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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Oct 08. 2023

[연극] 클리테메스트라




연극 :  클리테메스트라

공연장소 : 뜻밖의극장

공연기간 : 2023년 10월 3일 ~ 2023년 10월 29일

관람시간 : 2023년 10월 7일 오후 3시




     나는 전에 아마추어 같은 연극이 프로의 무대에 올라왔을 때 화가 폭발한다고 적은 적이 있다. [이 불안한 집]에 대한 감상평이었을 것이다. 이번에 관람한 '클리테메스트라'는 [이 불안한 집]과 주제가 똑같다. 트로이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의 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친 아가멤논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뒤 부인 클리테메스트라에게 살해당하고, 클리테메스트라 역시 자신의 자식들인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에게 살해당한다는 내용이다. 나는 [이 불안한 집]에 대해 꽤나 혹독한 감상평을 남겼다. '아마추어'라는 지칭은 아마 듣는 입장에서는 거의 쌍욕처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연극에서도 나는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쓰려고 한다. 다만 그 의미를 180도 바꿀 것이다. 

    사실 이 연극을 '아마추어'라고 매도하는 건 상당히 부당하다. 아마도 단지 여건이, 자금이, 환경이 지극히 아마추어적이었을 뿐이다. 만약 이런 것들이 충분히 제공되었다면 아마추어적인 느낌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을 것이고 완성도 역시 더 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단지 이런 조건이나 기반들만을 지칭하려고 이 단어를 끌어들인 건 아니다. 분명 전체적인 세련됨이 부족하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세련됨의 부족'은 정말 무언가가 부족했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 모든 것이 과했다는 뜻이다. 나는 이 연극을 한마디로  '패기'가 있다고 말하겠다. 그런데 '패기'란 찬사와 비난을 모두 포함한 표현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사람들은 이 연극까지만 만들고 더 이상 연극을 하지 않을 건가' 같은 느낌이다. 이 역시 찬사와 비난을 모두 포함한 표현이다. 마치 세상에 태어나서 이 연극 하나만 만들고 말 것처럼 모든 아이디어와 열정을 남김없이 다 쏟아부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연극 전체가 강강강으로 진행되고, 마치 연극 전체가 조증인 것처럼 전체적으로 과도하게 업이 되어 있고, 배우들의 목소리도 지나치게 격앙되어 발음이 잘 들리지 않을 정도고, 보여주고 싶은 건 많은 데 시간은 부족하고, 숨이 차고 조급하게 결말을 향해 정신없이 치닫는다. 이것은 분명 '세련'과는 거리가 멀다. 좀 천천히 좀 차분히 진행되면 좋을 텐데. 

     일단 이 주제와 아이디어를 다 담기 위해서는 110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든다.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였다면 적당했을 것 같다. 정해진 시간이 짧다 보니 관객이 이 주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가정을 해버리고 극을 진행시키고 있는데, 그러면서 인물 간의 관계 설정이나 감정의 개연성을 마구 건너뛰고 있다. 그래서 자칫 어떤 연극의 요약본이나 티저 같은 느낌마저  든다. 만약 이 이야기 자체를 잘 모르는 관객이었다면 상당히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이야기보다는 장면 장면의 임팩트에 집중하면서 K팝 뮤직비디오 혹은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게임적인 느낌도 많이 나고, 등장인물들의 개성이나 인격은 철저히 무시되어 있고, 배우들의 연기력도 화려한 연출에 다소 묻히는 것 같다. 분명 전체적으로 미숙하고 아마추어적인 느낌이 있다. 솔직히 안개를 이렇게 많이 쓰는 연극을 나는 생전 처음 봤다. ('극적인 효과'에 대한 집착과 '자금 부족'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데도 나는 그런 모든 것들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내가 앞에 이렇게 부족해 보이는 부분을 길게 늘어놓은 것은 오직 좋은 점들을 더 길게 늘어놓기 위해서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이 연극은 이야기나 인물보다는 장면에 집중하면서 시각적인 재미를 한껏 끌어올린다. 조명, 음악, 인형극(다소 어색했지만), 가면, 무용 (그리고 안개)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비극'을 '시각적 충격'으로 전환시킨다. 이야기와 사사롭고 구차한 인간관계 묘사를 포기하면서 오히려 비극의 미학에 집중한다. 대사는 그저 거들뿐. 전체적인 세련미가 부족하다고 했지만, 장면의 컷들은 상당히 세련되다. 전혀 지루하지 않다. 효과적이고 자극적이다. 만족도가 상당하다. 정말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그것을 오랫동안 공을 들여 다듬었다는 느낌을 확연히 받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대 위의 모든 배우들에게 패기, 열정, 그리고 에너지가 있다. 사실 배우들의 에너지에서 나는 상당히 강한 인상을 받았다. 에너지의 기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맑다고 해야 하나. 처음 연극이 시작할 때 기타를 치고 있는 배우분부터 시작해서 모두에게 건강하고 생산적인 에너지가 가득하다.  나는 이 에너지를 '아마추어'적이라고 지칭하면서 '프로'들의 매너리즘과 대비하고 싶다.   

    시각적인 연출 만으로도 이 연극은 보러 갈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이 연극이 의미를 놓쳤는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그 부분을 이 연극이 상당히 영리하게 처리했다고 생각한다. 이 연극 내용의 세 축은 '아가멤논' '클리테메스트라' 그리고 '대중'이다. 그런데 이 연극은 '아가멤논'이라는 축을 텅 비워놓음으로써 오히려 우뚝 세운다. 이 부분이 결정적으로 나를 흥분시켰다. 이 주제를 다룬 대부분의 연극들은 '아가멤논'과 '클리테메트라'와의 대립각을 세우는 데 온통 집중한다. 이해할 만한 일이다. 세상에 이렇게 흥미롭고 자극적인 '사랑과 전쟁'은 또 없을 테니까. 그러나 대부분이  '아가멤논'을 실체화시키는 데 실패하고 마는데 왜냐하면 그는, 아가멤논은, 왕은, 전쟁의 승리자는, 자신의 딸까지 아낌없이 제물로 바치는 지도자는, 사실상 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격화시킬 수 없는 신을 구질구질하고 구차한 인간으로 격하시켜 버리니 결국 한쪽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연극은 영리하게도 쓸데없이 '아가멤논'과 씨름하지 않는다. '아가멤논'을 정신분석하지 않는다. '아가멤논'에게 많은 대사를 주지도 않는다. 이 연극은 '아가멤논'이 신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아가멤논의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의 존재를 불가해한 신비로 만들어 버린다. 단지 그에 대한 여러 명칭과 관계만이 그의 존재를 우리에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를 가리고 있다. 이 연극은 그것을 '옷'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적절하게 표현했다. 솔직히 나는 아가멤논이 여러 사람들의 옷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존재로 표현한 것에 대해 놀랐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이 연극에 1000점을 주고 싶다.     

       이 연극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축은 '대중'이다. '대중'은 모든 그리스 비극의 본질이기도 하다.  대중은 '신'인가. '정의'인가. '국가'인가. 그들의 개별적인 얼굴은 지워져 있다. 마치 신처럼. 마치 아가멤논처럼. 아가멤논이 사람들의 옷을 뒤집어썼듯이 '대중'도 사람들의 옷을 껴입는다. 가장 위대한 영웅 아가멤논과 가장 비천한 비렁뱅이는 결국 같은 존재인가? (이 연극이 그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어쩌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일까?) 영웅이 하나의 인격으로 이야기의 중심에 돛대처럼 서 있다면 대중은 바람처럼  이야기의 돛을 부풀려 배를  나아가게 한다. 이 연극은 그런 대중의 '대중의 역할'에 집중한다.  대중은 처음에는 아가멤논을 지지했다가, 오레스테스를 지지하더니, 오레스테스가 복수를 혹은 정의를 위해 클리테메스트라를 해하려 하자 오히려 클리테메스트라 편에 서지만, 결국 그녀를 삼켜버리고 만다. (이 연극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대중은 클리테메스트라를 죽인 오레스테스 역시 집어 삼키려고 그의 뒤를 쫓을 것이다.) 비극에 또 비극을 거치면서 멀리 변방 낮은 곳에서 생글거리던 대중은 점점 웃음을 버리고, 진지해지고, 몰입한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대중이야 말로 신을 압도하며 무대 전체를 차지하는 존재가 된다. 우리는 무대 위에서 강자와 약자가, 주인공과 엑스트라가, 신과 인간의 위치가 전복되는 걸 목격한다. 인간은 비극의 희생자가 아니라 향유자인가? 오히려 신은 인간을 위한 비극의 노동자인가? 어쨌든 신과 인간은 모두 자신의 일과를 마친 후 모두의 합작품인 비극의 미학을 즐기기 위해 무대의 관객석을 차지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연극은 제대로 완성되지 않았다. 완성되기 전에 보고들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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