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by 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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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sses 안경 (2016)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전시장 바닥에 누군가가 떨어트린 안경을

작품으로 착각하고 감상하고 있는 관객들





이 작품을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에


분명 예술가들은 동의할 것이다.


자신들이 희화화된 것 같아 마음이 상한 예술가도


직업 비밀이 누출된 것 같아 신경이 날카로워진 예술가도


드디어 반예술이 실현되었다며 환호하는


예술가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이것을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촌스러운 꼰대처럼 보일 테니까.


최대한 쿨하게 말하겠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현대 예술의 완성이라고.


보라, 무엇이든 예술 작품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관객 너희들도.


그러나 관객들은 입을 다문다.


화가 나서가 아니야.


관객들은 늘 같은 취급을 당해왔으니까.


관객들도 알아.


관객이 작품의 원천이라느니, 관객도 작품의 일부라느니


심지어 관객이야말로 작가라느니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면서 현대미술이 자신들을 이용해 왔다는 걸.


놀래키고, 속이고, 가르치고, 얕보면서


뇌는 없고 감각만 있는 좀비 취급을 했지.


작품을 평가할 머리도 작품을 살 돈도 없는 사람들을 바로


[관객]이라고 부르니까.


관객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어리둥절해하며 억지로 의미를 되새기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며 예술가들은 변태처럼 기뻐했지.


관객들이 쩔쩔매면 맬수록


작품의 평가도, 작품의 가격도, 작가의 우월감도 올라가는 걸 알고서.


뭐, 이번에도 그런 것뿐이야.


단지 예술가가 없었을 뿐.


그런데 그게 무슨 대수인가?


관객들은 이 '안경'에 감탄하면서 속으로 빙그레 웃지.


예술가들아, 무대 뒤를 향해 나직이 외치는


관객들의 독백을 들어라.


우리는 아직 좀 더 바보 역할이 하고 싶으니


너희들이 좀 더 천재 역할을 해 줬으면 좋겠어.


이번처럼 뻔히 들키지 말고.


예술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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