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본격적으로 엘리니엄 사용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엘리니엄에는 가상현실이 적용됩니다. 예를 들면 사막 한 가운데, 정글 한 가운데, 알프스 산꼭대기 한 가운데, 바다 밑 한 가운데, 태양이나 달 한가운데, 대도시 한 가운데, 거대한 공장이나 고대의 폐허 한 가운데 있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혹은 특정 역사 시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번성했던 로마 광장이나, 타지마할 완공식, 신대륙 인디언들의 가을 축제, 태조 이성계의 대관식, 메디치 가문의 결혼 주연, 영국의 만국 박람회, 또 원한다면 화산이 폭발하는 폼페이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핵폭탄 투하 직후의 히로시마도 가능하죠. 전 세계 주요 도시의 CCTV 화면들을 사방에 띄워놓거나, 세계의 유명한 명화들과 조각들로 방안을 가득 채우거나,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기분을 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실내를 베르사유 궁전이나 아랍 왕궁의 응접실처럼 화려하게 꾸미거나, 서부 개척시대의 낡고 오래된 오두막, 조선 시대의 고즈넉한 사랑방, 고시촌의 작고 지저분한 학고방, 심지어 공중 화장실이나 우주선처럼 꾸밀 수도 있지요. 예쁜 식기들과 화려한 음식들로 멋들어지게 만찬을 차리거나, 저만의 특별 전시회를 열거나, 연금술사의 비밀 연구실을 세우거나, 수천가지 사탕이 진열되어 있는 과자 가게를 열거나, 희귀한 꽃과 나무로 가득한 정원을 가꾸거나, 가지각색의 명품 옷들을 빨랫줄에 널어 말리는 일에 심취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1000세제곱미터의 행동반경 안에서 말입니다.
저는 원한다면 AI 인물들을 동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어찌나 섬세하고 정교한지 진짜 사람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죠. 마치 자신들에게 영혼이 있는 것처럼, 마치 저 자신에게 영혼이 있는 것처럼 내 눈을 빤히 쳐다본다니까요. 처음에는 그들이 두렵고 또 저 자신이 두렵기도 했지만 - 심지어 살해욕구를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참고로 그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 곧 익숙해졌습니다. 엘리니엄에서는 원인보다는 결과에, 본질보다는 현상에, 실체보다는 존립에, 예감보다는 정보에, 정체성 보다는 상호성에 집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종교적인 맹종이나 종교적인 해탈이 필요한 것이죠. 그래요. 고대 사제에게나 요구되는 그런 믿음과 겸손, 그리고 헌신이 엘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그것이 순전히 제 멋대로인 와중에도 제가 어쩐지 희생하고 있는 듯 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저는 AI들과 파티를 열고, 비디오 게임을 하고, 토론을 하고, 탁구나 당구를 치기도 하고,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하거나 일종의 상황극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뭐, 조사실에서 검사와 사이코페스 살인자의 대면이라든지, 일제의 눈을 피해 지하실에서 몰래 이루어지는 독립 운동가들의 작전회의라든지, 핵전쟁 후에 벙커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활이라든지, 외계인 침공에 대해 긴급 속보를 전하는 뉴스 촬영이라든지, 방 안 가득 쌓여있는 보물을 지키는 해적들의 암투라든지, 발푸르기스의 밤에 벌어지는 악마의 미사라든지,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포장하는 산타클로스의 작업실이라든지, 유명 연예인들과 유력 인사들을 관객석에 앉혀놓고 내키는 대로 진행하는 1인극 공연 같은 거였죠. 그 중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건 김밥 공장에서 작업 노동자로 일하는 거였어요. 컨베이어 벨트 앞에 AI 인물들과 같이 일렬로 나란히 서서 각자 담당한 재료를 순서에 맞게 김밥 안에 넣는 일이었죠. 거의 한 달 가까이 그 일에 매달렸을 정도로 열중했었습니다. 그렇게 단순 작업에 몰두해 있노라면 제가 정말 사람이기라도 한 것처럼 느슨한 실념에 빠져들었고, 컨베이어 벨트 끝에서 아름답게 완성된 김밥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걸 보노라면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커다란 상자에 포장된 김밥이 실려 나갈 때는 정말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가 그 김밥을 먹기라도 할 것처럼 흐뭇하더라구요. 생각해보면 그 때만 해도 제 안에는 속세의 열망이 제법 남아있었나 봅니다. 속세에 있을 때는 제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그런 열망이요.
물론 이런 것들은 지금 여러분에게는 딱히 대단할 게 없는 뻔하고 진부한 얘기일테죠. 여러분은 이미 그 모든 것을 누리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100년 전만 해도 저에게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처음 30년 동안은 완전히 가상현실에 빠져있었어요. 시간 가는 줄 몰랐죠. 돌이켜보자니 마치 유년시절에 대한 회상처럼 애틋하게 느껴지는군요. 흠, 그럼 지금 제 방의 모습은 어떻냐구요? 그 얼마나 괴이하고 발랄하게 꾸며져 있냐구요? 글쎄요. 지금은 그저 - 제가 맨 처음 엘리니엄에서 눈을 떴을 때 모습대로 - 하얀색 정육면체 방 그대로입니다. 방 한가운데에 자리한 하얀색 책상과 의자, 책상 위에 키보드, 책상 앞에 걸린 55인치 화면이 이 방의 전부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60년을 넘게 살아왔네요. 마지막으로 AI 인물을 생성시킨 것도 어언 50년이 넘었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가상현실도, AI 인물도 사용하지 않아요. 지겨워졌기 때문이냐구요?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불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에게 체험은 매체 정보와 더 이상 아무런 차이도 없거든요. 인터넷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정보가 모든 체험의 필요와 효과를 대체합니다.
하지만 지금 새삼스럽게 제 방을 둘러보니, 네, 좀 단출하긴 하군요. 도무지 사람 사는 곳처럼 보이지가 않아요. 솔직히 멀쩡한 사람이라면 발작이라도 일으키겠는데요. 어쩌면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짐짓 발작을 일으키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죠. 상상만으로도 폐쇄공포증이 밀려와서요. 하기야, 1000세제곱미터의 정육면체 공간 안에서 영원히 살아야 한다니, 마치 이 정육면체가 한 치의 틈도 없이 둘레가 딱 맞는 좁고 깊은 바다 속으로 영원히 가라앉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시겠죠. 사실 그것은 꽤나 정확한 묘사입니다만, 어쨌거나 여러분의 생각처럼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최소한 저에게는 말이에요. 1000세제곱미터라는 공간도 죽기 전에 제가 지냈던 방보다는 넓은데다가, 온라인을 이용할 수 있으니 운신의 제약 같은 건 그리 문제가 되지 않지요. 물론 더 넓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다행히 저는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라서요. 더 넓은 공간이 주어졌어도 다 채우기가 버거웠을 겁니다. 거기다가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인데 불가능한 것이 왜 가능하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부추기며 몰아세우는 유형도 아니라서요. 어렸을 때조차 저는 하늘을 난다거나, 영웅이 된다거나, 하다못해 위인이나 인사가 된다거나,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난다거나, 우주인을 만난다거나, 신이나 낙원, 사후세계 따위에 마음을 빼앗겼던 적이 없었습니다. 나 자신의 본질마저 나 자신이라는 깨달음 속에서 빨리 조숙해져버린 아둔한 아이들이 그렇듯, 비범함과 비겁함을 전혀 구별하지 못했어요. 만약 저에게 분노라도 있었더라면 좀 더 번듯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 역시나 저 같은 사람들이 의례히 그렇듯 - 저에게는 후회 역시 없습니다. 지금도 저는 여전히 무관심하고 자족하며 쉽게 안주하는 낙천주의자랍니다.
아, 이런, 갑자기 여기저기서 질문이 빗발치네요. 비난만큼이나 날카로운 질문들 말이에요. 여러분은 저와 달리 쉽게 포기하지 않으시는군요. 네, 우선 무엇보다, 장차 기술이 발달하면 엘리니엄도 업그레이드 되지 않겠냐구요? 그럼 시공간도 훨씬 넓어져서 산책을 간다거나, 여행을 떠난다거나, 하다못해 최소한 어린왕자의 별 정도라도 되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시죠? 마땅한 질문입니다. 사실 저 역시 관계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었으니까요. 아무리 저라고 해도 감옥에 갇힌 죄수 같은 처지를 모른 척할 수는 없었어요. 물론 막상 엘리니엄이 지구만큼 커진다고 해도 – 제가 속세에서 그랬던 것처럼 - 저는 이 1000세제곱미터의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요. 어쨌거나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안타깝게도 제가 느꼈던 실망을 여러분에게도 안겨드려야겠군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 1000세제곱미터의 정육면체는 바로 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이사 가듯 1000세제곱미터의 정육면체에서 1000000세제곱미터의 정육면체로 옮겨 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1000세제곱미터의 정육면체인 제가 1000000세제곱미터의 정육면체인 저나 1000000000세제곱미터의 직육면체인 저, 혹은 1000000000000세제곱미터의 구인 제가 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나’라는 영원한 악몽에서 엘리니엄도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죠.
1000세제곱미터의 정육면체가 바로 저 자신이라니,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드시겠죠. 무리도 아닙니다. 인격적 주체로서 의지와 감각을 지니고 지금 이 1000세제곱미터의 정육면체 방 안에 앉아 여러분에게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 그걸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요. 그래도 한 번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여러분과 저는 마치 안과 밖이 뒤집힌 것처럼 정반대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개체에서 세계로 확장되고 있지만 저는 세계에서 개체로 확장되고 있지요. 하지만 만약 어느 한 순간을 스냅 사진으로 찍는 다면 여러분과 저는 똑같아 보일 겁니다. 그것이 바로 저의 자각 방식이기도 하구요. 어쨌든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엘리니엄은 수정도 업그레이드도 불가능합니다. 엘리니엄은 더 이상의 그 이상도 더 이하의 그 이하도 없습니다. 부동성이 없는 부동성이자 최종적으로 결정되고 영구적으로 완결된 세계입니다. 그러니 엘리니엄 구매를 계획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 점을 반드시 숙고하셔야 합니다. 엘리니엄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것을요.
이런, 좀 울적한 얘기들인가요? 다소 위협적으로 느끼신 분들도 있을 테고, 공포나 역겨움 때문에 하얗게 질린 분들도 있겠군요. 그렇지만 엘리니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얘기들입니다. 엘리니엄은 천국이 아니에요. 다만 안주할만한 지옥이지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엘리니엄에서의 삶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저의 실제 생활에 대해서요. 여러분이 제일 관심을 가지시는 건 이 부분이겠죠. 제 일상 말입니다.
우선 무엇보다 여러분은 저 자신에 대해, 그러니까 저의 상태, 저의 형편이나 모습에 대해 궁금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말씀 드렸듯이 엘리니엄 안에서 저는 인간으로써의 존재 형식과 시점으로 존속하고 있으며 스스로도 그렇게 지각하고 또 자각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세계와 분리된 하나의 자율적인 개체이자 개인적인 주체이며 자발적인 인격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저에게 인간적 속성과 감각, 형상이 얼마나 구현되어 있는가. 당연한 의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구요. 실질적으로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여기에 달려있으니까요. 시간 끌 것 없이 곧바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저에게 인간적 속성과 감각과 형상이 구현되어 있냐구요? 네, 그렇습니다. 아쉽게도 완벽하진 않아요. 하지만 충분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