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순진하게 (7)

by 곡도




그 시절이 아마도 내게는 사춘기였을 것이다. 어른과 아이, 그 중간에 끼어서 내 마음대로 되는 거라곤 하나도 없이 모든 게 까마득하고 무력했던 시기 말이다. 아니, 그것은 중간에 끼었다기보다는 끼다 못해 튕겨져 나왔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개연성을 잊고 정체성을 잃고 방향성을 상실한다. 마치 대기권 밖으로 튕겨져 나온 우주비행사처럼. 누군가는 용케 다시 자신의 트랙으로 돌아오지만 누군가는 – 대부분은 -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연기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때부터인 듯하다.

사춘기란 그저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으면 저절로 지나가기 마련인데도, 당시에는 영원히 뒤쳐질까봐 무리해서 달려 나가거나 땅 속 깊이 파고들어 웅크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법이다. 그때의 나 역시 차라리 내 자신을 근거도 연고도 없는 바닥으로 내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비틀대느니 아무렇게나 뻗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때의 나라면 작은 암시나 조짐마저도 커다란 계시로 삼고 매달렸을 것이다. 심지어 약간 색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주저 없이 내 모든 걸 걸었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내가 아무런 사건 사고도 없이 청소년기를 평탄하게 보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경악스러울 정도로 평범한 내 주변에서 어떤 구실도 찾아낼 수 없었던 탓이기도 하다. 그 경악스러운 평범함이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나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긴 겨울이 끝나고 나는 입시생이 되었다. 미술대학 디자인과를 지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침 8시에 학교에 등교해서 오후 5시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미술학원으로 향한 뒤 밤 10시에 집에 돌아와서는 새벽 1시까지 학과 공부를 보충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우리나라 입시 제도의 문제점과 입시생들의 고충을 굳이 여기서 시시콜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일정과 판에 박힌 일상 속에서도 그것이 꼭 지옥 같은 생활만은 아니었다는 걸 밝혀두고 싶다. 더구나 입시는 내가 사춘기 시절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일종의 안전장치이기도 했다.

24시간이 10분 단위로 쪼개지는 타협 없는 생활, 소수점 자리까지 매겨지는 전국 점수, 대학들에서 제시하는 수십 가지의 입시요강 덕에 세상은 잠시나마 모눈종이 같은 직선들이 철저하게 가로지르는 곳처럼 보였다. 너무나 분명해서 말 그대로 어떤 경계라도 넘나드는 게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오죽하면 세상보다 내 자신이 더 복잡하고 미묘한 존재라고 짐짓 거만을 떨었겠는가. 어쨌든 당장은 그 경계의 끝인 소실점을 향해 힘껏 달려가기만 하면 세상은 그런대로 튼튼하고 반듯해 보여서 안심이 됐다.

그 새하얀 기하학의 평면을 나와 함께 묵묵히 달려갔던, 적이면서 동시에 전우인 그 얼굴 없는 단단한 뒤통수들이 내게 커다란 의지가 되었다는 사실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달려가고 있는 이들조차 진심으로 경계 너머를 꿈꾸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 경계 뒤에는 또 다른 경계가, 그리고 그 뒤에는 또 어떤 경계가 끝없이 이어질 뿐이라는 교훈 또한 이미 고전에 속할 정도로 잘 알려져 있었다. 단지 그들은 목적을 구실 삼아 일종의 강박적인 쾌감에 도취되어 있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때때로 공명심과 혼동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일종의 자아도취적이고 자학적인 쾌감인 것 같았다. 뭐가 되었든 하나의 점으로 귀결되는 정확한 목표를 자신에게 부과하고 과연 스스로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끝까지 몰아붙여보면서 ― 부러질 수 있다면 부러질 때까지 ― 견뎌내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또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해 ㄹ대학 디자인과에 합격했고(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ㅎ대학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2차 지망 대학에라도 붙어서 다행이었다) 한동안 신입생 환영회다 뭐다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신입생 환영회로 바쁘다는 건 그냥 엄살만은 아니었다. 우리 과 같은 경우 신입생 환영회가 한 번만 있는 것이 아니라 2학년 선배들과 한 번, 3학년 선배들과 한 번, 4학년 선배들과 한 번, 그리고 전체적으로 또 한 번, 이렇게 여러 번에 걸쳐 치러지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중간중간에 선배들이 의기투합 할 때마다 크고 작은 신입생 환영회들이 즉흥적으로 벌어지는 실정이었다. 가뜩이나 처음 시작하는 대학생활이며 전공 수업만으로도 얼떨떨한데 (하다못해 교복을 벗고 사복으로 치장을 하는 것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연달아 계속되는 신입생 환영회 때문에 정신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일반적으로 신입생들은 신입생 환영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신입생 환영’은 단지 선배들이 술자리에 끌어다 붙인 구실일 뿐이어서, 신입생들은 뒤로하고 자기들끼리 왁자지껄 흥겨워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성의껏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하던 신입생들도 곧 실망을 느끼고는 아예 불참하거나 중간에 빠져나와 자기들끼리 어울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선배들에게서는 벌써 닳고 닳은 구닥다리 냄새가 난다고 수군거리는 신입생들도 있었다. 그런 주제에 얼떨떨한 신입생들을 옆에 앉혀놓고 마음껏 거들먹거리는 한심한 속물들이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나는 젖비린내 풍기는 동기들보다는 차라리 닳고 닳은 선배들과 어울리는 편이 즐거웠다. 물론 나도 현실에 대한 타협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들로 인해 오히려 오만해져버린 선배들이 한심하게 여겨진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특히 별것도 아닌 사안을 핏대를 올려가며 비난하거나,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현실의 비정함을 잔뜩 부풀릴 때면 그들이 한심하다 못해 바닥까지 얕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가볍게 한 그릇 가득 채워내는 천진난만한 신입생들보다는 쥐어짜서 간신히 한 그릇을 채워내는 선배들에게 나는 더 많은 이해와 공감을 느꼈다.

아무튼 아무리 신입생들이 뒤에서 선배들을 얕보고 수군거린다고 해도 선배들 앞에서는 의례히 주눅이 들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필요 이상으로 과묵해지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아양을 떨었는데, 그런 모습이 순진하게 다가오기는커녕 거북하고 촌스러워 보일 때가 많았다. 반면에 나는 선배들에게 화통하고 시원시원한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목소리를 크게 내고, 직선적으로 말하고, 뭐든 가능한 자유주의자처럼 거리낌 없이 행동하고, 아무거나 먹고, 크게 웃었다. 사실 그것은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상대가 바뀌고 환경이 변하면 ‘나답다’는 것도 애매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막상 해보니 예전의 나를 버린다는 게 그리 어렵지만도 않았다.

사실 나는 대학교에만 입학하면 나 자신을 통째로 바꿔보겠다고 단단히 벼르던 참이었다. 지난 19년 동안 내내 고만고만한 내 자신이 지겨워서 견딜 수 없었는데도 어떤 특별한 계기 없이는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 자신마저 낯설어지는 새로운 환경에서, 그전의 나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의 시작이란 분명 내 자신을 재건축할 수 있는 훌륭한 기반이 될 터였다. 하지만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주변 사람들과 어영부영 익숙해져버리면 그것도 다 틀린 일이어서, 나는 되도록 빨리 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또 그만큼 강렬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그것이 역효과가 나는 바람에 몇몇 동기들에게는 시끄럽고 나서길 좋아하는 기회주의자라는 첫인상을 남기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선배들은 그런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 특히 남자 선배들은 2, 3일이 멀다 하고 내게 전화를 걸어(나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핸드폰을 구입했다) 술자리에 불러내곤 했다. 나 역시 흔쾌히 함께 어울렸다.

“야, 민주는 역시 멋지다니까.”

“김민주가 최고다, 최고. 내숭이나 떠는 기집애들보다야 백배 낫지.”

“다른 신입생들은 술 마시다 말고 꼭 중간에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먼저 자리를 뜨더라, 싹수없이. 근데 민주는 의리가 있어.”

선배들이 내 어깨를 스스럼없이 감싸 안으며 나를 치켜세울 때마다 나는 그들을 향해 기쁘게 웃어 보이곤 했다. 물론 그들은 단지 술자리의 흥을 돋우기 위해 물색 모르는 어린 여자 후배가 필요할 뿐이라는 걸 나 역시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으쓱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 동기들 앞에서 선배들이 내게 격식 없이 인사를 건네 올 때마다 보란 듯이 으스대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아, 방금 그 문철 선배? 그럼, 잘 알지. 같이 자주 만나니까.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도 같이 술 한잔 했는데 여자 친구하고 헤어져서 꽤나 힘들어하더라. 너희들한테 자세한 얘기까지는 할 수 없지만, 저 선배도 알고 보면 마음이 참 여린 사람이야.”

사실 그때도 문철 선배가 나에게 직접 자신의 여자 친구와의 사정을 얘기해준 건 아니었다. 그저 그 선배와 다른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옆에 앉아 있다가 주워들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마 그 선배는 내가 귀 기울이고 있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내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지 않는가.





(계속)




이전 06화좀 더 순진하게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