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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Sep 05. 2023

[연극] 이 불안한 집





연극 :  이 불안한 집  This Restless House

공연장소 : 명동예술극장

공연기간 : 2023년 8월 31일 ~ 2023년 9월 24일

관람시간 : 2023년 9월 3일 오후 3시




    나에게는 한 가지 못된 성질이 있다.  미리 분명하게 말해두건 데 이건 반어법이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매번 후회를 하지만, 막상 그 상황에 닥치면 또다시 재발하고 만다. 수준 미달의 연극을 보면 마치 개인적으로 모욕을 받은 것처럼, 대놓고 바보 취급을 당한 것처럼, 교묘하게 사기라도 당한 것처럼 화가 치밀어 오른다. 너무 화가 나서 관객석에 똑바로 앉아있지도 못할 지경이다. 아무리 그 못된 마음을 고쳐먹으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이것은 도덕적 딜레마이기도 하다. 이게 정말 개인적인 모욕이 아니라는 말인가. 정말 대놓고 바보 취급을 당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정말 교묘한 사기가 아니란 말인가. 예전에는 관객들이 무대를 향해 마음껏 야유를 던진 적도 있었다. 형편없는 연극에는 형편없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왜 안된단 말인가. 돈과 시간을 들여 연극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정도의 권리도 없다는 말인가. 관객은 박수만 치도록 조작된, 머리도 가슴도 텅 빈 기계장치란 말인가. 그러나 이제 오늘날의 관객인 우리는 공연 중에 야유를 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지 못한다. 우리는 더 무기력해졌거나 더 교양있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박수를 쳐야 한다. 뒤돌아서서 인터넷에서 온갖 야유를 퍼붓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한창 연극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 어두운 관객석에서 홀로 벌떡 일어나 있는 힘껏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만 집어치우라고. 나는 6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5시간 동안이나 관객석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런데 왜 나는 나 자신을 탓하며 숨을 죽이고 있어야 하는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내 말이 심히 거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특히 내가 언급한 '수준' (이것은 언제나 논리싸움뿐만 아니라 감정싸움의 불씨가 된다)이라는 게 대체 뭐냐고 따질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다. 늘 허세를 부리지만 그에 걸맞은 전문성을 갖추지도 못했다. 나는 비교적 쉽게 만족하고 예술의 권위 앞에서 고분고분하며 연극인들의 고민과 노고에도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수준 미달'의 기준이란 언제나 일관되게 소박하다. 학생들이 만든 아마추어 같은 작품. 프로가 만들었다고는 믿기 힘든 작품이 버젓이 프로의 무대에 올라왔을 때  나는 그만 폭발하고 만다.

      남을 비난하는 글을 쓰는 게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나오는 대로 지껄이면 되니 속이 후련할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가 않다. 나는 나쁜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칭찬할 때에는 자기 검열이 필요 없지만 누군가를 비난할 때에는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해야만 한다. 자칫 수위를 낮추면 비굴해지기 쉽고 자칫 수위를 높이면 혐오분자가 되어버린다. 대체 예의 바르게 누군가를 정확하게 비난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비난은 하되 비아냥 거리지는 않는다는 게 가능할까. 누군가를 비판한다는 건 상당한 스트레스와 자기기만, 그리고 부끄러움과 자기혐오를 동반한다.

      처음에 나는 이 연극에 기대를 많이 했다. 주제도 마음에 들었고 특히 홍보용 이미지 사진이 내 흥미를 끌었다. 고전에 대한 세련되고 현대적인 해석에 더해서  5시간 공연을 강행할 만큼의 야심이라면 분명 그 이상의 줏대가 분명한 연극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연극에서 문학이 실종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것은 마치 이것저것 주워 읽은 조숙하고 교만한 고등학생이 세상의 무지렁이들을 얕보며 쓴 희곡인 것만 같았다. 나는 극작가가 누구인지 살펴보기까지 했다. '지니 해리스'라는 퍽이나 인정받는 분이라고 한다. 순간 움찔했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겠다. 나는 공정성을 위해 이 사람의 이력도 게재한다. 




    


    자, 이제 나를 비웃어도 좋다. '네까짓 게'라고 말해도 좋다. 자격지심이라거나, 무식하면 용감하다거나, 무엇이든 말해도 좋다. 그것은 이해할 만하고 또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물러서지 않겠다. 이건 정말 뭣 같은 희곡이니까.  개인적으로 나는 대사가 많은 희곡을 좋아한다. 배우가 쉴 새 없이 떠들어댈 때는 희열을 느끼기까지 한다. 분명 이 희곡의 대사 양만큼은 어마어마하다. 5시간 내내 쉴 새 없이 떠들어 댈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대사가 많은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없기 때문에 대사가 많은 것이다. 대사가 많아서 5시간짜리 공연이 된 것이 아니라 5시간을 채워넣으려다 보니 대사 양이 많아진 것뿐이다. 이건 희곡이 아니다. 문학이 아니다. 그저 감정의 배설이요 지쳐빠진 넋두리일 뿐이다. 그저 자기 아는 걸 모두 쑤셔 박아 놓고는 관객들에게 알아서 정리하라고 던져놓은 무편집본의 더미일 뿐이다. 거기에 연극이라는 색깔을 입힌 겉핥기식의 번드르르함. 

   물론 여기에는 참작의 여지가 있다. 그는 극작가이면서 동시에 연출가라고 하니, 자신의 연출과 함께 보아야만 진의를 충분히 파악할 있을 것이다. 번역과 해석을 거치면서 뉘앙스의 변화나 의미의 변형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것까지 고려해야 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어쨌건 내가 본 건 이 연극이다. 나로서는 연극을 참고 보기가 꽤나 힘이 들었다. 이것은 비난이 아니다. 그저 솔직한 심정이다. 쓸데없는 대사와 설명이 너무 많았고 과잉된 감정과 허세가 너무 심했다. 배우들은 또 왜 그렇게 소리들을 질러대는지. 무슨 무력시위라도 하는 것 같았다. 노동의 강도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으려고 하는 노동자처럼. 

     다시 말하지만 나는 모욕감을 느꼈다. 마치 내가 냉정하게 판단할 머리가 없는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았다. 그저 실컷 소리치고 울고 웃어주면 아, 티켓 값이 아깝지 않다 배를 두드리며 돌아설 거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5시간 동안 계속 고문하면 결국은 박수를 치지 않고는 못 배길 거라고 생각했을까. 어쨌건 나는 5시간 동안 꼬박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내 옆 사람은 그러지 못했다. 그 사람은 2번째 휴식시간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건데, 어쩌면 그건 연극 때문이 아니라 자꾸 뒤척이며 한숨을 몰아쉬는 나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일이다. 성숙하지 못한 나 자신 때문에 나 역시 부끄럽고 화가 난다. 정말이지 고쳐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진정한 관객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연극 도중에 자리를 뜬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름 거기에 소소하게 의미를 부여해 본다.

     내용으로 조금만 들어가 보면 이 희곡은 아가멤논 가문의 저주를 '이피지니아'를 중심으로 재구성하며 아동 학대와 연결시킨다. 전체적으로는 그렇다. 그건 알겠다. 그것은 처음의 시도도 아니고 이미 다른 연극에서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기조에 좀 더 집중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마지막 3부만 연극으로 구성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 (그 과도한 히스테리 설정은 빼고) 그런데  '부모자식 관계' '부부관계' '남녀문제' '계급문제' '페미니즘' '정신분석'  등등등등이 맥락 없이 뒤섞이다보니 이야기는 확장되기보다는 쪼그라들어 버린다. 진부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를 마치 자기만 알고 있는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시콜콜 늘어놓을 뿐만 아니라 인물들 역시 지극히 평면적이고 통속적이어서 전체적으로 잡다하고 구차하기 그지없다. 대체 현대성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만일 단순히  '감정 과잉의 히스테리적 발작'을 현대성으로 해석했다면 이 연극은 무언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도 여러 번 언급했듯이 나는 연극배우들을 우러러본다.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용기와 가증을 견디며 감행하는 몰입을 존경한다. 그러나 배우들이 무대 위를 쉼 없이 뒹굴었다고 해서,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렀다고 해서, 그 긴 대사를 틀리지 않고 읊었다고 해서 그저 박수를 보낼 순 없다. 분명 5시간의 연기는 무척이나 고된 일이겠지만, 이 연극을 5시간 동안 지켜보는 것 역시 무척이나 고된 일이라는 걸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저녁도 굶은 채 침대 위로 쓰러져서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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