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곡도 Aug 06. 2023

[연극] 3일간의 비






연극 :  3일간의 비

공연장소 : 이혜랑예술극장

공연기간 : 2023년 7월 25일 ~ 2023년 10월 1일

관람시간 : 2023년 8월 5일 오후 3시




     처음부터 나는 이 연극이 그리 내키지 않았다. 제목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내 취향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감상적인 감상을 감상할 것 같은 감상적인 예감. 그러나 달리 보고 싶은 연극이 없었던 데다가 어쨌거나 멜로는 아닌 것 같아서 주저하며 예매를 했다. 

    처음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무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소극장에서 이 정도로 공들인 무대는 처음이었다. 사실적인 거리 표현, 여러 개의 단차를 이용한 입체적인 공간 분할, 디자인적이고 깔끔한 구성, 이 정도 정성이라면 어떤 취향이든 뛰어넘는 법이다. 그 기세에 밀려 나는 사뭇 겸손한 마음가짐이 되었고,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다소곳이 연극을 관람했다. 

    자,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앞에서 내가 무대에 '공을 들였다'는 표현을 했는데, 그 단어로 이 연극 전체를 규정해도 좋을 것 같다. 무대도, 소품도, 연출도, 연기도 상당히 공을 들인 연극이다. 세상에 공을 들이지 않은 연극이 있겠냐마는, 그 진심을 효과적으로 전시하고 전달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이 연극은 하나하나 꼼꼼하게 신경을 쓰고 정성을 들인 티가 난다. 그게 일면 마음에 와닿기도 한다. 그러나 내 결론은, 다 부질없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평소와 다르게 짤막짤막하게 문단을 나누고 있다. 말이 길게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할 말이 별로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연극이 쏟은 노력이 아깝기 때문이다. 나는 이 연극의 희곡을 지적하기에 앞서서 왜 이 희곡을 택했는지를 묻고 싶다. 도대체 왜? 무엇을 전달하고 싶어서? 대체 이 희곡의 무엇에 끌렸을까? 정말 이 희곡을 이해하긴 한 걸까? 내가 볼 때 이 희곡의 장점은 단 하나뿐이다. 연기자들의 매력과 연기가 돋보일 수 있다는 것. 1인 2역이라는 설정도 그렇지만 다양한 감정을 재치 있는 대사와 함께 섬세하게 구현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연기의 감성적 섬세함의 정도를 거의 극한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이 연극의 모든 게 달려있다. 다시 말하면 그것만이 이 연극을 구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지만, 그리고 원래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라는 확신은 들었지만, 이 희곡이 요구하는, 혹은 이 희곡을 생환시킬 수 있는 만큼 섬세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전혀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는데, 섬세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섬세함'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관점에 문제가 있었다고 할까.  연극은 마치 할리우드식 섬세함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았고, 심지어 나는 관람 도중에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떠올리기까지 했다. 전체적으로 인물 해석이 화려하고 개성이 강하며 과장되어 있는데다가 행여나 지루해지지 않을까 안달하는 강박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이 희곡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창문 유리창을 적시는 비처럼 아득하게 떨어져 내리는 사람들이다. (최소한 의도는 그렇다.)  좀 더 흐릿하게, 좀 더 세심하게, 좀 더 조심스럽게, 무엇보다 좀 더 개인적으로  접근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러나 진짜 문제는 표현이나 실현 방식이 아니다. 바로 이 희곡 자체가 문제다. 나는 다시 물어봐야겠다. 대체 왜 이 희곡을 선택했단 말인가. 이 작가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이 작가가 예전에 혹은 이후에 얼마나 좋은 희곡을 썼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3일간의 비'는 결코 좋은 희곡이 아니며, 결코 쉬운 희곡도 아니다. 좋은 희곡뿐만 아니라 나쁜 희곡도 때로는 좋은 연극을 만들어낸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 희곡은 도대체가 중심도 색깔도 없는 맹탕이다. 감상적이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진부하고 진부하다고 하기에도 너무 맥이 빠져서 그저 흐리멍덩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 연극은 그 흐리멍덩함을 채워내지도, 그 흐리멍덩함을 상쇄하지도, 심지어 그 흐리멍덩함을 표현해내지도 못했다. 그럼 대체 왜 이 연극을 만들었을까. 

    이 희곡은 결국 관계에 대해, 그리고 내면의 감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정작 관계와 감정에 대해서는 손조차 대지 않고 적당히 겉핥기로만 스쳐 지나가버리는 건 왜일까. 무엇보다 이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건 테오와 네드의 관계다. 이 연극 전체가, 두 세대 전체가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3일간의 비가 끝난 후 테오와 네드는 과연 어떤 관계가 되었을까. 재능도 여자도 네드에게 빼앗긴 태오와, 그런 테오와 여전히 평생 파트너로 지냈던 네드 사이에는 어떤 감정들이 오갔단 말인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하고 재미있는 부분인데도 왜 모른 척 딴 얘기만 주야장천 늘어놓고 있는 건지 당채 모를 일이다. 이것을 그저 열린 방식이라고, 해석의 여지라고, 감성의 영역이라고 눙치려는 것인가?   

    이 희곡에서 유일하게 건질 수 있는 거라면 '타인과의 단절'에 대한 지각인 듯 싶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부모 자식 간에 조차 점철되는 그 수많은 오해와 몰이해 말이다. 누구나 공유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각자의 삶과 내면과 기억과 순간과 비밀이 있고, 그것은 결국 전해지지도 기록되지도 않은 채 영영 잊혀져버리고 만다. 모든 일기장은 암호다. 모든 삶은 암호다. 모든 순간은 암호다. 결코 풀리지 않는. 뭐 이 정도?   






매거진의 이전글 [연극] 아이히만, 암흑이 시작하는 곳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