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는 새벽 3시가 조금 넘어서야 끝이 났다. 너 나 할 것 없이 상당히 취해버린 우리들은 비틀거리며 호프집을 나왔다. 유흥가에는 여전히 왕래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곧 이 거리도 인적이 뜸해지리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김빠진 부산함일 뿐이었다. 취한 일행을 잡아끌며 한껏 목소리를 높이는 행인들의 얼굴에도 묵은 피로와 싫증이 역력했다.
우리 과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제 조금의 미련도 없다는 듯 서둘러 허공에다 인사를 나누고는 금세 행인들 틈으로 사라졌다. 희진이와 나도 그만 택시를 타기 위해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창준 선배가 손을 휘휘 저으며 우리 앞을 막아섰다.
“너희들 말이야, 같은 동네에 산다면서? 어디라고 했지?”
“합정동인데요.”
내가 대꾸했다. 정호 선배가 창준 선배 옆에 바짝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여기서 꽤 머네. 흠, 새벽에 여자애들끼리 보내기도 좀 그러니까 우리가 집까지 바래다줄게.”
희진이가 미간을 찡그리며 곁눈질로 내 쪽을 바라보았다. 곤란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내가 잠자코 있자 희진이가 나서서 사양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택시 타고 가니까 위험할 거 없어요.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민주하고 둘인데요.”
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서 희진이를 거들었다.
“예, 맞아요. 저희끼리 갈게요. 선배들도 피곤하실 텐데.”
하지만 창준 선배와 정호 선배는 – 주로 창준 선배가 - 요즘 새벽 택시가 얼마나 위험한 줄 아냐, 바로 며칠 전에도 강변역에서 어떤 여자가 택시를 탄 후 실종됐다더라 하고 짐짓 엄포를 놓으며 고집을 피웠다. 잠시 선배들과 희진이 사이에 “바래다주겠다”, “괜찮다” 실랑이가 벌어졌다. 하지만 선배들이 끝까지 우기는데다가 걱정이 되어서 바래다주겠다는데 계속 정색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희진이도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우리 네 사람은 택시를 잡아타고 합정동으로 향했다. 정호 선배가 앞 조수석에 앉았고 창준 선배, 나, 희진이가 뒷좌석에 앉았다. 창준 선배와 희진이 중간에 자리 잡은 나는 옆에 바짝 붙어 있는 창준 선배가 신경이 쓰여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술 냄새가 날까봐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고, 희진이도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 창준 선배와 정호 선배는 아까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요란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한 여자 선배가 술에 취해 옆자리에 앉은 사람 등에 구토를 해버렸던 일이나 1학년 남자 동기 하나가 바지 지퍼가 열린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던 일 등을 두 사람은 손짓 발짓까지 해가며 늘어놓았는데, 그 와중에 창준 선배는 본의 아니게 두 번인가 내 허벅지를 만졌다. 아니, 만졌다기보다는 손끝이 스쳤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몸에 바늘 끝이라도 닿은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새벽길을 달린 택시는 금세 합정동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대로 택시를 타고 돌아갈 줄 알았던 창준 선배와 정호 선배는 구태여 집 앞까지 바래다주겠다며 우리를 따라나섰다. 나도 더 이상은 내키지가 않았다.
“저희는 괜찮아요. 어차피 희진이하고 저도 여기서부터는 방향이 달라서 따로 가야 돼요. 그러니까 그냥 이 택시 타고 가세요.”
“에이, 그러니까 더 집 앞까지 바래다줘야지.”
“아니에요. 집이 바로 저기 앞이에요. 이제 그만 가셔도 된다니까요.”
마침내 화가 치밀어 오른 희진이가 퉁명스럽게 소리쳤지만 창준 선배는 태연하게 히죽거렸다.
“이 새벽에 이렇게 예쁜 여자 후배들을 어떻게 혼자 보내냐. 집에 딱 들어가는 걸 봐야 안심이 되지. 자, 그럼 이렇게 하자. 다 같이 몰려다닐 필요 없이, 내가 희진이를 바래다줄 테니까 정호가 민주를 바래다주면 되겠다.”
나는 창준 선배가 희진이를 선택하자 속이 뜨끔했다. 그저 둘 중 아무나 뽑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정말 아무나 뽑았을 때조차, 진짜로 ‘아무나’ 선택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속일 수 없는 저울은 언제나 분명하게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이었다. 거기에는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냉엄한 기준이 있어서 수치를 원한다면 숫자로 점수를 매기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이라는 표현은 내 괜한 자존심에 불과하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남자였어도 희진이를 골랐을 것이다.)
실랑이가 지긋지긋해진 희진이는 결국 창준 선배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일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인사를 하고 골목길로 걸어가는 창준 선배와 희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만약 정호 선배가 아니었다면 참지 못하고 몰래 그들의 뒤를 밟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정호 선배와 함께 우리 집 쪽으로 걸음을 뗄 수밖에 없었다.
“선배는 집이 어디예요?”
뭐라도 할 말을 찾기 위해 내가 물었다.
“나? 나는 도봉구.”
“예? 여기하고는 반대 방향이잖아요. 그럼 이 새벽에 집에 어떻게 가요? 택시비도 많이 나올 텐데.”
“창준이하고 근처에서 술이나 한잔 더 하다가 버스 다니기 시작하면 타고 가면 되지 뭐.”
“그럼, 창준 선배 집은 어디인데요?”
“창준이? 걔는 인천이야.”
나는 이런 식으로 창준 선배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창준 선배는 인천 구월동에서 살고 있으며, 여동생이 한 명 있고, 만두를 좋아하고, 2년 전에 군대에서 맹장 수술을 했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창준이 자식, 소문처럼 그렇게 나쁜 놈만은 아냐.”
정호 선배는 뜬금없이 이런 말도 했다.
“두 분은 참 친하신 것 같아요.”
나 역시 떠오르는 대로 말을 받았다.
“누구? 나하고 창준이?”
“네.”
“그런가. 하긴, 친하다면 친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같이 어울려 다닌다고 해서 상대방을 더 잘 알게 되는 것도 아니야. 솔직히 나는 창준이를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어. 워낙 특이한 놈이기도 하지만, 그게 뭐, 여러 가지로. 흠, 혹시 알아? 요새 인천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쇄살인의 범인이 창준이일지. 경찰이 나한테 정색을 하고 물어보면 나도 100퍼센트 아니라고는 말 못할걸.”
정호 선배는 자신의 말이 재미있었는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 역시 웃었지만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어서 어깨를 움츠리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낮에는 멀쩡히 회사원으로 생활하다가 밤만 되면 집을 빠져나와 담벼락 그늘 밑에서 사람을 죽이곤 했던 한 영화 속의 주인공을 떠올렸다. 주인공은 성불구자로 10대의 어린 여자애들만을 노렸는데, 막상 여자의 숨이 끊어지고 나면 시체를 붙들고 눈물을 쏟으며 사과하곤 했다. 하지만 며칠 후에는 또 여자를 죽이기 위해 밤거리를 헤매는 것이다. 사과가 진심이 아니었던 걸까. 아니면 사과는 진심이었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었던 걸까. 그도 아니면 그 역시 그저 자신만의 유희이거나 의식에 불과했을까. 그 의문은 끝내 풀리지 않고 영화는 흐지부지 끝이 났다.
“뉴스에서 봤어요. 그 연쇄살인범이 이틀 전에도 신문 배달하던 고등학생을 죽였다면서요?”
“그랬다더라. 그럼 이제 여섯 명째지? 일곱 명째던가?”
“왜 범인은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들을 계속 죽이는 걸까요?”
“글쎄.”
정호 선배가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일종의, 자살행위가 아닐까?”
“자살이요?”
“죽고는 싶은데, 막상 죽고 싶지는 않은 거야.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죽여서 그것으로 자신이 죽는 듯한, 말하자면 대리 만족을 느끼는 거지.”
선배는 길쭉하고 가느다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길게 연기를 뿜어냈다.
“그런데 왜 계속해서 죽이는 건데요?”
“죽이고 돌아서면 자신은 여전히 자기 자신이고, 여전히 살아 있고, 아무것도 변한 게 없으니까. 그러니 다시 한 번 더 죽기 위해 다른 사람을 또 죽일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어?”
정호 선배는 자신의 생각이 마음에 들었는지 붉게 타오르는 담뱃재를 힘차게 떨어내며 어깨를 으쓱했다. 확실히 그의 이론은 그럴싸해 보였다. 하지만 너무 문학적이랄까, 정신분석학적이랄까, 은유적이랄까, 하여간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나라면 죽고 싶은 마음에서 다른 사람을 죽이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너무나 많은 노동과 에너지와 긴장을 요하는 일이어서 죽고 싶은 사람보다는 살고 싶은 사람에게 적당한 일이었다.
만약 내가 살인을 한다면, 결코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닌, 내가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일 것이다. 무고하고 나약한 사람을, 선하고 덧없는 사람을, 아무 이유도 없이 간편하게 죽여 버릴 수 있는지 스스로 확인하고 싶어서 말이다. 그리고는 또 죽일 수 있는지, 한 번 더, 그리고 두 번 더, 그리고 세 번 더 죽일 수 있는지, 과연 몇 명이나 그리고 언제까지 죽일 수 있는지, 그러다 보면 끝까지 가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정말 죽여 보지 않으면 정말 죽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어쩌면 자살 역시 같은 이유 때문에 자행되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정말 죽을 수 있는지, 정말 자기 자신을 죽일 수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정말 자살해 보지 않으면 정말 자살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