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루이 푸르니에
이 책을 구입한 건 꽤나 오래전이다.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잠깐 들렀던 중고책방에서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책 더미를 헤치고 찾아낸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손에 쥐고는 마치 쓰레기 더미에서 보물이라도 찾아낸 것처럼 기뻤었다. 그때는 신의 신성을 부정하고 조롱하는 거라면 뭐든지 유쾌하게 생각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 책이 내 마음에 들었던 건 단지 신성모독 때문만은 아니었다. 문학적인 아기자기함, 만화적인 상상력, 재기 발랄하면서도 냉소적인 유머, 다양한 형식들의 짜깁기, 무엇보다 다소 예민할 수도 있는 내용을 거침없이 가지고 놀았다는 점이 날 즐겁게 했다. (물론 그 점을 더 폭력적으로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책은 전통적인 (혹은 정통적인) 신의 이미지를 철저하게 전복하고 깔아뭉갠다. 사실 단순한 유머라고 부르기에는 사악할 정도다. 지금도 이 종교의 신이 많은 신자들을, 특히 신실한 신자들을 무수히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이 책에서 신은 절대적이고 전능한 창조주인 건 맞지만 한 편 경솔하고, 잔인하며, 비열하고, 구닥다리에, 즉흥적이며, 변덕이 심하고, 심지어 아둔하기까지 하다. 그는 어느 한 편으로는 그리스 신들을 연상시키는 데 신성할 뿐만 아니라 비속하고,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잔혹하며, 이성적일 뿐만 아니라 광기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는 신이자 동시에 악마다. 기독교에서 신과 악마를 동일시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신성모독이지만 (사실 애초에 '신성'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치졸한 일이었지만 어쨌거나 그게 기독교의 전략이니까.) 이 책에서 신은 악마에게 자신의 권능의 반을 나누어줌으로써 자신의 전능을 의심받을 정도로 무기력하지 않다. 그는 좋은 것만큼이나 나쁜 것, 완전한 것과 불량한 것, 생명과 죽음 등을 포함한 모든 것을 창조하고 주관하는 신이며 그 모든 것에 권리와 책임이 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인격적인 존재인데 이 세계를 순전히 자신만의 취향과 즐거움과 허영심, 무엇보다 자아실현을 위하여 창조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게도 인간은 특별하며 그는 진심으로 인간을 사랑하고 또 인간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서 그리고 기분에 따라서 인간을 죽이는 걸 망설일 정도로 인간을 사랑하는 건 아니다. 신의 사랑이란 그토록 편파적이지만, 신의 사랑이 편파적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에서 그것은 공정하다. 말하자면 신은 누구에게도 사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신 자신에게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다. 신은 자신이 너무 늙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의 좋은 시절은 가고, 더 이상 성취할 것은 없고, 만성적인 지루함과 함께 모든 열정은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렇다면 죽을 수도 없는 그에게 더 이상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겠는가. 모든 걸 다시 시작하는 것 외에, 그렇게 새로운 창조주가 되는 것 외에 말이다. 신은 이 지긋지긋한 우주를 그만 짓이겨 뭉개버리고 모든 걸 다시 처음부터, 이미 몇 번째인지도 모를 만큼 여러 번 그렇게 했던 것처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신이 인류멸망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우리는 마침내 성경에 나오는 한 구절의 진정성을 깨닫고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신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다 쓰고 나니 내 글이 이 책의 감상글로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이렇게 조곤조곤 비장하지는 않다. 가볍고 재밌는 책이다. 심지어 교황과 신의 서신 교환처럼 다소 유치하기까지 하다. 책이 유쾌한 어조라고 해서 감상글도 유쾌한 어조로 풀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나도 좀 더 분위기를 가볍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시종일관 유머와 풍자, 조롱의 분위기로 이어지긴 해도 거기에는 분명 씁쓸한 뒷맛이 남아있다. 일종의 발효되어 버린 분노 같은 것이다. 우린 더 이상 신에게 정색을 하고 분노할 정도로 신을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그저 희화화하고 비아냥거릴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낄낄거리다가 문득 돌이켜보면, 어쩌다가 신의 처지가 이렇게 되었나, 또 우리의 처지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코끝을 찡그리게 된다. 아, 그래. 하긴 그것조차 다 옛날 얘기지. 이 책만 해도 벌써 오래전 책이다. 오늘날 신은 더 이상 유머의 소재조차 되지 못한다. 누군가 신에 대해 농담을 던지면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한다. 마치 오래전에 죽은 사람을 새삼 모욕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