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나도 이제 스물아홉 살이 되었다. 그 8년간에 대해 딱히 구구절절 늘어놓을만한 건 별로 없다.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20대가 그러하듯) 복잡다단한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그리고 아마도 그중 몇몇은 내 인생의 진로에 있어서 꽤나 중차대하다고 꼽을 만하겠지만, 지나고 보니 다 구차한 얘기들일 뿐이고 다시 끄집어 얘기하면 더더욱 구차해지는 그런 얘기들일 뿐이다.
단지 군색한 생활에 대한 얘기를 조금 해보자면, 별다른 야망이 없었던 나는 그래도 취직 준비만은 착실하게 한 덕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꽤 괜찮은 광고 회사에 그래픽디자이너로 취직할 수 있었다. 그 회사는 광고업계에서는 소위 잘나가는 곳으로, 회사 건물도 호사스럽고 대우도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나름 기대에 부풀어 입사하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넌더리를 내고 말았다. 주말도 없이 하루가 멀다 하고 야근하는 것도 싫었고, 눈으로 식별하기 힘들 정도의 미세한 색 조정을 위해 수천 번씩 마우스를 클릭해대는 것도 괴로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잘난 사람들 틈에서 비위를 맞추기가 여간 수틀리고 약 오르는 일이 아니었다. 별것도 아닌 디자인 하나를 가지고 작가주의니, 창조니, 재창조니, 해체니, 포스트모던이니, 키치니, 완벽주의 등등을 외래어를 섞어가며 서로 거들먹거리는 행태에는 정말이지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 나의 혐오감은 마치 냄새처럼 숨길 수 없는 것이었는지 회사 사람들 역시 코끝을 찡그리며 나를 멀리했다.
결국 입사하고 나서 1년 7개월 만에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반년 정도를 두문불출하며 대책 없이 지내다가, 2년 전쯤에 건국대학교 근처에 있는 작은 출판사(실상 거의 인쇄소에 가까운)에 다시 취직해서 지금까지 죽 그곳에서 편집 디자인 일을 해오고 있다. 월급으로 말하자면 전 회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는 수준이고, 하는 일들도 마트 전단지나 학원 카탈로그, 교회 회지, 아마추어 작가들의 에세이, 소설, 삼류 시집을 편집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곳에서도 마감이 임박하면 야근은 물론 밤을 새워야 하고, 또 편집장의 마음에 들지 않아 재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특별히 독창적이고 세련돼야 한다거나 유행에 앞서 나가야 한다는 둥의 부담은 없기 때문에 마음은 한결 편안하다. 오히려 최신 유행하는 디자인을 접목시키면 산만하다거나 엉뚱하다는 핀잔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점점 디자이너에서 단순 노동자가 되어갔고, 그제야 비로소 일에 대한 보람 같은 것도 생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비교적 큰 변화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내가 집에서 독립했다는 사실을 말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집은 내가 대학 다닐 때쯤 살림이 나아지다가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곧 다시 주저앉으면서 그 당시 내 독립을 도와줄 형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서 나가고 싶었기 때문에 결국 작은이모에게 돈을 좀 빌려서 신림동에 보증금 500만 원, 월세 25만 원짜리 방을 얻을 수 있었다. 개인 주택의 반지하 방으로, 작은 방 하나, 더 작은 부엌 하나, 그리고 그보다도 더 작은 욕실 하나가 딸려 있다. 다소 누추하긴 해도 혼자 쓰기에는 불편함이 없어서 그 후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
5년여 남짓 혼자 생활하면서, 또 이런저런 사회생활을 겪으면서 가장 큰 부담은 역시 돈이었다. 언젠가는 내 손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또 각오도 되어 있었지만, 막상 철저한 현실에 부딪히고 보니 녹록치가 않았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돈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저절로 따라오는 넉넉한 부산물 정도라고 상상했던 것 같다.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가 주요 관심사였고, 만 단위가 넘는 숫자만큼이나 돈은 추상적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때는 ‘만 원’이라는 돈 한 장이 얼마나 대단한 고가처럼 여겨졌던가.) 하지만 돈은 결코 저절로 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전혀 추상적이지도 않았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육체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엄중했다. 아니, 우리의 육체가 돈 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엄중하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생존과 생리, 그리고 생태계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육체와 돈은 마치 같은 원료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동질감과 유사성이 있었다.
돈이 유일한 단위인 이 산뜻한 세계에서, 막상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하기도 싫고 납득도 되지 않을뿐더러 비굴해져야 하는 일투성이였다. 거기다가 그렇게 아등바등 벌어보았자 월세에 식비에 전기세, 가스비, 교통비 등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 그것은 ‘먹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먹는다’는 격언만큼이나 우스꽝스러고 무참한 일이었다. 삶을 연명하기 위해 우리는 삶을 얼마나 허비하고 있는가. 사실 돈이란 인간의 가장 지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신성한 고안물인데, 고작 식료품과 맞바꾸기 위해 한 푼 두 푼에 목을 매야 한다는 건 서글픈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 자신이 너무나 하찮게 사용되고 있다는 억울한 기분이 들지 않거나, 혹은 나는 원래부터 그만큼의 소용밖에는 닿지 않는 하찮은 존재라는 걸 깨닫지 못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이런 것들에 대해 시시콜콜 투덜대는 건 시건방진 일일 것이다. 최소한 남 보기에 멀쩡한 직장에 먹고사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딱히 억울할 건 없다거나, 또는 그 누구의 인생이라도(설사 멋진 할리우드 스타나 대단한 CEO쯤 된다고 하더라도) 알고 보면 구차하긴 마찬가지라는 의견도 일면 일리가 있다. 애초에 완벽한 삶이 불가능하다면 되도록 스스로를 단단하고 반들반들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상 속에서 중간중간 맥이 빠져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자신에게 지겨워지거나 혹은 나로 사는 것에 싫증이 날까 봐 늘 전전긍긍해야 했다.
아, 그러고 보니 희진이에 대한 소식이 아직 남아있다. 대충 근황을 전하자면 희진이는 대학 시절 목표로 했었던 웹디자이너는 되지 못했다. 지원했던 대기업에 떨어진 후 그보다 작은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희진이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대기업 취업 준비를 하면서 그동안 임시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한다는 것이 결국은 취업 준비를 그만두고 그곳에 눌러앉게 되었다. 웨이트리스라고는 해도 워낙 규모가 큰 고급 레스토랑이어서 스튜어디스와 같은 전문직에 가까웠다. 일도 적성에 맞고 벌이도 여느 대기업 직원 못지않다며 희진이는 이 일에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희진이는 더 이상 합정동 자취방에서 살고 있지 않다. 그 집 이후로 벌써 세 번이나 이사를 해서 지금은 일산에 있는 원룸에 살고 있다. 새집으로 이사 온 지는 1년 3개월가량 되었는데 눈치를 보아하니 또 슬슬 이사가 가고 싶은 모양이다. 이번에는 집에 습기가 찬다는 이유였다. 습기 때문에 자주 감기에 걸린다는 둥, 머리가 가렵다는 둥 불만이 많았다. 집을 옮길 때마다 이런 식이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는 단지 더 번듯한 장소를 원하거나 같은 곳에서 사는 게 지겨워졌던 것뿐이었다.
희진이는 허영심이 상당했다. 다만 그만큼 현실감각 또한 철저해서 무리 없이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허영심과 현실감각은 서로 방해가 되기보다는 공생관계를 맺으며 상승효과를 이끌어냈다. 가령 그녀는 고가의 명품 옷과 가방을 구입해서는 몇 달 정도 사용하다가 인터넷에서 제값을 톡톡히 받고 되팔아 버리곤 했다. 액세서리 역시 값비싼 것을 사서 질릴 때가 되면 한 번씩 세팅을 다시 하는 식이었다. 점심 값으로 만 원이 있다면 돈가스나 백반을 먹느니 차라리 분위기 있는 커피숍에서 만 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정신적인 포만감을 누렸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도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어요’라고 간단히 끝내는 법이 결코 없었다. 언제나 정식으로 명함을 (레스토랑의 장소와 규모, 품격이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웨이트리스’가 아닌 ‘매니저’로 소개되어 있는) 건네주면서 자신의 허영심과 현실감각을 모두 만족시켰다.
내가 희진이의 근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희진이와 나는 지금까지 잘 만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여전히 그런 관계를 그럭저럭 유지하면서 말이다. 우리의 관계는 8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예전처럼 자주 어울리지는 못해도 여전히 가끔씩 만나서 얘기하고 밥 먹고 섹스를 한다. 8년의 시간 동안 그녀와의 섹스는 닳고 닳은 어떤 것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완전히 닳아 없어지지 않은 어떤 것이기도 하다. 여전히 그녀와의 섹스는 열중할 만했고 또 달리 내 욕구를 해소할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희진이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한 2년 전쯤에 그녀가 나 외에도 다른 여자들과 잠자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희진이를 따라 가끔씩 가게 된 레즈비언 바에서 희진이의 친구가 희진이가 없는 틈을 타서 슬쩍 내게 귀띔해 주었다. 듣는 순간 놀라기는 했지만 세상이 뒤집어질 일은 아니었다. 물론 희진이가 다른 여자들과 잠자리를 가진다는 사실에 내가 조금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걸 딱히 과장하고 싶지는 않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