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순진하게 (6)

by 곡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놀랍게도 나는 소영이를 불러내어 동현이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런 행동이 참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으며 딱히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동현이가 뭐래?”라고 말했던 그 순간 이미 자존심 같은 건 간편하게 유기되었는지도 모른다. 하긴 따지고 보면 자존심이란 게 무슨 소용인가? 아니, 그 이전에 자존심이란 게 대체 무엇인가? 자존심이란 그저 엄마의 젖가슴이 나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거나, 혹은 내가 엄마의 젖가슴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수준의 유아기적인 아집에 불과하지 않은가? 나 자신을 내 작디작은 손아귀 안에 어떻게든 움켜쥐려고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때 한 움큼도 되지 않는 자존심을 세우느라 소영이를 멀리했다면 동현이에 대한 마음도, 소영이와의 관계도, 동현이와 나의 이야기도 거기에서 끝나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이야기에 나 자신을 맞추어가는 법을 비굴함과 비겁함을 통해 처음으로 배운 것이다.

그 후부터 소영이는 자신에게 마땅한 권리라도 있는 것처럼 나와 동현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견하기 시작했다. 보호자라도 되는 양 나를 싸고 돌았고 나의 모든 걸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듯 유세를 떨었다. 나는 그런 그 애의 표정이며 행동거지가 넌더리 날 정도로 싫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애를 혐오했을지언정 진심으로 미워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 애를 필요로 한다는 걸, 내 이야기에 그 애가 꼭 필요하다는 걸, 나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소영이의 요리 동아리 활동이 끝날 때까지 교실에서 혼자 두 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었다. 특별한 용건도 없이 그저 늘 하던 것과 똑같은 푸념 몇 마디를 털어놓기 위해서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소영이가 동현이와 나 사이를 오가면서 서로에 대한 얘기를 암암리에 옮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소영이는 단지 동현이에 대한 얘기를 나에게만 전해주는 것처럼 굴었지만, 또한 내 얘기를 동현이에게 전하고 있음을 실수이든지 의도이든지 간에 은근히 내비추었다. 그 바람에 나는 더 노골적으로 나에 대한 얘기를 (거짓말까지 섞어가며) 소영이에게 털어놓아야 했다. 그러나 그 애가 정말 내 얘기를 동현에게 전하고 있긴 한 건지, 한다면 어떤 식으로 하는지 알 길이 없었고, 결국 나는 더욱 전전긍긍하며 소영이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나와 동현이가 맺어지기를 소영이가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아주 나중에 또 다른 친구로부터 소영이가 동현이를 좋아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나는 소스라칠 만큼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2학기가 끝나갈 무렵, 그러니까 12월 초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직전에 별안간 동현이가 분당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달려온 소영이를 통해 동현이가 전학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너무나 경황이 없고 당황스러워서 우선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학교를 조퇴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대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침대에 기대어 앉아 흐느껴 울었다. 거의 두 시간가량을 그렇게 눈물만 철철 흘렸을 것이다. 그런 눈물에는 성숙하고도 비련한 느낌을 주는 어떤 것이 있어서 울면 울수록 더더욱 서러운 기분에 잠겨들었다. 이것은 분명 평생토록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가 될 거라고, 우습게도 그때의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슬픔이라기보다 어리둥절함에 가까웠던 것 같다. 갑작스러운 동현이의 전학은 한참 재미있게 읽던 연재소설이 예고 없이 중단된 것에 비길 만했다. 혹은 작가가 수십 가지의 복잡한 상황과 관계를 흥미진진하게 벌여놓고는 어이없을 정도로 맥없이 이야기를 마무리지어버리는 경우와도 비슷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을 불시에 죽게끔 함으로서 모든 갈등과 분노를 일순간에 공허하게 만들어버리고 또 교훈적인 단계로까지 희석시키는 삼류 소설처럼 말이다. 아니, (눈곱만큼도 진심으로 바랐던 적은 없었지만) 만약 동현이가 어떤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죽었더라면 나로서는 사정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것은 큰 슬픔이고 충격이었을 테지만 나는 ― 사랑 때문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강렬한 심상 때문에 ― 지고지순한 추억을 평생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비극은 내 인생에 감상적이면서도 우울한 색채를 드리웠을 것이고 나를 좀 더 성숙하고 진지하게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작 전학이라니, 도대체 이걸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결국 동현이는 예정대로 며칠 후에 전학을 갔다. 아침 조례에만 잠깐 참석하고 곧바로 떠나는 바람에 마지막으로 그 애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나의 첫사랑은 시시하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그해 겨울을 지독히도 춥고 우울하게 보냈다. 보충수업을 위해 학교에 갔던 것을 빼고는 겨울방학 내내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친한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정말 내가 그 정도로 상심해 있었다기보다는 동현이에게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초라한 오기라도 부리지 않고는 마무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단순히 첫사랑의 실패만이 아니라 나의 첫 이야기의 실패이기도 했다.

겨울잠과도 같았던 긴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 나는 친구들의 끈질긴 요청에 못 이겨 술자리에 나가게 되었다. 계속 거절하는 것도 면구스러웠고 또 거창하게 구는 듯이 보이는 것도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겨울이라 더 이상 공원에서 술을 마실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한 친구 집의 옥탑방 창고를 이용했다. 먼지가 덮여 있는 종이 상자들과 갖가지 잡동사니 틈에서 전기 히터를 켜놓고 술을 마시는 것도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만약 평소였다면 꽤나 즐거운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친구들이 나를 위로한답시고 마련한 자리였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날 친구들은 나에게 유난히 다정하고 친절하게 굴었다. 그들은 나를 위해 따듯한 인사와 맛있는 안주를 준비했고 앞 다투어 따라주는 술로 내 술잔은 빌 틈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마에 ‘위로’라고 크게 써놓고서 내게 얼굴을 들이미는 모양새여서 정작 내게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았다. 짐작건대 친구들은 내가 목 놓아 오열이라도 하겠거니 잔뜩 고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속눈썹이 조금 떨리기만 해도 열렬한 동감과 동정을 퍼부어주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조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새침하게 까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울지 않기 위해 일부러 참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눈물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사실 중간에 조금 취기가 올랐을 때는 그냥 친구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눈물 몇 방울이면 모두들 만족할 것이고, 본전 생각도 날아가고, 다 함께 그럭저럭 정다운 마음을 나눌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진심으로 걱정하는 친구들의 얼굴 위에 ‘일이 참 우습게 되었다’는 표정 역시 선명하게 겹쳐 있어서 나는 그만 김이 새고 말았다. 그렇다고 딱히 불쾌한 건 아니었다. 별다른 유감도 없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가슴 아파하는 인정이 아무리 진심이라고 해도 ‘일이 재미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소영이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예전 같은 사이가 아니었다. 그저 데면데면하게 인사를 나눈 것이 다였다. 한동안 그토록 가까웠었는데 이제 말 걸기조차 어색하다는 사실에 나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설사 동현이가 계기가 됐다고는 해도 소영이와 함께 보냈던 그 많은 시간들이 모두 거짓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아니, 그런 건가. 어쨌든 더 이상 그 애에게 아무런 볼일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건 확실해 보였고 분명 소영이도 나에 대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각자의 실패와 치욕을 상기시킬 뿐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실수로 쏟은 술을 자신이 나서서 열심히 닦고 있는 주근깨투성이의 얼굴을 자세히 훔쳐보았다. 고분고분하고 수줍은 저 아이가 나와 동현이 사이를 능란하게 저울질했다고 생각하니 얼른 납득이 되지 않았다. 막상 소영이 본인은 우정이라는 멀건한 양심을 뒤집어쓰고 마냥 편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혹여 내가 따져 묻기라도 하면 그녀는 나를 위해 자신의 사랑과 질투까지 모두 희생했노라며 결백의 눈물이라도 흘릴 것이다. 하긴 누구의 눈에도 일은 그렇게 보이게끔 되어 있었고 그건 어떤 면에서는 소영이의 진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간교함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 애는 나와 동현이 사이에서 스위치 역할을 도맡으려 했던 것 같다. 스위치는 어떤 사건의 근원이나 결과는 될 수 없지만, ― 그래서 그 중요성이 쉽게 간과되곤 하지만 ― 실질적인 면에서는 사건들 전체를 관통하며 연결시켜서 이야기를 가능하게 하는 ‘의지’ 자체라고 할 만 하다. 이 점을 인정한다면 상반되어 보이는 ’이간질시키는 자’와 ‘화해시키는 자’의 동기와 기쁨이 실상은 동일한 부분에서 연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가끔은 한 사람이 이 두 역할을 동시에 해내고 있는 것 또한 넉넉히 이해가 될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스위치 역할을 하는 당사자에게는 무슨 이득이 되는 걸까? 아무것도. 개인적이고 실질적인 이득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좀 더 정교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주도하게 되는 것뿐이다. 무대 위의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무대 뒤의 작가나 감독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 또한 참으로 근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쯤에서 나는 소영이가 그 당시 나이와 경험에 비해 그 역할을 썩 잘 해냈다는 걸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그 애는 나와 동현이 사이에서 결코 한쪽으로 치우치는 법이 없이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만들어나갔다. 솔직히 나는 은근히 감탄하면서 소영이를 질투할 때도 있었다. 우습지만 소영이와 입장이 바뀌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소영이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 셈이다.

만약 동현이가 전학 가지 않았다면 그 이후에 어떻게 됐을까?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겠지만, 이렇게 어쩔 줄 모른 채 엉거주춤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멈춰진 이야기 뒤에 남는 건 쓸모없어진 몇 가지 기억, 해소되지 못한 감정, 망가져버린 관계, 잘려나간 일상들뿐이었다. 그것들을 추억이라는 말로 애써 위안해보지만 결국 모든 게 바스락거리며 부서져 내리기 마련이었고, 나는 그저 사물 뒤에 사물이, 그리고 또 그 뒤에도 사물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늘어서있는 세상을 멍청하게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는 어떻게든 계속되어야만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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