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한 지 두 달쯤 지나자 연이어지던 선배들의 술자리 호출도 시들해졌다. 동시에 어릴 때부터 동경해왔던 대학 생활 역시 슬슬 시시한 일상이 되어갔다. 특히 첫 중간고사를 치르고 난 후에는 그나마 남아 있던 긴장감마저 말끔히 사라지고 말았다. 다시 하루하루 눈앞에 닥치는 날들이 시작되었고, 조바심이, 밑바닥에 침전물처럼 쌓여 있던 눅눅한 조바심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앞에서 잠깐 말했듯이 나는 동기들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한동안 과 내에서 서먹하게 지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럭저럭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도 한두 명씩 생기게 되었다. 그건 서로가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점차 내가 대학에 들어오기 전의 성격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나는 예전의 말수 적고, 말끝을 내리고, 조용히 웃는 나로 돌아가 있었다. 역시 이 모양인 건가 싶어 실망하기도 했지만 새롭게 변해보겠다는 결심 역시 흐지부지되었기 때문에 딱히 괴로운 기분은 들지 않았다. 더구나 동기들도 그런 내가 더 마음에 드는 모양이어서 더 이상 불만은 없었다.
동기들 몇몇과 제법 친분이 생겼다고는 해도 학기가 다 지나도록 말 한 번 제대로 붙여보지 못한 동기들도 꽤 많았다. 그런 동기들과는 그저 지나가다 마주치면 인사나 나눌 뿐이지 같이 담소를 나누게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상태를 청산할 계기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어느새 그들과는 그런 관계로 굳어진 채 몇 달이고 무리 없이 지내고 있었다. 희진이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미모여서 나 역시 평소에 눈여겨봤었고 또 술자리에서 몇몇 남자 선배들이 그녀에 대해 물어 온 적도 있었지만 나와 이렇다 할 친분은 없는 사이였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희진이와 딱 마주쳤을 때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아는 사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녀를 그것도 학교 밖에서 만나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사실이라고는 그녀의 이름이 ’이희진’이라는 것과 그녀가 1년 재수를 해서 나보다 한 살 많다는 점뿐이었다.
“어, 언니, 안녕하세요. 집에 가요?”
“아, 응. 오늘 강의가 하나 취소됐거든.”
그녀는 며칠 전 교내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눌 때만 해도 내게 존댓말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반말로 내 인사를 받고 있었다.
“아, 네. 저도 집에 가는 길이에요.”
“그래? 나는 합정동이 집인데, 너는 어디야?”
“아, 정말요? 저는 그 옆에 망원동에 살아요.”
알고 보니 우리는 동네는 달랐지만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었다. 버스로 두 정거장 정도의 거리였다.
“서로 가까운 데 살고 있었네요. 원래부터 거기 사셨어요?”
“아니, 원래 대전이 집인데 올라와서 원룸에서 자취하고 있어.”
목적지가 같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낭패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거의 30분 동안이나 이렇게 서먹한 대화를 나누며 나란히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몸이 근질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핑계를 대고 중간에 전철에서 내리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그녀와 내가 어딘가 서로 결이 맞지 않다고 느껴졌다. 심지어 내심으로는 이미 나를 싫어하고 있거나 곧 나를 싫어하게 될 거라는 예감까지 들었다. 이유 없이 내가 누군가를 싫어하고 또 이유 없이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는 일에 나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아, 근데 말이야, 같은 신입생인데, 겨우 한 살 많다고 동기한테 언니라고 불리려니까 좀 그렇다. 나이 많은 게 자랑도 아닌데 말이야. 우리 그냥 서로 반말 하면 어떨까? 언니라는 말도 관두고, 그냥 희진이라고 불러, 응?”
희진이는 다짜고짜 똑똑 떨어지는 목소리로 내게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도 딱히 반갑지 않았다. 우리 동기들 중에는 재수, 삼수를 한 사람들부터 직장 생활을 하다 온 사람들도 있어서 서로 존칭을 쓰는 게 편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런데도 구태여 말을 놓자고 하니 오히려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거기다 다른 동기들과의 소위 족보도 꼬이고 말 터였다. 하지만 내가 달리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럴까요, 그럼?”
“그래, 그래. 편하게 하자. 이제부터 반말 해.”
“그럼, 알았어.”
“봐. 이러니까 금방 더 친해진 것 같잖아. 솔직히 한두 살 차이에 깍듯이 존댓말 쓰는 건 좀 촌스럽지 않아? 난 그것도 구시대의 잔재라고 생각해. 우리도 외국처럼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 반말을 하면 좋을 텐데 말이야. 호칭도 누구한테나 ‘유’라고 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서로 호칭을 정리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어.”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바보처럼 웃었다. 다만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양놈들은 지 조부모 이름도 함부로 부르는 상놈들이라는 국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서구의 미개함에 감탄한 적은 있었다.
“너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평소에 학교생활 참 재미있게 한다고 생각했었어. 선배들하고도 친한 것 같고.”
“별로 그렇지도 않아. 지금은 선배들하고 잘 만나지도 않고. 이제는 대학 생활도 좀 지루해.”
“그래? 나는 네가 누구보다 즐겁게 지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말하며 희진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나는 분명 그녀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을 것이다. 희진이는 아름다웠다. 실제 눈앞의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낀 건 희진이 외에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
누구나 인정할 만큼 희진이는 미모가 뛰어났다. 얼굴선이 갸름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면서도 입이 큰 편이어서 답답해 보이지 않는 요즘 취향의 미인이었다. 거기다 날씬한 몸매에 곧은 등은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그 전철 안에서도 나는 그녀를 눈여겨보는 수많은 시선들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지만 그 날 희진이는 숱이 많은 파마머리를 어깨까지 늘어트리고 초여름 날씨에 어울리는 민트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가느다란 은색 체인에 매달린 큐빅 귀걸이가 원을 그리며 좌우로 흔들려서 자꾸 내 주의를 끌었다. (내가 그녀의 옷차림이며 머리 모양 등을 이토록 세세하게 기억할 수 있는 건 그 귀걸이 덕택이다.) 목에는 장신구가 없었고 대신 왼쪽 옆머리 위로 살짝 올려 꽂은 나비 모양의 핀이 여성스러운 느낌을 더해주었다. 화장도 옷차림만큼 밝고 깔끔했다. 하얀 얼굴에 발그레한 볼이 보기 좋았다. 눈썹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눈두덩이와 입술에서는 은은한 분홍빛 광택이 났다. 보통 여자 신입생들은 화장이 서툴러서 무대 분장처럼 보이기 일쑤였지만 희진이의 화장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에 비해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화장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당시 신입생들 중에는 아직 화장을 시작하지 않은 여학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도 화장에 대한 얘기를 자주 입에 올렸고 집에서 혼자 연습해보기도 했다. 어쨌든 조만간 하긴 해야 했다. 화장은 권리이지만 의무에 가까운 권리였으니까. 어떤 교수는 화장하는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평등을 요구하는 건 위선적인 행위라고 대놓고 지적했지만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본래 평등이란 선택적인 요구가 아닌가.
희진이의 반반한 외모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속설과는 다르게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예쁜 얼굴의 여자를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 당시 희진이 주변에는 의외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 희진이에게 반한 남자 선배들도 희진이에게 접근하기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 희진이가 딱히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동기들 사이에서는 일찌감치 그녀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가 내려져 있었는데, 대체로 시건방지다든가 잘난체한다는 유의 것들이었다. 조금 부풀려지긴 했지만 솔직히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문제는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자신을 똑똑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외모의 우월함이 온전히 내면의 우월함에서 비롯되었다는 듯이 말이다. 희진이 역시 말 그대로 ‘모르는 것만 빼고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학교 정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희진이를 한 늙은 교수가 나무란 일이 있었다. 교수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길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워대는 게 무례하다는 이유였다. 거기에 덧붙여서 교수는 ‘여학생이 이런 한길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건 보기 좋지 않다’고 거드름을 피웠다. 분개한 희진이는 교수를 향해 (끝까지 손에 담배를 들고서) 교육자로서 소양이 없다느니, 심각한 여성 차별이라느니, 유교적인 악습을 뜯어 고쳐야 한다느니 하며 학교 측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날카롭게 대들었다. 금세 그들 주위로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교수는 쩔쩔매면서 변명을 늘어놓다가 결국 희진이에게 사과하고는 불편한 다리를 더 심하게 절면서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말하자면 희진이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리고 그 승리는 분명 정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얘기가 학생들 사이에 퍼졌나갔을 때, 비난을 받은 사람은 정작 교수가 아니라 희진이었다. 그 늙은 교수는 그저 자기 시대의 느긋한 생각에 빠져 몇 마디 말로 조금 위엄을 부려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평소 점잖기만 한 그의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도 적당히 참아 넘겨주고 있었던 것인데, 무엇이 옳은지 너무나 ‘똑똑하게’ 알고 있었던 희진이는 여러 학생들 앞에서 그 늙은 교수를 단단히 망신 주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희진이는 자신을 향한 ‘머리에 피도 안 마른’과 같은 악담이 퍽이나 억울했을 테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노인에 대한 연민이 사회정의 실현이나 심지어 미인에 대한 호감보다도 앞선다는 것을 이해했어야만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