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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May 04. 2023

우울의 해부학 (19)

로버트 버턴

Jean Antoine Watteau의 [피에로] (1718)




( 역자 - 라틴어는 명조체로 진하게 표시합니다. )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카멜레온처럼 모습을 바꾸거나, 혹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어떤 형태로든 변신할 수 있었던 프로테우스①처럼 한 번에 20개의 역할들과 사람들이 되어 행세하는 사람을 보세요. 그는 행성 수성②처럼 시세에 영합하지요.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 나쁜 게 나쁜 거구요. 그런 사람은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상대하기 위한 여러 가지 얼굴, 복장, 캐릭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온갖 종교와 유머와 성향에 따라 각각 적당한 걸로 말입니다. 그것은 스패니얼③이 새끼를 낳듯 거짓되고 위선적인 행동입니다. 사자처럼 사납고, 똥개처럼 짖고, 용처럼 싸우고, 뱀처럼 쏘고, 양처럼 온순하다가 다시 호랑이처럼 이를 들어내고, 악어처럼 울고, 어떤 이를 모욕하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 지배당합니다.  여기서는 명령하고, 저기서는 굽실거리고, 한 장소에서는 억압하고, 다른 곳에서는 실패하고, 집에서는 현명한 사람이지만, 밖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바보지요. 

     말과 행동 사이의 그 많은 차이점들과, 혀와 심장 사이의 수많은 파라상④들을 보세요. 사람들은 배우처럼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교훈을 주고, 위를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행세합니다실상은 땅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으면서요. 

     상대방에게 우정을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상대방의 손에 키스를 하는 사람, 상대가 참수당하기를 바라면서도 장난으로 미소를 보내는 사람, 혹은 상대에게 정중하게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를 속이고, 의미 없는 과장된 찬사로 상대방을 찬미하는 사람을 보세요. 설사 적인 상대편이 선량한 사람일지라도 그와 그의 모든 행동을 비방하고 수치를 주려고 합니다. 저주와 악의가 생겨날 만큼 최선을 다해서요. 

     자신의 주인을 돈으로  살 수 있는 하인을 보세요. 그가 곤봉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행정관이 그렇게 하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지만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에픽테토스⑤는 그것을 질색했죠. 땅을 가는 말에게는 쭉쩡이를 먹이고, 쓸모없는 쇠약한 말에게는 풍부하게 여물을 제공하는군요. 신발을 만드는 사람은 맨발로 돌아다니고, 고기를 파는 사람은 수척하기 그지없습니다. 노동을 하는 사람은 굶주리고, 게으름뱅이는 번창합니다. 

     상품을 얻으려고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헛된 것을 사는 사람, 바보들의 머리로 지어진 성들과 화려하게 치장하고 세련된 몸짓을 해 보이며 그럴듯하게 행동하는 원숭이 같은 사람들을 보세요. 왕이 웃으면 모두가 웃는군요.  


    당신이 웃으면 더 온화한 웃음이 그의 옆구리를 흔듭니다. 당신은 우는 것을 보면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집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몸을 굽히면 신하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알폰손⑥이 고개를 돌리면 그의 기생충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네로의 아내인 사비나 포페아가 호박색 머리를 하자 로마의 모든 여인들이 그렇게 했으며 그것은 곧 그녀들의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순전히 자신의 기질에 이끌려 아무 판단 없이 존경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을 보세요. 사려 깊지 못한 무리들은 한 마을에 사는 개들과 같습니다. 개들은 한 마리가 짖으면 아무 이유 없이 모두 짖기 시작하죠. 운세의 바퀴가 돌기 시작해서 어떤 사람이 은총을 받거나 위대한 사람에게 임명이라도 되면 온 세상이 그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반면에 불명예를 받으면 즉시 모두가 그를 미워하고, 마치 그가 태양에 일식의 그림자를 드리우기라도 한 것처럼 전과 다르게 그를 뚫어지게 빤히 바라봅니다.  

     뇌는 배속에 있고, 내장은 머리에 있고, 참나무 백 그루를 등에 지고, 한 끼 식사로 소 백 마리를 먹어 치우는, 아니, 그 이상으로, 집들과 마을들을 집어삼키고 식인종처럼 서로를 잡아먹는 사람을 보세요. 

     부당한 방식으로 명예와 직책을 움켜쥐려고 하는 사람들이 거지처럼 비참한 바닥에서부터 정당한 명예와 영광스러운 직함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눈뭉치처럼 굴리는 모습을 보세요. 다른 이들은 그의 재능을 갈망하고, 부를 축적하는 그의 영혼을 저주하지요. 하지만 그는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 채 낭비를 일삼는 그의 아들이 그 재산을 물 쓰듯 써버리고 한순간에 날려버릴 겁니다. 

    인기인의 인기인의 인기인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 방법, 시간, 재산을 쏟아붓는 우리 시대의 악습을 보세요. 기식자들의 기식자들의 기식자들은 이미 충분히 맹종적인 이 세계를 비웃을 겁니다. 털이 많은 거지의 자식이 최근에 부스러기를 먹고 크더니 기고 칭얼거리다가 모두를 향해 울어재끼기 시작합니다. 심부름 나간 늙은 바보는 실크와 새틴 옷을 입고 주름잡으며 용감하게 말에 올라타고는 위풍당당하게 점잔을 빼면서 오래된 친구들과 지인들을 얕보고, 친척들을 무시하고,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을 모욕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권세를 부리는군요.

     학자가 읽고 쓸 줄도 모르는 농부에게 굽실거리며 기어가 먹을 고기를 구걸하는 걸 보세요. 공증인은 자신이  의무로 하는 일로 더 많은 돈을 받지요. 매 사냥꾼은 학생보다 훨씬 더 많은 임금을 받구요. 변호사는 철학자가 1년에 버는 것보다 하루에 더 많이 법니다. 아니, 철학자가 열두 달 동안 연구해서 버는 것보다 한 시간 안에 더 많이 벌걸요. 타이스⑦를 그리거나, 깽깽이를 켜거나, 남의 머리를 말아 올리는 사람은 문헌학자나 시인보다 더 빨리 성공합니다. 

     자신의 아이를 죽음에 이르도록 꼭 껴안았던 이솝의 이야기에 나오는 원숭이⑧ 같은 다정한 어머니들을 보세요. 어떤 남편은 다른 사람들의 부정에 대해서는 금세 알아채면서도 자기 부인의 부정은 모른 척합니다. 어떤 사람은 커다란 장애물은 잘 건너뛰면서도 밀짚 하나에 발이 걸려 넘어집니다. 베드로를 털어서 바울에게 주기도 하고, 한 손으로는 부정한 돈을 긁어모으고 부패와 기만과 사기로 대저택을 구입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가난한 이들에게 관대하게 적선하고 경건한 용도로 사용하는군요. 페니⑨는 현명하고 파운드⑩는 바보입니다. 장님이 색을 판정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침묵하며, 바보가 떠들어댑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추어내면서요.  스스로에게 더 안 좋은 것은 비밀리에 한 짓을 공개적으로 떠들어댄다는 것입니다. 아우렐리우스 빅토르⑪는  아우구스트⑫에 대해 1/3 가량은 그 자신의 잘못이라며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고용된 하인이 연말에 임금을 제대로 주지도 않을 새 주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위험에 처하도록 하는 걸 보세요. 시골의 농부는 낭비나 일삼으며 빈둥거리는 게으름뱅이를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힘써 일합니다.  게으름뱅이는 수확물을 모두 먹어치우거나 공상적인 일에 흥청망청 돈을 써버리죠.  고귀한 귀족은 허세를 부리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영광의 작은 섬광을 위해 자신을 내버리는 거죠. 세속인은 사형집행인을 보면 떨지만 지옥 불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불멸을 바라고 희망하며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죽음을 피하려고 하는 모든 것은 죽음으로 그를 이끄는 필연적인 통로가 됩니다.

     매 맞는 것보다 죽는 것을 더 선호했던 옛 덴마크인과 같이 무모한 사람을 보세요. 벌을 받느니 죽어버리고 말아요. 그들은 천박한 유머로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죄와 비참함, 진실한 친구의 죽음에 대한 비탄을 경멸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무시되고 멍청한 사람이 우대받는 걸 보세요.  그는 마을과 도시를 다스리지만 집에서는 멍청한 부인에게 도리어 잡혀 삽니다. 영토를 다스리지만 자신의 하인들과 자식들이 오히려 그에게 법을 지시하지요. 그리스의 테미스토클레스⑬의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내가 원하는 대로" (그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뜻으로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아버지는 하십니다." 사람이 끄는 마차에 타고 있는 말들을 보세요. 개가 자신의 주인을 먹어치우는군요. 탑이 석공을 짓습니다. 아이들이 시키고 노인들이 학교를 가구요. 여자가 바지를 입습니다. 양이 마을을 파괴하고 사람을 먹어치웁니다. 아, 만약 데모크리토스⑭가 살아있었다면

     개별적인 것을 일일이 늘어놓는 것은 헤라클레스의 과업에 버금가는 일일 것입니다. 터무니없는 예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태양에 있는 티끌들처럼 말이죠. 세상에는 허무한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누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의 잘못으로부터 모두가 배웁니다. 이것들을 좀 맛보십시오. 이것은 감지하기 쉽고, 일상적이고, 잘 알려져 있으며, 분간하기 수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감지하기 쉽고 일상적이며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식별하기 쉽습니다. 만약 데모크리토스가 그들의 내면의 비밀을 알았다면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요? 만약 모든 사람의 가슴에 창문이 있다면요? 모무스⑮가 불카누스⑯의 사람들에게서 이미 가지고 있는 것처럼요. 또한 툴리⑰는 모든 사람들의 이마에 '각 개인은 공화국에대해 무엇을 느껴야 할까요?' 같은 말이 새겨져 있기를 간곡히 바랬습니다. 그것은 즉시 인지할 수 있습니다. 루키아노스⑱의 글에서 단번에 모든 소문과 속삭임을 식별해 낼 수 있도록 머큐리⑲가 카론⑳의 눈을 만졌던 것처럼요.  

     








1) Proteus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해신들 중 한 명이다. 뛰어난 예언 능력을 지녔지만 이방인을 싫어하여 몸의 형태를 바꾸어 도망치곤 했다. 





2)   태양 주변을 도는 수성의 공전주기가 짧기 때문에 매우 바삐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예전에는 수성을 태양의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수성을 예를 든 것은 이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3) spaniel - 개의 한 품종으로 중형견에 속한다. 주로 새를 사냥하기 위해서나 애완견으로 사육된다. 왜 여기에 스패니얼을 예로 들었는지 찾지 못함.


카발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




4) parasang - 페르시아의 거리 단위 고대에는 6km를 나타냈다.



5)  Epictetus - 1-2세기 경 스토아학파 철학자. 진리와 윤리적 생활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6) Alphonsus -  구세주회(Redemptorist) 수도원 창설자이며 윤리신학자. 구세주 수도회를 세우고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업에 헌신했다.



7) Thais - 기원전 4세기 경 알렉산더 대왕의 애첩






8) 이솝 이야기에 나오는 우화 중 하나다. 한 어미 원숭이가 두 새끼 중에 한 새끼만을 편애하였다. 그래서 늘 한 놈만 끼고돌면서 나머지 하나는 방치하여 어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새끼는 스스로 살아가야 했다. 어느 날 이웃의 원숭이들이 쳐들어 오자 어미 원숭이는 사랑하는 새끼만 품에 꼭 껴안고서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그러나 어미가 너무 꽉 껴안은 탓에 어미의 품에 있던 새끼 원숭이는 숨이 막혀 그만 죽고 말았다. 반면 어미의 사랑을 받지 못하던 새끼 원숭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9) Penny - 영국의 화폐 단위의 하나로 작은 동전이다.  



10) Pound - 영국의 화폐 단위의 하나로 지폐이다. 페니가 100개 모이면 1파운드가 된다.



11)  Aurelius Victor  - 4세기 경 로마의 정치가이자 역사가. 



12)  Augustus -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경 최초의 로마 황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13) Themistocles - 기원전 5-6세기 고대 그리스의 군인이자 정치가. 아테네 함대를 지위하여 페르시아 해군을 격파하였다. 



14) Democritus -  기원전 5세기말에서 4세기 초에 활동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원자론을 기반으로 한 우주론을 체계화시켰으며 유물론적 철학을 지향했다. 거의 동시대 사람이었던 플라톤의 관념론과 대립했다. (작가는 자신을 데모크리토스의 후계자로 자처하고 있다.)



15) Momus -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조롱의 신이다.




16) Vulcan - 고대 로마 신화에서 불의 신으로 화산, 대장간, 사막 등과 연관되어 있다. 이 글에서 '불카누스의 사람들'이란 쉽게 흥분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을 뜻하는 듯하다.





17) Tully - Marcus Tullius Cicero (키케로)를 뜻하는 듯하다. 기원전 1세기 경 고대 로마의 웅변가, 정치가, 법률가, 작가로서 연설을 잘하기로 유명했다.



18)  Lucian - 2세기 경 고대 로마의 풍자 작가. 종교, 정치, 철학 및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풍자하였다.



19) Charon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며 죽은 자의 영혼이 저승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스틱스 (혹은 아케론) 강의 뱃사공이다. 카론에게 뱃삯을 주기 위해 죽은 자의 입에 은화 한 잎을 넣어 주었다고 한다.







/번역/우울증의 해부/우울의 해부/The Anatomy of Melancholy/Robert Burton/로버트 버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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