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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May 22. 2020

코로나 때문에 연극 관람을 3달 넘게 쉬며

연극용 가면 - 폼페이에서 발견된 로마시대 모자이크 (2세기)




     연극을 마음껏 보지 못한 지 (중간에 한 편 보기는 했지만) 벌써 세 달이 되었다. 일주일에 최소한 한 편씩, 때로는 두 편씩도 연극을 보던 나로서는 이 정도가 되면 금단증상까지 느껴질 정도다. 2주 전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에 한두 명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나는 물색 모르고 좋아했다. 미리 예매해 두었거나 보려고 꼽아두었던 모든 공연이 이미 취소되었지만 묵혀두었던 기세가 충천하여 닥치는 대로 봐주겠어, 이를 갈았다. 연극 [전쟁터의 소풍]을 시작으로 진짜 제대로 한 번 달려 보겠다며 [13월의 길목]과 [오해]라는 연극까지 재빨리 예매해놓은 참이었다. 그러나 다시 이태원을 비롯해서 여기저기서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겁을 집어먹은 나는 결국 예매해놓은 연극 공연마저 가지 못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코로나가 걸리면 큰일인 사정이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잔뜩 몸을 사리고 있다. 다시 긴 기다림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왜 연극을 보는가. 앞에 [시작하며]란 글에서는 영화와 비교도 하며 제법 거창하게 끄적이긴 했는데 다시 읽으니 좀 민망하다. 난 전문가도 아니고 연극의 미학까지 떠들 입장은 안된다. 그러니 그런 우격다짐의 글은 쓰지 않는 게 좋았을 것이다. 나는 그저 순전히 관객으로서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거나 무대 위에서는 배우들이 전문가인 것처럼 관객석에서만큼은 나도 전문가가 아니겠는가. 나는 왜 연극을 보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실은 나는 연극을 보러 가는 게 아닌 듯하다. 나는 숨으러 가는 것이다. 그 불특정한 어둠 속으로 말이다. 관객석의 어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곳이 아닌가. 그것은 진정한 밤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고 홀로 세상을 등질 수 있는 곳. 내가 누군가일 필요 없이 그저 존재할 수 있는 곳. 나라는 가면을 벗고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곳. 나는 무대가 아니라 바로 그 어둠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그 어둠 안에서 비로소 잠들 수 있는데 연극은 그저 그 잠결에 꾸는 꿈에 불과하다. 나는 꿈속에서 나 대신 나의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것은 마치 신이 잠결에 꾸는 '세상이라는 꿈'처럼 은밀하고 교만하며 무책임하고 기만적이지만 또 한편으로 신성하다.

     그래서 나는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허무는 공연을 (순전히 개인 취향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 있던 나를 조명이 환한 무대 위로 끌어내어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겨 놓는 것처럼 당황스럽다. 그 순간 나는 가면을 벗어놓고 그 누구의 가면도 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별안간 '나'라는 역할을, 혹은 '관객'이라는 역할을 강요당하는 꼴이다. 물론 연극적이고 미학적인 취지라던가 발상에는 공감하며 흥미롭게 생각하고 신나게 분석하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무대와의 거리가 필요하다. 그 거리감이 없다면 나는 연극을 보러 갈 필요 없이 피부처럼 내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이 세상만으로도 이미 충분할 것이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이머시브 연극 (관객 참여형, 혹은 몰입형 연극)에서도 나는 관객석에 남아 멀찍이서 배우들과 관객들 전체를 바라보는 걸 즐긴다. 

     부탁하건대 나에게 무대를 강요하지 마라. 삶을 강요하지 마라. 나는 이미 무대를, 삶을 지나치게 충분히 가지고 있다. 나는 극장에 살러 온 것이 아니라 잠을 자러 온 것이다. 죽으러 온 것이다. 부활하러 온 것이다. 그리고 눈을 뜨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자꾸 되돌아보게 되는 어렴풋한 꿈 하나.

     3달 동안 연극을 보지 못하니 마치 밤이 없이 낮만 계속되는 것 같다. 불면증의 걸린 사람들에게는 밤도 낮처럼 창백할 것이다. 벌써 2020년의 반이 다 지나가고 있는데, 언제쯤 마음껏 공연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6월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공연장을 찾으려고 하는데, 볼만한 공연이 있을지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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