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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Mar 19. 2023

[연극] 톨스토이 참회록 안나 카레니나와의 대화



연극 : 톨스토이 참회록 안나 카레니나와의 대화

공연장소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공연기간 : 2023년 3월 17일 ~ 2023년 4월 16일

관람시간 : 2023년 3월 18일 오후 3시



    

    우선 밝혀둘 것은, 나는 톨스토이를 아주 싫어한다. 오래전 내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 충격을 받고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집어 든 책이 '부활'이었는데, 이 소설을 진심으로 혐오하게 되었다. 이제 와서 이유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짐작건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진부하고 교훈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뒤로 톨스토이의 책은 두 번 다시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당연히 '안나 카레니나'도 읽지 못했고 읽고 싶은 적도 없었다.

     그래서 이번 연극을 볼까 말까 꽤 망설였다. 그런데 나는 예전에 같은 연출가와 같은 배우의 비슷한 형식의 작품인 [대심문관과 파우스트]를 본 적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 브런치에 남겼던 감상이 있길래 다시 읽어보니 '두세 가지 문학작품을 우격다짐으로 짬뽕시킴으로써 상당히 혼란하고 산만한 방식으로 재미있다'라고 적혀있었다. 심지어 '한 번 더 보고 싶다'라고 까지 쓰여있었다. [대심문관과 파우스트]는 스스로의 독창성이 다소 부족하고 또 괴테의 낭만적인 열정과 감상적인 문학성에 기대고 있는 측면이 다소 과도했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다듬으려 하지 않고 되는대로 마구 쏟아내 버리는 면이 내 마음에 들었던 듯하다. 나는 괴테 역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 연극은 즐겁게 감상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예매를 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괴테가 아니며, 그의 문학에는 신도 악마도 광기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간과했다. 순전히 작가와 문학 작품에 기대고 있는 연극은 작가와 문학 작품에서 오는 영감이 약해지자 급속도록 빈약해졌다. 나는 연극이 시작하고 곧바로 '나는 안나의 생각, 나는 안나 속의 안나....' 뭐 이런 대사가 나왔을 이미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러다가 서구적인 외모와 연기자로서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안나'의 등장에 다시 한번 기대감을 갖고 주저앉았지만, 솔직히 '안나'의 연기는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건 연기력의 문제가 아니라 연출의 문제였다고 생각하는데, 지나치게 서양 여자를 흉내 내는 듯한 외화 더빙식의 연기와 섬세함도 다면성도 은근한 내면도 없는 단편적인 일러스트 같은 캐릭터 설정은 정말이지 의아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 연극의 또 하나의 축인 '톨스토이'에게 무슨 뚜렷한 역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톨스토이는 연극의 외부에서 딱히 할 일도 없이 겉도는 것 같았고 오히려 억지로 불편한 자리에 끼워넣은 것처럼 거추장스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를 썼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래, 그런데, 그래서, 그게 어떻게 됐다는 것인가. 대체 둘이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거기에 더해서  왜 이 연극에 라이브 반주와 노래가 필요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진부함에 진부함을 더하기 위해서? 가사도 통속적이고 멜로디도 별로인 노래는 오히려 연극의 맥을 끊어놓기 일쑤였다. 그저 예술적으로 거창하게 보이고 싶은 허영이나 시간 때우기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그 마저도 아마추어 느낌이 너무 강해서 불쾌하기까지 했다. 이 연극은 연극, 춤,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종합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중 단 하나도 인상적이거나 조화롭지 못했고,  어수선하고 어설픈 종합예술 속에서 연극마저 실종되어 버리는 걸 두 눈으로 목격해야 했다. 글쎄, 정말 내가 뭘 본 건지, 내게 뭘 보라고 한 건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같은 형식이 같은 연출가와 같은 배우에 의해 계속 재탕 삼탕으로 시도되는 것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어찌 되었든 그저 이 형식을 유지하고자 하는, 혹은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강박까지 느껴진다. 예술에서 자기 복제란 두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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