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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May 04. 2020

[연극] 전쟁터의 소풍




연극 : 전쟁터의 소풍

공연장소 : 한양레퍼토리 씨어터

공연기간 : 2020년 5월 2일 ~ 2020년 5월 13일

관람시간 : 2020년 5월 3일 오후 3시





     2달 넘게 공연을 보지 못하다가 연극으로는 첫 공연 관람이었다. 나는 살짝 설레기도 하고 어느새 공연장 방문이 어색할 것 같기도 해서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일단 연극을 고르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너무 많은 연극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연극이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공연이 취소된 상태여서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그래서 더 꼼꼼히 뒤져서 선택한 연극이 [전쟁터의 소풍]이었다. '전쟁'과 '소풍'이라니. 이건 무조건 중박은 보장된 조합이 아닌가. 전쟁은 언제나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법이다. 나는 2달을 쉰 만큼 이제부터 좀 더 명쾌하고 솔직하게 감상평을 쓰겠노라 단단히 벼르고 있던 참이라 살기등등하게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일찌감치 예매했는데도 불구하고 내 좌석은 구석진 자리에 배정되어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좌석을 한 칸씩 띄어놓은 탓이었는데 중앙 쪽 좋은 자리들이 공연이 시작되고도 텅 비어있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구석진 자리에 배정된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나는 연극을 보는 내내 온몸을 뒤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견디기가 힘들었다.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공연 도중에 나간 적이 없었는데 이번 공연은 내게 큰 위기였다. 꼭 나에게만 그런 건 아닌 듯싶었다. 위생병이 나오는 장면에서 한 여자가 공연장을 떠났고 위생병이 퇴장할 때쯤 또 한 남자가, 그리고 잠시 후 또 누군가가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그들은 다른 급한 용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떴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공연을 보면서 내가 계속해서 되뇐 생각은 '대체 나에게 왜 이러세요'였다. 농담이 아니다. 난 거의 모욕감을 느꼈다. 실제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중에 생각하니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부끄러웠다. 화가 치밀 이유는 없었다.) 코미디빅리그와 텔레토비를 합쳐놓은 듯한 이 연출과 연기는 대체 뭐란 말인가. 짧지도 않은 공연 내내 꽁트가 이어지다니 어째서일까. 대사나 희곡의 의미는 거의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영혼 없는 과장된 연기와 감정선, 촌스러운 개그 감각, 대사 하나하나마다 가해지는 과도하고 억지스러운 행동에 나는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칼'이라는 역할이었다. 이 희곡의 작가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의미도 역할도 존재감도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걸까? 연극 시작과 끝에 폼이나 잡으면서 대사나 몇 마디 늘어놓으라고? '칼'이라는 캐릭터로  이 이야기를 부조리극으로 포장하려 했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부조리란 어긋나는 틈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지 면전에서 그럴듯하게 꾸며댄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등장인물들을 바보로 만들고 밑도 끝도 없는 몸 개그를 하게 한다고 해서 이꼬르 부조리라는 공식이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요즘 연극들이 엉성함을 부조리라고 우기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부조리란 세밀하고 치밀한 것이다. 이 연극은 부조리극이 아니라기보다는 부조리극인지 아닌지 확인이 전혀 불가능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나는 이 연극의 대본이 원작 그대로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원작을 모르는 상태에서 공연만 놓고 보자면 아마추어 작가의 희곡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연극 전체가 그랬다. 설사 아마추어 연극이었다고 해도 나는 이보다 더 좋게 감상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모르겠다. 평소 내가 쓰던 감상보다 분량이 적지만 여기서 마무리해야겠다. 다소 지나치게 말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지만 다르게 표현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관객석에서는 종종 크게 웃음이 터지고 공연 후 박수 소리가 요란했으니, 언제나 그렇듯 나는 내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진 않겠다. 그저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서둘러 극장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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