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그럼 구매 결정을 하시겠습니까?"
순전히 분위기 띄우기 용인 하얀색 유니폼을 멀끔하게 차려입은 직원이 M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네."
M은 분명하게 대답했다. 막상 대답하려니 목이 메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혹시 어떤 사람은 이 직원을 붙잡고 눈물을 쏟기도 할까, M은 궁금해졌다.
"감사합니다. 저희 회사 상품으로 결정하신 건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입니다. 여러 경쟁 업체들이 있지만 우리 회사가 단연 선두에 서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비용이 더 들긴 하지만 그만큼의 가치는 충분하지요. 아, 비용에 대해서는 미리 안내를 받으셨겠죠. 전액 선불이라는 것두요."
직원은 혹시나 속물처럼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며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M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역시나 나약해 보일까 싶어서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네, 오늘 입금하도록 하겠습니다."
직원은 컴퓨터에 무언가 펜으로 짧게 적어 넣으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 진행될 절차에 대해 고객님께 설명드리겠습니다. 오늘 입금이 확인되면 곧바로 클론 제작에 들어갈 겁니다. 제작 시간은 대략 일주일 정도 예상이 됩니다. 사실 실제 제작은 이틀이면 충분하지만 고객이 숙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일주일이라는 기간이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요. 물론 고객님께서는 그 사이에 언제든지 구매를 취소하실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요. 저희 회사는 고객님이 어떤 결정을 하시더라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걸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다만 이해하시겠지만, 어느 단계에서 취소하느냐에 따라 환불 금액이 결정될 겁니다."
"네."
M은 짧게 대답했다.
"입금을 하시면 다시 이곳으로 오셔서 조직 채취와 전신 스캔을 한 후 기계 장치 하나를 머리에 심으셔야 합니다. 수술이 필요하지 않은 간단한 시술이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 기계는 남은 일주일 동안의 기억을 클론에게 전송하기 위한 겁니다. 기억에 단절이 생기면 안 되니까요. 아, 물론 저희 회사와 관련된 모든 기억은 지워져 있을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고객님께서는 일주일 동안 되도록 평소와 똑같이 지내도록 하세요. 기억이 튀지 않게요. 아무래도 너무 많이 손보지 않는 편이 좋거든요."
M은 계속 같은 대답을 하는 게 지겨웠지만 다시 힘을 내어 대답했다.
"네."
"일주일 후 저희 쪽에서 고객님께 연락을 드릴 겁니다. 연락을 받으시고 24시간 안에 다시 이곳으로 오셔야 합니다. 물론 그 24시간 안에도 언제든지 마음을 바꾸실 수 있다는 걸 명심해주세요. 최후의 순간까지 말입니다. 다만 마지막 24시간 동안은 환불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니 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네."
M은 대답하는 데 슬슬 염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예의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
"이곳으로 오시면 우선 소지품들을 저희에게 넘겨주셔야 됩니다. 입고 있던 옷은 물론이고 지갑, 핸드폰, 결혼반지 같이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들 말이죠. 잊지 말고 꼭 챙겨 오도록 하세요."
"네."
M은 대답하느라 지쳐서 화가 나는지, 화가 나서 지치는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모든 게 준비되면 마지막으로 고객님의 최종 결정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면 바로 안락사 절차에 들어갑니다. 사망하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사망 선고는 10분 정도 후에 내려지도록 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사망선고와 동시에 클론은 각성할 겁니다. 그때부터 고객님의 이름은 그의 몫이 되는 거죠. 아, 그리고 나서 고객님의 시신은 '신원미상'으로 곧바로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질 겁니다. 저희는 그 일만 담당하는 훌륭한 전담팀을 갖추고 있죠. 완벽하게 마무리될 때까지 우리 직원들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예의를 다 할 거라는 걸 다시 한번 약속드리겠습니다. 자아, 모두 이해가 되셨나요? 질문은 없으세요?"
"네."
M은 설명이 끝난 것에 안도를 느끼며 한숨을 쉬듯 대답했다. 그러나 직원은 무언가 아쉬운지 계속 얘기를 이어나갔다.
"저희 회사가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클론의 정체가 발각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단 한 번도요. 이것은 놀라운 수치예요. 그것이 저희 회사가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요. 저희는 모든 자료를 암호화해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고위직의 단 몇 사람을 빼고는, 그것도 특수한 비상상황이 아니면 자료에 접근조차 할 수 없어요. 게다가 어떤 해킹 공격에도 방어할 수 있는 최첨단의 기술을 갖추고 있답니다."
"네."
다시 설명이 시작되는 것에 절망을 느끼며 M이 대답했다.
"남겨진 가족과 친구들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들은 결코 클론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사실상 클론은 고객님 자신이니까요. 클론 자신도 자신이 클론이라는 사실을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겠습니까. 클론은 당신이 이제까지 해왔던 모든 걸 그들에게 해 줄 겁니다. 사랑과 우정, 의무와 책임, 그리고 돈벌이 까지두요. 어쩌면 더 잘 해낼지도 모릅니다. 그 누구도 고통받을 필요가 없어요. 가족도, 친구도, 이 사회도. 그러니 고객님께서는 아무 부담도 죄의식도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삶을 마감하실 수 있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요."
"네."
M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했다. 당장 돈을 입금하러 가기 위해서 말이다. 더 이상 알고 싶은 것도 없고 더 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M의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왜 그런 소소하고 쓸데없는 게 궁금했는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더 이상 M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 데 말이다. 분명 그걸 무시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M은 얼떨결에 입을 열었다.
"그럼 클론은 어디서 깨어나게 되는 거죠?"
상담 내내 무심하기만 했던 M의 질문에 직원은 기뻐하며 책상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의 명랑한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아, 그건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집 앞에서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는 이유로 응급실에서 깨어나게 될 테니까요.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이고 클론 자신도 별 의심을 하지 않을 겁니다. 공식적인 보고서가 작성될 테고, 정신을 잃고 있었던 시간 역시 수정이 되어 있을 겁니다. 거기다가 클론은 정신 발작과 우울증 진단을 받고 6개월 동안 정신과에서 의무 치료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 나쁜 생각을 하면 안 되니까요. 새 사람이 되는 거죠. 고객님에게는 아니었지만, 사실상 고객님의 인생에는 두 번째 기회가 생기는 겁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확신하건대 분명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더 좋은 일이 될 겁니다."
의기양양하게 대답한 직원은 M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의아한 얼굴로 M을 바라보았다. M은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몇 년 전에 저는 응급실에서 깨어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발작과 우울증 진단을 받고 6개월간 치료를 받았지요."
"아, 그래요? 그럼 더 잘됐군요. 경험이 있으니 클론은 아무 의심 없이 더 잘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직원은 고개를 흔들며 쾌활하게 말했다. 그러나 M은 어쩐지 가슴이 죄어와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방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M은 정말이지 이제 와서는 아무런 쓸데도 없는 질문을 입 밖에 내고야 말았다.
"혹시 내가 클론인가요?"
직원은 M을 응시하며 빙그레 웃었다. 그것은 익숙한 질문에 닳고 닳아버린 웃음이었다.
"저도 모릅니다.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어요. 말씀드렸다시피 클론에 대한 정보는 철저하게 비밀로 관리되고 있으니까요."
M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맥없이 앉아있었다. 머릿속이 온통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혼란스러운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실은 너무나 명확하고 간단한 문제가 아닌가. 그의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해 직원이 다정하게 말했다.
"다만 이 점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오늘날 관 속에 클론이 누워있지 않은 장례식은 매우 드물다는 걸 말입니다. 저희 회사만 해도 17번까지 클론이 투입된 사람이 있다니까요. 세상에, 그건 대체 어떤 인생이랍니까."
직원은 두 손을 마주 잡고 주무르며 킬킬거렸다. M 역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돈을 입금하러 가기 위해 M은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