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지구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by 곡도


Shim Soo-keun의 일러스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닌투.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닌투는 자신을 찾아온 엔릴을 향해 미소 지었다.


"무슨 질문인가요?"


"저는 인간에게 통치 권력을 맡기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닌투가 더 크게 미소를 지었다.


"왜 우리는 민주주의를 채택하지 않는 겁니까? 심지어 미개하기 그지없는 인간들도 자신들의 전성기 시절에는 민주주의를 채택하지 않았던가요?"


"그러나 결국 실패했지요."


닌투가 부드럽게 지적했지만 엔릴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인간에게 민주주의를 운영할 능력과 자질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의 자멸이었을 뿐이에요. 언제나 그렇듯이요. 인간이 망쳐놓은 것이 어디 민주주의뿐이던가요? 인간은 주제넘게 모든 것에 손을 대고, 필요 이상으로 노력하고, 철저하게 망쳐버리죠."


"그건 사실이에요."


닌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엔릴은 좀 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고도의 문명과 지성을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 모두가 진정 평등한 우리들은 민주주의를 운영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인간에게 정치를 맡기시는 겁니까? 매번 인간들의 잘못된 판단과 실수로 골탕을 먹어가면서 말입니다. 정치가들은 사고를 치고 우리가 그것을 수습하죠.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데 말이에요."


엔릴의 항의에 닌투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이와 같은 항의를 한 이가 엔릴이 처음도 아니고 엔릴이 마지막도 아니라는 걸 닌투는 잘 알고 있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요?


엔릴이 닌투에게 물었다. 닌투는 순간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쉬운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거야, 주권이 구성원들에게 있고, 구성원들을 위해 정치 행위를 하며, 그 구성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정치 제도죠."


엔릴의 대답에 닌투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건 그저 최소한의 명분일 뿐이고, 또 최대한의 목적일 뿐이에요. 하지만 현실은 다른 꼭짓점에 있지요. 실제로 모든 구성원들의 주권이나 모든 구성원들을 위한 정치행위, 모든 구성원들의 정치 참여가 이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심지어 시도된 적도 없습니다. 사실 그런 건 민주주의의 운영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건 기분 문제일 뿐이며 일종의 착시 효과일 뿐입니다. 물론 그 기분과 착시야 말로 민주주의의 기반이긴 합니다만."


닌투의 대답에 엔릴을 발끈했다.


"그렇다면 대체 민주주의란 뭡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민주주의란 지배 권력을 최소화시키는 제도입니다. 최소한의 권력자들에게 최소한의 권력을 위임하는 겁니다. 그뿐이에요. 사실 아주 단순하지만 또 그만큼 어려운 일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 우리의 정치 제도가 가장 완벽하고 철두철미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닌투는 그만할 말을 잃었다. 별안간 세상의 안과 밖이, 자신의 머릿속이 뒤집어져 버리는 것 같았다. 닌투를 간신히 말을 더듬거렸다.


"그럼 인간들에게 정치를 맡긴 이유가......."


"그들이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바다의 물방울만큼이나 많지요. 그러나 단지 숫자의 문제는 아니에요. 실존적인 전망에서 그들이 철저하게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들의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였어요. 인간들이 엘리트에게 정치권력을 맡겼던 것은 그들이 엘리트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소수였기 때문이거든요. 만약 바보가 소수이고 엘리트가 다수였다면 그들은 바보에게 정치를 맡겼을 겁니다."


닌투는 거의 전의를 상실한 채, 그러나 마지막 힘을 짜내어 항의했다.


"하지만 인간들은 실패자들이에요."


"그래요. 인간은 엉망진창이죠. 미개하고 저능해요. 자신의 문명을 철저하게 멸망시키고 이제 우리의 보살핌 덕분에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처지예요. 우리가 보호종으로 지정하지 않았다면 벌써 멸종해 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그들은 절대 다시는 번성하지 못할 거예요. 그들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잊혀진 민족입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네, 완벽하다고 할 수 있죠. 저도 압니다. 하지만 완벽하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완전함이 아닙니다. 수학 공식은 완벽하지만 완전하지는 않은 것처럼요.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완벽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오히려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도태될 위험마저 있어요. 방향과 희망을 잃게 되니까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일종의 결함이 필요해요. 사건과 사고와 과오가 필요하고, 당황과 경악과 모순이 필요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의지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일어나기 위해 가끔씩 주저앉을 필요가 있어요. 결국 그것은 우리의 건강에 좋은 운동이 되지요. 아무런 고뇌도, 고통도, 방해도 없다면 우리는 인간들과는 정 반대의 이유로 역시나 멸망하고 말 겁니다."


닌켄은 시무룩해졌다. 그는 이제 모든 걸 이해했지만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닌켄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인간은 이 사실을 모르잖아요. 오히려 자신들이 대단한 정치인들인 줄 알죠."


엔릴은 크게 미소 지었는데 거의 웃음소리를 낼 뻔했다.


"그게 우리의 의도예요. 그래야 자신들이 하던 대로 계속할 테니까요. 엉망진창으로, 미개하고 저능하게, 열심히 말입니다. 그게 그들의 역할이에요. 그들은 그 방면에 전문가들이고, 경력자들이며, 일종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들이 제일 잘 하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세요. 그들이 하는 일들을 일종의 유머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웃을 수 있습니다. 네, 그건 또 다른 장점이죠."


닌켄은 그제서야 미소를 지었다. 하긴 그들이 없다면 무슨 일에 웃을 것이며 무슨 일에 화를 낼 것인가. 적당한 소화불량과 두통은 육체에 활력을 주는 법이다. 닌켄은 엔릴에게 감사를 표한 뒤 만족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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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뭐 새롭게 알아낸 거라도 있어?"

까만 머리를 틀어 올린 연구원이 키가 훤칠한 자신의 동료에게 물었다.


"전혀 모르겠어. 참 우스운 일이지. 슈퍼컴퓨터를 만든 건 우리인데,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으니 말이야."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오겠지. 어쩌면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르고. 뭐, 무슨 상관인가. 어쨌거나 우리의 임무는 이 컴퓨터가 계속 작동하도록 관리하는 일이니까 말이야. 그거나 열심히 하자고."


그리고 두 사람은 어젯밤에 방영된 드라마에 대한 싱거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커피와 초콜릿을 먹기 위해 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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