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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un 15. 2020

[연극 ] 어나더 컨트리




연극 : 어나더 컨트리

공연장소 :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 1관

공연기간 : 2020년 6월 10일 ~ 2020년 8월 16일

관람시간 : 2020년 6월 14일 오후 2시





     오늘도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단단하게 마스크를 쓰고 손소독제를 챙겨 들고 비장하게 전철에 올랐다. 기온이 올라가자 마스크 안에서 호흡하는 게 더 불편하게 느껴졌고 어쩐지 폐소공포증 비슷한 답답증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꼭 단점만 있는 건 아니어서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하여 모두에게서 얼굴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한편으로 내 마음을 편하게 했다. 연극배우들은 어떨까? 관객에게서 얼굴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마음을 편하게 할까? 나는 예전에도 [어나더 컨트리]를  보러 갈 기회가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더블 캐스팅을 포함해서 스무 명에 가까운 배우들이 하나같이 젊고 잘생겼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잘생긴 배우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이 경우는 잘생긴 배우들이 우글우글해서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 연극의 배경이 연예인 학교도 아닌데 이렇게  꽃미남으로 채울 필요가 있었을까, 저의를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진에서 보던 것처럼 배우들이 그렇게 꽃미남은 아니었다. 또한 내가 염려했던 것처럼 얼굴을 내세우는 연극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러니 우선 내 편견에 대해 사과부터 하는 게 좋겠다. 물론 전체적인 캐스팅에 배우의 외모를 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고 그 점에 있어서 마케팅 효과를 노린 건 분명해 보이지만 말이다. 실제로도 내가 이제까지 봤던 공연 중에 여성 관객 비율이 가장 높았다.     

     연극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해보자면, 반은 좋고 반은 싫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상당히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이야기 구성이 생각보다  신랄하고 쫀쫀하다. 동성 친구와 부적절한 행위를 하다가 적발된 학생의 자살이 교내에서 정치적, 윤리적, 계급적 문제로 진행될 때는 약간 흥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점점 얕아지다가 흐지부지되고 마는데, 이 연극에서 이야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인물들 군상 그 자체이며, 구축해가고 충돌하는 그들의 '정체성'이 바로 이 연극의 주제이다. 이들은 그 시대를, 전쟁 후 여러 이념과 신념이 교차하며 대립하고 갈등하는 시대를 대표하고 있다. 10명 남짓의 배우들이 나오는 데 그 누구를 주인공으로 해도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으며, 그 누구를 주인공으로 하느냐에 따라 옳고 그르고의 관점과 기준 역시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문제는 이 연극이 인물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동시에 무책임할 정도로 깊이 없이 스쳐 지나간다는 것이다. 정치적, 이념적, 계급적  대립에 동성애 문제까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더 산만해지는 데, 개인적으로 그것이  잘 버무려졌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저 생각할 지점들이 흩뿌려져 있고 그것을 찾아서 주워 먹는 재미가 쏠쏠하기는 하다. 무엇보다 인물들이 지나치게 캐릭터화 되고 있는데 '정체성'의 문제를 '캐릭터'로 단순화시키다 보니 인물들 각각의 내면이 섬세하고 진중하게 그려지지를 않는다. 나는 오히려 이 희곡을 영화로 만들었다면 더 잘 표현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클로즈업 기술과 평면적인 공허가 청소년 시기의 불안과 혼란을 더 잘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연극이 '정체성'을 '캐릭터'로 단순화시켰다고 했는데, 이것은 단지 연극 안에서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우리들 역시 '정체성'과 '캐릭터'를 혼동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 사회는 정체성의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그리하여 우리가 서둘러 자신을 '캐릭터화' 시킴으로써 더 많은 혼란과 실수를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진정한 나 자신이고 싶다고, 주인공인 베넷은 부르짖지만 자신을 누구라고 규정함으로써 - 동성애자라고, 이성애자라고, 공산주의자, 민주주의자, 애국주의자 등등으로 규정함으로써 우리는 동성애자답게, 이성애자답게, 공산주의자, 민주주의자, 애국주의자 등등 '답게'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되지 못하고 말이다. 동성연애는 괜찮지만 동성애는 안된다는 모순의 편협함은 나는 동성연애자가 아니라 동성애자라고 외치는 모순의 편협함과는 얼마나 다른 것일까? 순혈주의적인 이성애만큼이나 순혈주의적인 동성애에도 나는 냉소를 보낸다. 

      이 연극은 정치적인 문제도, 이념적인 문제도, 성 정체성에 대한 문제도 무엇 하나 제대로 다루지 않고 끝을 맺는다. 연극 전체가 그저 대략의 스케치와 같다. 마지막에 베넷이 동성애자로서 토로하는 그 길고 격정적인 장면이 좀 뜬금없을 정도다. 어쨌거나 베넷은 그 무엇 하나 손해 볼 생각이 없으며 원하는 모든 걸 갖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자유롭고 싶지만 성공하고 싶어 하고 동성을 사랑하면서도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다. 그러나 친구인 토미는 모든 일에 객관적인 우선순위를 매겨야 하며 가장 중요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 다른 모든 걸 희생하고 삶을 한 점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다 보니 타인의 심정에 냉담하며 삶을 전략으로 바꾸어버리고 심지어 대화조차도 타협이라고 생각하고 거부한다. 베넷은 시대 안에서의 개인적인 삶을, 토미는 개인 안에서의 시대적인 삶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 둘을 담지하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한 개인 안에서는 온갖 모순과 기만, 거짓과 타협과 합리화가 일어난다. 그것이 바로 문학인데, 이 연극은 그런 점에서 별로 문학적이진 않다. 

     이 연극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무난하다'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신선함이나 큰 울림은 없지만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군더더기가 없다 보니  치열함도 깊이도 없지만 그 덕에 탄력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 연극 초반에는 배우들의 아이돌 가수 같은 표정과 외화 더빙 톤의 발성, 과장된 멋들어진 몸짓 때문에 좀 당황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보면 그런가 보다 적응하게 되고 또 몰입할 수 있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냉방 시설이 잘 되어있는 카페에서 마시는 한 잔의 스무디 같은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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