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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un 07. 2020

[연극] 고기잡이 배



연극 : 고기잡이 배

연장소 :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공연기간 : 2020년 6월 5일 ~ 2020년 6월 28일

관람시간 : 2020년 6월 6일 오후 4시




     6월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공연을 보러 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여전히 코로나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번에는 티켓을 취소하지 않았다. 나는 늘 공연 시간 몇 분 전에 공연장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는 (나쁜) 습관이 있는데, 오늘은 30분이나 일찍 도착했으니 내가 얼마나 기합이 들어가 있는지 알 만했다. 기다리면서 보니 공연장 대기실에 걸린 커다란 플래카드에  [하드보일드 펑크 리얼리즘 연극]이라고 쓰여있었다. 하드보일드... 펑크... 리얼리즘? 아, 이건 좋은 징조가 아닌데. 내가 불안한 마음으로 옆으로 눈을 돌렸을 때 이 연극의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 연극의 부제를 거기서 처음 보았던 것이다. [바다로 간 한국 사람들] 왜 그냥 사람들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인 걸까? 내 불안함은 어느새 불길함으로 바뀌었다. 이런 단어가 '굳이'  붙은 공연은 이념적이거나, 애국적이거나, 정치적이거나, 교훈적이거나 등등이 되기 마련이었다. 그게 뭐가 나쁘냐고? 뭐, 내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념이나 애국이나 정치나 교훈을 앞세운 연극 치고 좋았던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리고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연극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 연극이 이념적이거나, 애국적이거나, 정치적이거나, 교훈적이어서가 아니었다. 연극은 이념적이지도, 애국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교훈적이지도 않았는데, 차라리 그중 하나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너무나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감상을 써야 할지도 좀 애매하다. 우선 가장 심각하고 난해한 부분부터 짚어보자면 등장인물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쓸데없이' 많았다는 것이다. 대기실에서 입장을 기다리면서 귀동냥으로 들어보니 배우들의 가족들과 지인들이 굉장히 많이 온 것 같았는데, 무리도 아닌 것이 소극장 무대에서 동시에 출연하는 배우가 무려 스무 명가량이나 되었다. 물론 단지 배우가 많다는 걸 트집 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왜 이렇게 배우가 많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최대 7-8명이면 충분했을 인물들을 억지로 찢어서 스무 명의 배우들에게 나누어 준 것처럼 캐릭터가 겹치거나, 인물들이 단순화되거나, 인물 각각의 비중이 적은 경우가 빈번했다. 그러다 보니 내용은 혼란스럽고 인물들은 평면적이며 배우들의 운신의 폭도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연극 전체의 구조를 약화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종의 '부풀림'은 이 연극의 전체적인 특성인 듯했다. 주제의식이 부재한 가운데   불필요한 대사들이 두서없이 난립하는 형국이었다.  그것이 개연성을 해치고 몰입을 방해했기 때문에 오히려 연극을 지루하게 만들었다. 시작할 때 '스탠바이'부터 마지막에 '국가' 운운까지, 이런 뜬금없는 언급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떤 경로로 튀어나왔단 말인가? 이게 바로 '의식의 흐름'이라는 걸까? 이런 식으로 이 연극은 윤리학, 철학, 시사, 역사, 심리학 등등등을 떠오르는 대로 무책임하게 툭툭 던져놓고는 줍는 사람 하나 없이 그냥 아무렇게나 무대 위를 굴러다니도록 내버려 둔다. 자칫 '겉멋'으로 보일 정도다. 내용적으로 보자면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라면) 연극은 이들이 반목하게 된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지 않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드러난 현상에 대해 가치 판단할 기회를 박탈한다. 그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나무보다는 숲을 보게 하고 디테일에 매몰되기보다 본질을 드러내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그 본질이라는 것이 혼잡해짐에 따라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되어 스스로에게 돌아오는데, 전체 이야기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인물들에 대한 교감을 방해하며 대사를 허공에 붕 띄워버린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가 그렇듯 어쨌거나 마무리 정리가 잘 되었다면 내 마음도 좀 진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무리마저 '투 머치'해서 끝까지 나를 아연하게 했다. 연극은 한 배우가 꽃다발을 들고 나와 다른 배우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때 거기서 막을 내려야 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진부하고 불필요한 대사들의 나열이 연극의 완성도를 더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도 연극은 끝나지 않고 갑자기 노래까지 들려주는데, 솔직히 말해서 배우들이 노래를 너무 잘해서 놀라긴 했다. 노래를 잘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넣은 서비스 컷 같은 느낌이었지만, 어쨌거나 노래 감상은 잘 한 셈이었다. 차라리 꽃을 나누어주면서 노래를 불렀다면 훨씬 의미 있고 깔끔한 결말이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연극은 전체적으로 '사족'이 너무 많다. 본론보다 사족이 많으니  여러 배우들이 열연을 해주었는데 불구하고 그 사족에 치여 그 연기가 빛날 여유조차 없었다.

     내 감상이 너무 매몰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코로나를 감내하며 오랜만에 보러 간 공연인 만큼 독이 바짝 올라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더워진 날씨에 마스크를 쓰고 내내 관람을 해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연극이 끝날 때쯤 마스크 안은 땀과 입김으로 온통 젖어있었으니까. 극장을 나서면서 비극을 진정 비극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비극적인 사연들을 가진 비극적인 사람들이 비극적으로 대립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비극적이지 않다니,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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