
11) Hilarius - 힐라리우스는 4세기, 갈리아 푸아티에의 주교이자 초기 기독교 교부다. 흔히 '성 힐라리우스'로 불린다. 그는 아리우스 논쟁에서 니케아 신앙을 적극 옹호했고, 이 때문에 추방을 겪었다. '삼위일체론'에서 라틴어로 그리스 신학을 번역·정식화하며, 서방 교회에 삼위일체 교리를 뿌리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힐라리우스의 특징은 교리적 투쟁성이다. 그는 조화나 타협보다, 오류를 명확히 구분하고 맞서는 태도를 택했다. 그의 저술은 서방 교회가 신학적으로 독자적 언어를 갖추는 과정에서 나타난 논쟁의 긴장을 그대로 드러낸다.
12) Minutius Felix - 미누키우스 펠릭스는 2–3세기, 로마에서 활동한 초기 기독교 변증가다. 그는 기독교를 옹호하면서도 노골적 성서 인용을 거의 쓰지 않고, 키케로식 라틴 수사학과 철학적 상식을 동원해 이교 비판에 대응했다. 우상 숭배, 미신, 도덕적 타락을 합리적 언어로 공격한다. 미누키우스 펠릭스의 의미는 신학의 깊이보다 전략에 있다. 기독교가 아직 소수일 때, 제국의 교양 언어로 스스로를 변호하려 한 초기 단계의 모습을 가장 단정하게 보여준다.
13) Victorinus - 빅토리누스는 4세기, 로마에서 활동한 저명한 수사학자이자 후기에는 기독교로 개종한 사상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네오플라톤주의 텍스트를 라틴어로 번역·주해했고, 개종 이후에는 삼위일체와 로고스 문제를 철학적 언어로 사유했다. 신앙 고백을 감정이 아니라 개념의 변환으로 수행한 인물이다.
빅토리누스의 의미는 개인적 회심보다, 그리스 형이상학이 라틴 기독교 신학으로 이식되는 결정적 순간에 있다.
14) Arnobius - 아르노비우스는 3세기 말–4세기 초,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한 기독교 변증가다. 그의 저작 '이교도들에 대하여'는 기독교를 공격하던 이교 비난에 대한 방어문이다. 그는 성서 권위보다는 이교 종교의 비합리성과 잔혹성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며, 신화와 제의를 철저히 해체한다. 아르노비우스의 특징은 미완성과 과도기성이다. 신학적으로 정제되지 않았고, 영혼 불멸조차 확언하지 않는다. 바로 그 점에서 그는 기독교가 아직 철학적으로 안정되기 전, 논쟁 속에서 말하기를 배워가던 단계를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15) Varro - 바로는 기원전 1세기, 로마 공화정 말기의 학자이자 정치가다. 고대 로마에서 가장 박식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작업은 독창적 철학보다 분류와 정리에 있다. 언어, 농업, 종교, 역사 전반을 체계화했으며, 특히 '라틴어론'과 '신적·인적 고대사'에서 로마의 언어와 종교를 학문적 대상으로 분리해 다뤘다. 신들을 신앙의 대상으로 유지하면서도, 기원과 기능을 분석했다.
16) Seneca - 세네카는 1세기 로마 제국의 철학자이자 정치가다. 네로의 스승으로 권력의 중심에 있었으며, 말년에는 강압에 의해 자결했다. 그의 스토아 철학은 체계보다 실천에 가깝다. 분노, 두려움, 죽음, 시간 같은 문제를 일상의 언어로 다루며, 철학을 삶의 훈련으로 제시한다. 글은 논증이라기보다 반복되는 자기 점검과 권고다. 세네카의 특징은 긴장이다. 금욕을 말하면서 부유했고, 초연함을 말하면서 정치에 깊이 관여했다. 이 모순은 그의 사유를 약화시키기보다, 현실 속에서 윤리가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17) Maceronicon - 중세 말–르네상스 초기에 형성된 문학 양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통 '마케로니 문학'이라고 한다. 이 양식의 핵심은 라틴어 문장 구조에 속어·방언·이탈리아어 같은 일상어를 뒤섞는 것이다. 고급 학문 언어인 라틴어의 권위를 일부러 망가뜨려, 학자·성직자·지식인의 위선을 풍자한다. 이름은 소박한 음식 마케로니에서 왔고, 그 자체가 이미 혼합·잡탕을 뜻한다.
18) Oribasius - 오리바시우스는 4세기, 로마 제국 후기의 의사로 황제 율리아누스의 주치의였다. 그의 핵심 역할은 편찬이다. 갈레노스를 중심으로 한 고대 의학을 방대하게 요약·발췌해 '의학집성'을 편찬했다. 독창적 이론가라기보다, 소실되었을 많은 고대 의학 지식을 보존한 매개자다.
19) Aesius - 아이티오스는 6세기, 비잔틴 제국에서 활동한 의사다. 그는 '의학집성'을 편찬해 갈레노스·오리바시우스 등 고대 의학을 체계적으로 요약했다. 독창적 이론가라기보다, 임상에 쓰일 지식을 선별·배열한 정리자에 가깝다.
20) Avicenna - 이븐 시나는 10–11세기, 이슬람 세계의 의사이자 철학자다. 페르시아 출신으로, 중세 의학과 형이상학을 동시에 정식화한 인물이다. '의학정전'으로 질병을 증상·원인·경과에 따라 체계화했고, 이 책은 중세 유럽에서도 표준 교과서로 쓰였다. 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계승하면서, 존재와 본질의 구분을 명확히 해 독자적 형이상학을 구축했다. 아비센나의 핵심은 종합이다. 임상 의학, 논리학, 형이상학을 하나의 지적 체계로 묶었고, 고대 철학이 이슬람 세계를 거쳐 라틴 중세로 이행되는 결정적 매개가 되었다.
21) Galen - 갈레노스는 2세기, 로마 제국에서 활동한 의사이자 해부학자다. 고대 의학을 사실상 표준화한 인물이다. 그는 해부·생리·약물·병리 전반을 체계화했고, 체액설을 정교하게 정식화했다. 직접 해부는 제한적이었지만, 관찰과 논증을 결합해 의학을 이론적 학문으로 끌어올렸다. 갈레노스의 영향은 압도적이었다. 그의 권위는 비잔틴·이슬람·라틴 중세를 관통해 천 년 이상 지속되었고, 그만큼 의학의 진보를 지연시킨 권위로도 작용했다.
22) Homer -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경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는 시인으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전승적 저자다. 실존 여부와 단일 저자성은 고대부터 논쟁적이다. 그의 서사는 개인의 내면보다 행위·명예·운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신들과 인간이 같은 무대에서 개입하며, 세계는 도덕이 아니라 힘과 필연의 질서로 움직인다.
23) Aelian - 아이리아노스는 2–3세기, 로마 제국 시기의 그리스어 작가다. 그는 철학자나 과학자라기보다 전승 수집자에 가깝다. '동물의 본성에 대하여'에서 동물의 습성, 기이한 일화, 도덕적 교훈을 뒤섞어 기록하며, 사실 검증보다 이야기의 보존과 배열을 택했다. 아이리아노스의 글은 자연을 설명하지 않는다. 자연을 둘러싼 인간의 믿음·도덕·경이의 감각을 그대로 드러낸다. 과학 이전의 자연사가 어떤 언어로 유지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24) Austin - 아우구스티누스는 4–5세기, 로마 제국 말기의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다. '고백록', '신국론'에서 기억·의지·욕망·불안·내적 분열을 깊이 분석했다. 그의 사유의 중심은 내면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철학을 체계로 완결하지 않는다. 대신 내적 경험의 해부를 통해 신학을 구성한다.
25) Didacus Stella - 디다쿠스 스텔라는 16세기, 스페인의 가톨릭 성서학자이자 주해서다. 그는 성서를 도덕적·영적 차원에서 집요하게 해부하는 주해로 명성이 있었다. 금욕, 허무, 인간 욕망의 불안정을 강조하며, 경건한 문체 속에 내면의 병리를 다룬다. 이 때문에 그의 글은 신학적 교설이라기보다 영적 심리학에 가깝다. 스텔라는 우울을 단순한 병이 아니라, 영혼이 세계와 맺는 왜곡된 관계로 읽는 전통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26) Aelianus Montaltus - 아이리아누스 몬탈투스는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의사다. 그는 '우울에 대하여'에서 흑담즙 이론을 바탕으로 우울을 의학적·심리적 상태로 상세히 분류했다. 단순한 체액 불균형을 넘어, 공포·망상·집착·종교적 불안 같은 정신 증상을 체계적으로 다룬 점이 특징이다. 몬탈투스는 고전 권위(갈레노스)를 따르면서도 임상 사례를 중시했다. 그래서 그는 중세 체액설과 근대 정신의학 사이의 과도기적 연결 고리로 평가된다.
27) Jason Pratensis - 야손 프라텐시스는 16세기, 저지대 지역에서 활동한 의사다. 그는 '의학실천서'에서 '우울'을 별도의 질환군으로 다루며, 공포·망상·집착·침울 같은 증상을 체계적으로 기술했다. 우울을 단순한 체액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정신 작용의 왜곡으로 분석한 점이 특징이다.프라텐시스는 고전 의학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임상 관찰과 사례 분류를 중시했다. 그의 작업은 체액설 기반 의학이 정신 상태의 세밀한 기술로 확장되는 국면을 보여준다.
28) Heurnius - 헤우르니우스는 16세기 말–17세기 초, 라이덴에서 활동한 의사이자 의학 교수다. 그는 갈레노스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임상 관찰과 증상 분류를 중시했다. 특히 흑담즙과 관련된 정신 상태—우울, 공포, 망상—를 신체적·심리적 요인의 결합으로 다뤘다. 질병을 단일 원인으로 환원하지 않는 태도가 특징이다. 헤우르니우스는 중세 체액설을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이를 교육과 실천의 언어로 재정렬한 인물이다. 그의 작업은 대학 의학이 이론 중심에서 임상 중심으로 이동하는 과도기를 보여준다.
29) Hildesheim - 힐데스하임는 10–11세기, 신성 로마 제국의 힐데스하임 주교다. 오토 3세의 측근으로 정치와 교회를 오갔다. 그는 신학자라기보다 제작자·기획자였다. 로마 고전 양식을 기독교 서사에 이식한 점이 특징이다. 그의 의미는 사변이 아니라 형식의 권위에 있다. 말과 교리보다 조형과 공간으로 신앙을 조직한 인물로, 중세 초기에 시각적 신학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준다.
30) Isocrates - 이소크라테스는 기원전 5–4세기, 아테네에서 활동한 수사학자이자 교육가다. 연설가라기보다 글로 가르치는 교사에 가까웠다. 그는 철학적 진리를 탐구하기보다, 시민을 형성하는 언어의 힘을 중시했다. 수사는 기교가 아니라 판단과 품성의 훈련이며, 정치적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이라고 보았다.
이소크라테스의 특징은 절제된 실용주의다. 플라톤의 형이상학과 소피스트의 기교주의 사이에서, 공적 삶에 작동하는 언어의 기준을 세우려 했다. 그의 영향은 아테네 교육과 이후 헬레니즘·로마 수사 전통 전반에 깊게 남았다.
31) 이소크라테스는 영원불멸의 진리나 고유한 사상을 갖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조절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이라고 주장했다. 이 글의 저자는 '죄지은 자들', 즉 다른 사람의 사상과 저작에 의지해서 글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정당성을 이소크라테스에게서 찾고 있는 듯 하다.
32) '숨길수 없다'는 뜻인 듯하다.
/번역/우울증의 해부/우울의 해부/The Anatomy of Melancholy/Robert Burton/로버트 버턴/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