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굳이 이 일화를 걸고넘어진 이유는, 전철에서 그녀와 얘기를 나누던 중에 나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교수와는 달리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니, 딱히 화젯거리를 찾지 못한 내가 얼마 전에 끝난 중간고사 얘기를 꺼냈던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시험이 어려웠는지 쉬웠는지, 과제는 빠짐없이 냈는지 등의 뻔하고도 무난한 의견을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희진이는 내 얘기를 듣자마자 불쑥 내 과제에 대한 의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번에 네가 제출한 과제 말이야, 제약 회사 로고 디자인했던 거. 얼핏 뒤에서 봤는데, 아이디어는 좋은데 표현이 영 산만하더라. 완성도도 떨어지고. 그런 건 세련된 게 아냐. (이 부분에서 그녀가 너무 정색을 하고 말해서 나는 장난처럼 웃으며 분위기를 바꿀 수도 없었다.) 넌 디자인에 대해서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어.”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디자인에 꽤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참이었다. 담당 교수도 발상이 신선하다면서 한껏 치켜세워준 덕에 나에게도 조금쯤 재능이 있는 모양이라고 들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내 쪽에서 의견을 묻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불시에 평을 내린다는 건 무례하고 주제넘은 일이 아닌가? 나는 어색하게 웃어넘기는 도리밖에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다시는 이 애와 상종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목에 단단히 힘을 주었다.
그러나 사람 일이란 우습게도, 몇 달이 지날 쯤엔 희진이와 나는 명실 공히 단짝이 되어 있었다. 내가 강의 시간에 오지 않으면 희진이에게 그 이유를 묻는 걸 당연하다고 여길 만큼 말이다. 어째서 희진이와 내가 그토록 가까워졌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무언가 생략이 되어 있는 듯한데, 그것이 단지 내 기억인지 아니면 희진이와 내 관계의 단계 자체인지 구별이 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설사 희진이와 내가 아무 이유 없이 가까워졌다고 해도 그리 유별난 일은 아니다. 관계란 때때로 심리적이기 보다는 물리적이어서 자기도 모르게 휩쓸려 들어가거나 밀려나곤 하니까. 그래도 굳이 이유를 따져보자면 희진이도 나도 학교에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는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나이 때에 친구가 없다는 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어느새 서로의 빈자리를 메꾸어 나간다. (그 관계가 10년 이상 이어지리라고는 그 당시에는 짐작조차 못했지만.)
그런 희진이와 내 사이가 애매해져버린 건 그쯤, 그러니까 2학기 중반을 지나던 10월 말쯤부터였다. 하기야 고작 키스 두 번에 사이가 애매해졌다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액면 그대로 단순히 두 번의 키스가 있었을 뿐이고 호들갑 떨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무언가 난처해진 것만은 사실이었다.
첫 번째 키스는 정말이지 우연히, 아니, 나는 우연이란 단어를 함부로 쓰지는 않겠다, 그저 장난처럼 이루어졌다. 그때 희진이와 나는 희진이 자취방에서 술을 마시던 중이었다. 맥주와 싸구려 막걸리를 번갈아 마시고 취해버린 우리는 농도 짙은 음담패설을 지껄이며 키득거리다가 ‘질외 사정을 하면 임신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두고 시비가 붙어버렸다. 희진이는 질외 사정을 하더라도 임신이 될 수 있다는 쪽이었고 나는 질외 사정을 했기 때문에 임신이 될 수 없다는 쪽이었다. 나는 내 말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는데, ‘질외 사정’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답이 나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논쟁을 벌이다가 열이 오른 우리는 앞다투어 서로 내기를 걸었다. ‘스트립쇼’를 요구하는 원색적인 벌칙을 내세운 건 내 쪽이 먼저였다. 그러자 발끈한 희진이가 자신이 이기면 내게 키스를 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곧바로 컴퓨터로 달려가 인터넷에서 답을 찾아본 결과는 놀랍게도 (나는 정말 깜짝 놀랐는데) 희진이가 옳았다. 확률은 낮아지지만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산부인과 홈페이지에는 질외 사정으로 임신이 됐다고 아우성 치는 글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내기에 졌다는 실망보다도 하마터면 나 역시 큰일 날 뻔했다는 안도를 느끼는 사이 희진이가 와락 나에게 달려들었다. 희진이도 나중에 밝혔지만, 그것은 처음에는 희롱 섞인 시늉에 불과했다. 기껏해야 볼쯤에다가 가볍게 뽀뽀나 해버릴 심산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취해 있었고, 음담패설과 고집스러운 소견들을 함부로 떠벌린 탓에 경박한 흥분에 들떠 있었다. 장난처럼 엎치락뒤치락하던 희진이가 자신의 입술을 내 입술에 대고 눌렀을 때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약 2초 정도, 그게 다였다. 당시에도, 그리고 술이 깬 다음 날에도 서로 별반 어색함이 없었을 정도로 그 키스는 가벼운 것이었다. 그것이 나의 첫 키스였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것은 여자 친구들끼리 장난으로 웃어넘길 만한 정도의 간지러운 해프닝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키스는 그보다는 좀 더 심란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때는 2학기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희진이와 나는 학교에 남아 밀린 과제를 하다가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자정을 넘긴 심야좌석버스에는 세, 네 명의 승객들만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고, 우리는 사람이 없는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희진이는 피곤했는지 앉자마자 꾸벅꾸벅 졸더니 곧 의자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버스 안은 조용했다. 마치 깨어있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적막함이 오히려 내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나는 잠이 든 그녀의 얼굴을 문득 몇 분 동안이나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특별히 무슨 의도나 흥미가 있었던 건 아니고, 단순히 무방비한 사람을 훔쳐보는 게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나도 슬쩍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버스가 흔들리는 바람에 나는 부스스 눈을 떴다. 정신을 차려보니 잠들어 있는 희진이의 기울어진 머리가 바로 내 턱 밑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선 과일 향인지 꽃향기인지 모를 달큼하지만 진부한 화장품 향내가 풍겨 오고 있었다. 나는 빼꼼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곤하게 잠이 든 채 무방비로 반쯤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에 나는 실소를 삼켰다. 그리고 동시에 예쁜 여자는 이런 모습까지도 예쁘다는 사실에 내심 감탄했다. 그런데 흘러내려온 희진이의 옆 머리카락 한 움큼이 벌어진 입안으로 들어갈 지경인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무심결에 손을 올려 그녀의 얼굴 위로 드리워진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겨주었다. 그건 내 자신의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행동만큼이나 여자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희진이가 눈을 뜨는 바람에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거기에는 아무런 까닭도 준비도 없었다. 아무런 의도도 없었다는 것 역시 밝혀두어야겠다. 희진이와 나는 잠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멍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희진이의 검은 눈동자가 바로 눈앞에 있었고, 누군가의 눈을 그토록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건 나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니, 실은 나는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두 개의 시선이 허공에서 접착제로 붙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키스를 나누었다.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장난 같은 키스가 아니었다. 졸음에 취하듯, 피곤에 취하듯, 우리는 서로의 입술과 혀를 천천히 빨면서 몇 번이고 음미했다. 사람의 입속이 그토록 깊다는 것에 나는 내심 놀랐다.
키스가 끝나고 나는 곧바로 버스에서 내려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당장의 어색함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날 밤 나는 그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도 않은 채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졌고, 다음 날 학교에서도 스스로 놀랄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희진이와 대면했다. 무언가 좀 어긋났다는 걸 느끼고 있었지만 둘 중 누구도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막상 그냥 그렇게 묻어놓으니 나중에는 그것이 정말 있었던 일인지 긴가민가할 지경이 되었다. 혼자라면 잊기 힘든 일도 공범이 있다면 오히려 잊기 쉬운 모양이다. 희진이가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 역시 그 일을 세련되게 웃어넘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 어느새 10월의 가을 축제가 되었다. 처음 맞는 대학 축제라 제법 기대를 했지만 고등학교 축제와 별다를 바 없는 초라함에 나는 곧 실망하고 말았다. 두더지 잡기나 물 풍선 던지기, 링 던지기, 단체 줄넘기처럼 유치한 게임 판을 몇 개 벌여놓았고, 각종 동아리들의 전시 및 공연이 두서없이 진행되었다. 그밖에는 교내 학생들로 조직된 여성 단체, 인권 단체, 환경 단체, 운동권 학생들의 홍보 활동으로 채워졌고, 한쪽 구석에서는 외부에서 온 에이즈 캠페인 단체와 아프리카 구호 단체들이 책자를 나누어 주고 후원금과 서명을 받기도 했다. 나는 축제 첫날에만 잠깐 둘러보고는 둘째 날과 셋째 날은 그냥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셋째 날 해가 진 뒤에야 학교로 향했다. 우리 과 전체 단합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가을 축제 마지막 날의 단합 대회는 우리 과의 일종의 전통으로, 학부생들은 물론이고 대학원 선배들과 일부 졸업한 선배들까지 참석하는 대대적인 행사였다. 그래서 큰 민속주점 하나를 통째로 빌렸는데도 족히 150명이 넘는 학생들이 서로 어깨를 붙이고 비좁게 앉아야만 모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원래 정각 저녁 8시에 행사를 시작하려 했지만 사람들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략 8시 40분이 되어서야 판이 벌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생회장인 경식 선배가 앞으로 나서더니 짐짓 격식을 차리면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학생회장 강경식입니다. 자, 신입생 환영회 이후에 다 같이 모일 기회가 없어서 선후배 사이가 소원해지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함께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제가 누누이 얘기하지만 우린 한 가족 아닙니까?”
그때 누군가 “형, 그럼 씨씨들은 근친상간이에요?”라고 외치는 바람에 야유와 진저리치는 웃음이 실내에 가득 퍼졌다.
“흠, 부모님도 다르고, 고향도 다르고, 앞으로의 진로도 다르지만, 그래도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가족처럼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서로 도와주고, 안 좋은 일은 위로해주고, 좋은 일은 같이 기뻐해야 합니다. 자, 오늘은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처럼 좋은 날입니다. 마음껏 먹고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졸업하신 대선배님들도 많이 와주셨으니까 특히 1학년들은 인사 좀 잘 드리고, 알았지? 선배님들도 후배들 좀 예쁘게 봐주시고요. 아, 그리고 여기서 하는 1차까지는 빠지는 사람 없이 무조건 끝까지 소화해주시고, 11시 이후에 자리를 옮기는 2차부터는 개인의 선택에 맡기겠습니다. 자 자, 그럼 각설하고, 앞에 있는 잔들 잡으시고, 건배합시다. 다 함께, 열정 산디과를 위하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