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아노스
처음 그리스 비극을 읽었을 때 나는 그것이 '현대적'이라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 후에 그리스 희극을 읽었을 때는 그 보다 훨씬 더 놀랐다 - 2000년도 더 된 작품이 그토록 현대적이고 세련되며 도발적이라는 건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비극 속의 주인공들은 천을 둘러 입은 키톤을 걸치고, 칼과 화살로 괴이한 괴물을 물리치고, 신의 가호를 받아 태어나고 죽고, 환상적인 마법을 부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똑같은 '현대인', 지극히 실존적인 현대인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 전 과거로 간다 해도 그들보다 더 '현대적'일 자신이 없다. 무려 2000년 전의 작품이 어떻게 '현대적'일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과연 '현대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무언가를 '현대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크게 두 가지 기준이 충족되었을 때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와 '거짓말'이 그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민주주의 정신'과 '거짓말에 대한 긍정'이라고 하겠다. 이 두 가지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면 시대적 차이나 문화적 차이, 종교적 차이, 인종적 차이, 지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동시대인이라고 느낄 수 있다.
'민주주의 정신'이란 결국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것만큼 난해하고 애매한 문장도 없을 것이다. 이 문장을 이루는 세 단어 '인간' '자유' '평등'의 정의야 말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철학의 주제요 제도의 기준이며 전쟁의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여기서 그 각각의 정의를 나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능력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설사 예로부터 그것이 제도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혹은 개인적인 실천에서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과연 '인간'이란 '무엇'이고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모순과 가증이 판을 쳤을지라도 -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 '민주주의 정신'은 결국 방향의 문제이고, 오직 방향의 문제이며, 도달이 아닌 여정 자체이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2000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 방향을 향해, 어쩌면 실재하지도 않고 결코 도달할 수도 없는 그곳을 향해 어름어름 불완전한 현재를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현재를 단단히 한 발 한 발 딛고 일어서는 것, 이러한 민주주의가 한 편으로는 과거 회귀일 수밖에 없는 종교와 대립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예술, 그러니까 현대적인 예술의 가장 큰 특성이기도 하다.
'인간'의 인간적 비극에 공감하고 그것을 존중하며 성찰의 기회로 삼는 것, 그리하여 실패자나 소수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 현실에서 별 볼 일 없는 자가 오히려 문학이나 미술, 연극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이것은 민주주의 정신의, 그리고 현대적 의미의 예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 정신'과 '거짓말에 대한 긍정'은 전혀 다르며 심지어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법치는 거짓말을 그 무엇보다 죄악시한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만한 일이다. 거짓말이 판친다면 법과 사회의 근간은 흔들릴 것이다. 그러나 법치와 민주주의는 전혀 다른 개념이며 현대에 있어서 법치와 민주주의 중에 민주주의에 더 큰 의미를 부여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최소한 이론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를 지지하기 위해 법치가 있는 것이지 법치를 지지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거짓말이 민주주의도 파괴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은 현실 생활에 있어서 사실이다. 그러나 거짓말이 없었다면 애초에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막연한 약속, 사실상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는 이상향에 그 기반과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새빨간 거짓말.
'거짓말에 대한 긍정'은 진리에 대한 불신과 진리의 불가능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것은 결국 이 세상이 진리가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며, 진리일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다시 말해서 이 세계가 수많은 진리로 해체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수많은 진리로 해체되어 있는 진리가 여전히 진리일까? 그리하여 이제 더 이상 진리의 가부는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한다.
우리는 세상이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개연성이 있지도 공정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도덕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오히려 세상은 모순되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하고 불공정하고 부도덕한 게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우리의 언어는 더더욱 모순되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하고 불공정하고 부도덕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무리 진리를 말하려고 노력해도 우리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진리를 말해도 거짓말, 거짓말을 말해도 거짓말이 된다. 거짓말은 필연적이고 필수적이다. 이것은 인간적 한계이면서 동시에 우주적 본질이다. 아니, 이 세계는 거짓말 자체이다. 그것이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진리이다.
그리하여 왜 거짓말이 그토록 기쁨을 주는지 우리는 깨닫게 된다. 거짓말을 함으로써 세상이 거짓말이라는 진리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짓말을 말하면서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거짓말을 함으로써 진실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이 순 거짓말이며 진리란 없다는 진리를 폭로하는 것이다. 바로 이 '폭로'가 현대적 예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잠깐, 폭로라고? 왜 그것을 폭로해야 하지? 왜 세상은 온전히 진실하며 조금도 거짓되지 않다고 믿으면 안 되는 거지? 왜 세상을 뒤흔들고 혼란하게 만들고 의심을 조장하는 거지? 바로 민주주주의 정신을 위해서,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해지기 위해서이다. 세상이 상대적이고 인격적이며 시선의 차이로 인해 비롯되고 구성된다는 걸 인정할 때, 개개인도 비로소 자유롭고 평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 그 민주주의 또한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았나.
'민주주의 정신'과 '거짓말의 긍정'은 서로가 서로를 보증한다.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으며 어쩌면 우로보로스나 뫼비우스 띠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밀월관계가 꼭 필연적인 것은 아니며 또한 언제나 성공적인 것도 아니다. 사실 이 둘의 관계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예민한 감각, 치열한 태도가 필요하다. 모든 관계는 결국 대립이고 자기 파괴적일 뿐만 아니라, 거짓말이란 결국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부도 수표를 남발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것은 타락과 불신, 그리고 붕괴에 이르기 쉽다. 그리하여 '민주주의 정신'과 '거짓말의 긍정'의 결합을 성공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일종의 접착제, 윤활유, 중립지대, 그 둘 사이에서 탄생한 자손들이 필요하다. 어쩌면 '민주주의 정신'과 '거짓말의 긍정'의 존속은 여기에 달려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바로 철학과 예술이다.
나는 철학의 기술, 말의 예술을 추구하는 '수사학'이 지나치게 평가절하되어 왔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오히려 그 사회 문화 수준의 정점으로서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노골적으로 진리에 가까웠기 때문에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린 듯하다. 결국 이 세계는 거짓말로 만이 이해되고 표현될 수 있으며, 거짓말 그 자체라는 것을 말이다. 결국 모든 것은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거짓말을 하기 위해 글을 쓰고 거짓말을 듣기 위해 글을 읽는다. 만약 법적인 처벌이 두렵지 않았다면, 그리고 내가 이토록 게으르지 않았다면, 나는 사기꾼이나 사이비 교주가 되기를 꿈꾸었을 것이다. 우리는 사기꾼보다 사기당한 사람을, 사이비 교주보다 그 신자들을 더 얕보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정당하다. 열렬히 거짓말을 원하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과연 죄란 말인가? 사실 사기꾼과 선지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거짓말이란 비범한 것이며 또한 비범한 자들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2세기의 작가인 루키아노스의 책에 흠뻑 빠진 이유 역시 그가 바로 훌륭한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거짓말쟁이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거짓말쟁이임을 밝힘으로써 진실과 거짓말의 경계를 넘나들며 동시에 그 경계를 지워버리고 다시 그 경계를 세운다. 그는 정말이지 혼을 쏙 빼놓을 만한 거짓말을 적나라하게 쏟아내는데, 우리는 그것을 '상상력'이라는 말로 포장할 수 있다. 상상력이란 결국 오로지 거짓말을 위한 노골적인 거짓말이 아닌가. 동시에 그의 거짓말은 자연스럽고도 적극적으로 '민주주의 정신'과 이어져 있다. 저승을 묘사한 그의 글을 보더라도 속세에서 가장 비천했던 자가 주인공이 되어 대접을 받는가 하면, 수십 명의 망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입장을 늘어놓는다. 물론 거기에 교훈적인 의도와 개인적인 편애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정하게 그들의 말을 - 물론 기막히게 뻔뻔하고 동시에 참으로 그럴듯한 거짓말을 통해 -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사람들 각자는 누구나 평등하게 말할 자유와 권리가 있으며, 작가라고 해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그들이 이미 죽었거나 심지어 한 번도 실존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다.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의 범위는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가상의 인물들에게까지 확대된다. 이 민주주의 세계에서는 그들 모두가 동등하게 실존한다. '민주주의'와 '거짓말'의 성공적이고 현란한 조화. 그리하여 그의 책은 놀랍게도 오늘날 그 어떤 책 보다 '현대적'이 된다.
거짓말은 이 세계가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평등하고 자유롭게 한다. 그리고 평등하고 자유로워질수록 우리는 더욱더 거짓말을 한다. 더 평등하고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아니, 완벽하게 평등하고 완벽하게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결국 평등과 자유라는 진리를 위해서? 그렇다면 실은 우리는 이 세계가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전혀 믿고 있지 않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해서든 거짓말을 진리로 바꾸려고 발버둥 치고 있지 않나? '믿음' 결국 이 것이 이 모든 것의 원동력이다. 이것이 이 세계를 탄생시켰다. 우리를 탄생시켰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종교로 회기 한다. 그렇게 생존하고 실존하고 계속한다.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좋다. 그것은 어쩔 수 없지. 그런데 혹시 거짓말의 거짓말은 진리가 되지는 않을까? 혹시 거짓말의 거짓말의 거짓말이라면 어떨까? 혹은 거짓말의 거짓말의 거짓말의 거짓말의 거짓말의 거짓말이라면? 그 끝에서 어쩌면 우리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수많은 거짓말을 모아 어떻게 해서든 진리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연금술사들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기 자신마저 속인다. 우리 자신 역시 거짓말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