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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Feb 07. 2023

우울의 해부학 (13)

로버트 버턴

William Blake의 [Jerusalem. The Emanation of the Giant Albion.]



( 역자 - 라틴어는 명조체로 진하게 표시합니다. )




     히포크라테스①가 마침내 압델라②에 왔을 때, 도시 사람들은 그에게 몰려와 어떤 사람들은 울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달라며 그에게 간청했습니다. 간단히 식사를 한 후 그는 데모크리토스③를 보러 갔습니다. 사람들도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교외에 있는 자신의 정원에서 홀로 있는 데모크리토스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긴 바지도 신발도 없이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돌 위에 앉아 무릎 위에 책을 올려놓고 짐승들을 조각조각 자르면서 자신의 연구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만남을 보려고 그들 주변에 둥글게 섰습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잠깐의 침묵 후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 한 번 인사하면서 돌아오는 답변이 없는 것에 대해, 그리고 상대가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히포크라테스는 그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데모크리토스는  "광기와 우울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짐승 몇 마리를 해부하고 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히포크라테스는 그의 행복과 여가에 감탄하며 그의 작업을 칭찬했습니다. 데모크리토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그런 여유가 없나요? 히포크라테스는 국내 문제가 우리 자신과 이웃과 친구들을 위한 일들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손실, 질병, 노쇠함, 죽음이 발생합니다. 아내, 자녀, 하인, 그리고 우리의 시간을 소모시키는 사정들이 있지요. 이 말에 데모크리토스는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친구들과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은 울음을 터트리며 그의 광기를 한탄했습니다.) 히포크라테스가 그에게 웃는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④ "오늘날의 허영심과 변덕 속에서 끝없는 야심을 품고 금을 쫓기 위해 사람들의 모든 고결한 행위가 그토록 공허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작은 영광을 위해, 사람들의 호의를 얻기 위해 무한한 고통을 감수합니다. 금을 얻기 위해 땅 속 깊이 파고들었다가 매번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삶과 행운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개를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말을 사랑하며, 어떤 사람은 많은 분야에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순종하기를 바라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순종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아내를 사랑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그녀를 저버리고 미워하지요. 자식이 생기면 그들의 교육을 위해 관심과 비용을 들이지만, 그들이 성인으로 자라면 경멸하고 무시하면서 벌거벗긴 채 세상의 자비에 내맡겨버립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참을 수 없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은 평온하게 살 때에도 전쟁을 탐하고, 고요를 혐오하고, 왕을 폐하고,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권세를 부리고, 다른 사람의 아내에게서 아이를 얻기 위해 그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사람에게는 기괴한 유머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들은 가난하고 궁핍할 때는 재물을 구하지만, 그것을 갖게 되면 그것을 즐길 줄 모르고, 그것을 땅 속에 숨기거나 낭비해 버리죠. 오, 현명한 히포크라테스여, 나는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웃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쁜 목적을 위해 그런 일들을 벌이고 결국 그것들이 그들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때 나는 훨씬 더 많이 웃습니다.  그들에게는 진리나 정의가 없습니다. 그들이 매일 다른 사람에게 맞서기 때문이지요. 자식이 부모에게 맞서고, 형제가 형제에게 맞서고, 자신과 동등한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맞섭니다. 이 모든 것은 재물을 위한 것인데, 그 무엇도 죽은 후에는 소유할 수가 없지요.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를 비방하며 죽이고, 모든 불법들을 일삼고, 신과 사람과 친구들과 국가를 모독합니다. 그들은 모든 하찮은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들의 보물, 조각상, 그림 같은 귀중품을 높이 평가하며,  미치 필요한 건 언변밖에 없는 것처럼 교활하게 일을 꾸미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건 싫어합니다. 다른 것들도 문제를 어렵게 만듭니다. 만약 그들이 육지에 살면 그들은 섬으로 이동할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뒤에는 다시 육지로 돌아오고 말죠. 그들의 욕구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전쟁에서 용기와 힘을 칭찬하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정욕과 탐욕에 굴복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정신뿐만 아니라 테르시테스⑤ 만큼이나 육체도 혼란합니다. 그리고 지금, 오, 가장 고귀한 히포크라테스여, 사람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나의 웃음을 탓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사람들은 그저 즉각적으로 보이는 어리석음만으로 서로를 조롱합니다. 주정뱅이는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을 대식가라고 비난합니다.⑥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농사를 좋아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사업과 직업에서도 서로 동의할 수 없는 일이 많으며, 삶과 행동에서는 그런 일이 더 적습니다." 

     우스꽝스러운 모순으로 가득 찬 세계의 허영심을 드러내기 위해 계획이나 준비 없이 술술 나오는 이러한 말들을 듣고 나서, 히포크라테스는 대답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건 사람들에게 있어 게으름과 나태만큼이나 극도로 혐오스럽기 때문에, 필요성이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사람들을 몰아붙이며 게을러지지 않도록 신성한 허용에 따라 다양한 의지들이 생겨난다고 말입니다. 게다가 인간사의 불확실성 속에서 사람들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지요. 만약 자신들의 염증과 별거의 이유에 대해 미리 알 수 있었다면 그들은 결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식이 죽는 시간을 알 수 있었다면 부모는 그들을 더 다정하게 대했을 것입니다. 씨보다 수확이 증가할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면, 농부는 씨를 뿌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난파를 예상했다면 상인은 바다로 항해를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곧바로 해임될 줄 알았다면 고위 공직자는 그 직을 맡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아, 고귀한 데모크리토스여, 모든 사람들이 최선을 바라며 그것을 행합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웃음의 우스꽝스러운 근거만이 있지요.








1) Hippocrates - 기원전 4세기 경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했던 의사. 우울에 빠진 데모크리토스를 진찰하고는 미친 것이 아니라 모두 이렇게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런데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반대로 데모크리토스가 너무 웃어서 히포크라테스의 진찰을 받았는데 히포크라테스는 데모크리토스가 미친 것이 아니라 지혜로워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2) Abdera - 그리스 북부 지방 트라키아의 해안 도시로 데모크리토스의 고향이다. 



3) Democritus  - 기원전 5세기 말에서 4세기 초에 활동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원자론을 기반으로 한 우주론을 체계화시켰으며 유물론적 철학을 지향했다. 거의 동시대 사람이었던 플라톤의 관념론과 대립했다. (작가는 자신을 데모크리토스의 후계자로 자처하고 있다.)



4) 여기서 부터 데모크리토스가 대답이 문단 끝까지 길게 이어진다.



5) Thersites - 트로이 전쟁 당시 추악한 외모와 욕설, 음란하고 저속한 성격, 공격적인 성질로 유명했던 그리스 병사. 그리스 군의 졸병 중에서 호메로스가 자세하게 설명한 병사는 테르시테스가 유일하다고 한다.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아마존 여왕 펜테실레이아의 죽음을 슬퍼한 아킬레스를 시체 애호가라며 조롱하다가 아킬레스에게 맞아 죽었다.





6) 술을 먹지 않는 사람은 음식을 탐하여 배만 채우는 대식가이며, 술을 먹는 자신은 음식을 즐길 줄 아는 미식가라고 주정뱅이는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다.







/번역/우울증의 해부/우울의 해부/The Anatomy of Melancholy/Robert Burton/로버트 버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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