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과의 술자리는, 특히나 남자 선배들과의 술자리는 확실히 어른들의 자리였다. 나이로 보아도 대부분의 남자 선배들이 군대를 마친 20대 중후반이었고 나와의 나이 차도 보통 네 살에서 여덟 살, 많게는 열 살까지 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초등학생들처럼 시시껄렁한 농담을 지껄이며 낄낄대고 웃어재끼다가도 돌연 지엽적이고 현실적인 주제에 진지하게 몰두하곤 했다. 정치 문제, 사회 문제, 취직 문제, 돈 문제, 집안 문제, 여자 문제 등등 살아가면서 발길에 차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그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그중 대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불만과 불안, 침울한 하소연으로 점철되기 마련이었다. 그런 얘기 중에는 옆 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것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보고 있자면 나도 하얀 연기를 코로 내뿜으며 한 대 깊숙이 피워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담배를 배우지 않았다. 아무리 보기에 멋있다고 해도 발암물질 덩어리를 몸속에 태워 넣는 건 멍청하고 혐오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피우는 담배 냄새를 맡으며 그 정서를 만끽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피우는 희뿌연 담배 연기에 둘러싸여 코끝에 무거운 추라도 달려 있는 것처럼 고개를 쑥 늘어뜨리고 낮은 목소리로 쑤군거렸다. 한 선배는 다단계에 빠져 돈을 2300만 원이나 날렸다고 했다. 또 한 선배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매일 여섯 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늘 돈이 모자라 발을 동동 굴렀다. 또 다른 선배는 데모를 하다가 전경들에게 맞아서 정강이와 허벅지에 큰 흉터가 생겼다며 벌컥벌컥 분통을 터트렸다. 그중에는 스물두 살짜리 여자 친구가 임신하게 되어 덜컥 결혼해버리고는 대학원 진학도 포기하고 취직자리를 알아보느라 녹초가 된 스물일곱 살의 선배도 있었다. 그 선배의 여자 친구는 임신한 지 6개월이 다 될 때까지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조차 몰랐었다고 한다. 만약 그녀가 임신 사실을 몇 개월만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하긴, 그 뒤에는 또 다른 사정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 이 선배에게 했던 우스갯소리처럼 말이다.
“야, 제수씨가 너 코 꿰려고 일부러 숨겼던 거 아니야?”
자신이 뿜어낸 담배 연기보다 더 창백한 얼굴로 그 선배는 히죽 웃었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끝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선배를 잡아두기 위해 일부러 아이를 가졌던 건 아닐까? 혹은,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면, 그 아이는 정말 선배의 아이일까? 아니, 혹시 선배는 이미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친자 확인을 마친 게 아닐까? 누가 알겠는가? 삼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어째서인지 나는 이런 구질구질한 이야기들이 좋았다. 그리고 당장 눈앞에 당면한 고통에 매달려 고뇌하고 한숨 짓는 사람들의 초상이 좋았다. 그것은 아마도 내 자신이 그때까지 한 번도 속된 문제를 놓고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내 손안에 쥐어보고 더 꽉 쥐어보면서 그로 인해 상처 입고 고통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내 자신이 희미하게 흐느적거리는 관념적인 인간에 불과한 것 같아 무참해지곤 했다. 고전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특히 '카라마조프의 형제'의 세 형제들이 생각나는데) 관념 속에서 태어나, 관념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관념 속에서 죽을 것만 같았다.
반면 선배들의 이야기는 경박하긴 했지만 그 바탕에는 결코 농담으로 헤실헤실 웃어넘길 수 없는 선택과 책임의 냉엄한 무게가 짓누르고 있었다. 피할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미룰 수도, 더 이상 봐주는 법도 없었다. 기민하고 철저한 체계가 촘촘히 뻗어 있어서 그 안으로 한 발자국 내딛기만 하면 줄줄이 연결되어 있는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감당해내야만 했다. 그것은 여자 친구의 뱃속에 생겨버린 아이처럼 도저히 발뺌할 수 없는 것이었고, 흔히 말하듯이 가히 인생의 무게라고 할만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뻔해 보이는 자신의 길을 되도록 겸손하게 걸어가도록 고무되는 것이다.
분명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일설에 의하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라고 했다. 나는 절대로 비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순교자의 삶을 택하는 것보다 범인(凡人)의 삶을 택하는 것이 더 힘들고 용기 있는 결단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늘 내 머릿속을 떠돌았다. 애써 특별해지고자 하지 않는 것, 딱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굳이 거창한 인생의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답의 꽁무니를 좇지 않는 것…… 이것이 진정한 용기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누군가는 이것을 낙오자들의 변명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자고로 스스로에게 속고 속아주는 복잡한 거래 속에서 성장해온 우리가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과 자신이 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과연 순교자와 범인 중에서 진실을 견디지 못했던 쪽은 누구란 말인가? 선배들은 웃음을 터트리는 와중에도 자신들이 초래한 그 까마득한 결과의 무게를 지탱하느라 어느새 딴 생각에 빠져들곤 하는 것 같았다.
그때 선배들과 함께했던 술자리 중 몇몇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한번은 규혁 선배의 전화를 받고 나갔을 때였다. 그해에 군대에서 제대하고 3학년으로 복학한 규혁 선배는 그 전에도 두어 번 나를 술자리로 불러낸 적이 있었다. 규혁 선배로 말하자면 딱히 묘사해내기 곤란할 정도로 특색 없는 외모의 남자였다. 성격 또한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 무난했는데, 그렇다고 유머 감각이나 재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디서나 눈에 띄지 않았다. 구태여 특징을 찾자면 고향이 부산인 탓에 서울말을 쓰는 와중에도 부산 사투리가 섞여 나온다는 정도였다. 그래서 이 아무런 특징도 매력도 없는 선배가 여자 후배들 사이에서 은근히 인기가 있다는 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러준 술집에 도착해보니 열 명 남짓 되는 3학년 남녀 선배들이 이미 거나하게 술판을 벌여놓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우리 과 3학년 커플의 100일 기념 축하 파티였다. 내가 들어선 것은 촛불을 끈다, 케이크를 자른다, 키스를 하라고 성화를 하는 등 희희낙락한 분위기가 한참 고조되던 때였다. 그 와중에 내가 불쑥 인사를 하자 선배들 모두 의아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3학년 선배들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친구들만 모인 자리였고 아무도 내가 온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규혁 선배가 즉흥적으로 나를 불러냈던 것이다. 나는 잠시만 앉아 있다가 곧바로 돌아가려 했지만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에 맥주 한잔을 마시고 나자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규혁 선배 옆에 앉아 흥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내가 규혁 선배의 고민 타령에 물색 모르고 장단을 맞추었을 때였다. 이미 술에 취해 있던 선배는 내가 자리에 앉아 채 몇 잔을 마시기도 전에 벼르고 있던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았다. 이로써 그가 왜 나를 굳이 어울리지도 않는 자리에 불러냈는지 명확해진 셈이었다. 신세 한탄을 늘어놓을 만한 만만한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때 규혁 선배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대충 선배와 결혼까지 약속했던 여자 친구가 선배를 버리고 선배의 사촌 형과 교제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이 드라마틱한 사정을 (나는 언제나 이런 유의 사건에 솔깃한 편이었는데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건 내 잘못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다 말해버리고 싶은 반면 너무 구질구질해 보이지 않을까 염려하는 선배 자신의 어설픈 기분 탓에 이야기가 두서없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 쪽에서 꼬치꼬치 캐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얘기는 끊임없이 제자리를 맴돌았다. 결국 지루해진 나는 선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네에, 그러네요. 뭐, 앞으로 좋은 날이 있겠죠” 하고 얼른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헤헤 웃으면서 선배를 돌아보다가 나는 소스라쳐서 입을 다물었다. 이마를 붉게 물들인 규혁 선배가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는 몇 번 입을 씰룩거리더니 벌컥 고함을 질렀다.
“좋은 날? 대체 좋은 날이라는 게 뭔데? 좋은 날이 뭐 어쨌다는 거야. 앞으로 좋은 날이 온다고? 웃기고 있네. 이 지랄 같은 세상을 잘 사는 방법이 뭔지 내가 가르쳐줄까? 절대로 멀리 내다보지 않는 거야. 10년 후? 20년 후? 하,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 그런 걸 꼽아보다가는 자살해버리기 딱 좋지. 자살하는 애들이 뭐 당장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아?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다가 그만 현기증이 나서 뒤져버리는 거야. 알겠어? 정말 잘 사는 건, 그냥 하루하루 사는 거야. 자기가 서 있는 손바닥만 한 자리만 내려다보면서 사는 거라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10년이 가고 20년이 가고, 그렇게 가는 거지. 그렇게 별 볼일 없이 한 평생이 가는 거야. 그게 다라고.”
규혁 선배가 연설을 마치자마자 어느 틈엔가 조용히 듣고 있던 다른 선배들에게서 요란한 웃음과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지랄한다’, ‘철학자 나셨다’, ‘후배 앞에서 똥폼 잡는다’ 등의 비아냥거림과 함께 먹다 남은 귤껍질이며 땅콩들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그 소란에 규혁 선배는 갑작스럽게 정신이 들었는지 검붉게 물든 목덜미를 움츠리며 빈정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마디도 없이 술만 들이키더니 아무도 모르게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가고 말았다. 뒷얘기를 덧붙이자면, 며칠 뒤 규혁 선배는 나에게 꽤나 정중하게 사과함으로써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고, 그 후로 다시는 나를 술자리에 불러내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