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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Apr 07. 2024

[연극 ] 푸드




연극 :  FOOD 푸드

공연장소 :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

공연기간 : 2024년 4월 4일 ~ 2024년 4월 7일

관람시간 : 2024년 4월 7일 오후 2시




   어느 정도 되는 고급 레스토랑을 가면 (너무 고급 말고) 그 어느 곳보다 다양한 인물군을 만날 수 있다. 그저 편하고 소박한 식사를 하러 온 부류, 오랜만에 기분 좀 내보려고 온 부류, 데이트에서 멋 좀 부리려고 온 부류, 부모님 생신을 맞아 큰 마음먹고 없는 돈을 긁어모아서 온 부류, 이런 고급 레스토랑은 처음이라 잔뜩 긴장하며 계속 눈치를 보는 부류 등등. 이 연극의 관객들 역시 비슷하다. 뭔가 되게 인테리한 느낌이 나는 부류, 뭔가 되게 인테리한 느낌을 내려고 잔뜩 치장한 부류, 너무 평범해 보여서 종잡을 수 없는 부류, 취향보다 학구열에 불타는 학생 부류, 연극과는 거리가 멀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부류, 공짜 티켓이 생겨서 얼떨결에 따라온 부류 등등등, 이 연극의 공연장은 다양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대 겸 식탁인 거대한 정방형의 테이블에는 흰 식탁보가 깔려 있고 대략 서른 명 분의 접시와 수저, 유리컵들이 3면에 빙 둘러져 있다.  이 테이블 좌석을 예약한 사람들이 테이블에 일열로 둘러앉고, 이 테이블 좌석을 예약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다시 이들을 둘러싼다. 테이블 좌석을 예약한 사람들이 주 고객이라는 건 한눈에도 확연한 데다가, 당연히 테이블 좌석의 티켓 가격이 일반 관람석 티켓 가격보다 비싸기 때문에  공연장에는 살짝 계급 차별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하지만 그보다는 본질적으로 테이블 좌석 외에 따로 관람석을 만드는 것이 이 연극의 취지에 위배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이 정도야 공연 비즈니스 차원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개인적으로는 테이블 좌석의 관객들이 전혀 부럽지 않았는데, 그들은 연극 진행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그리고 강제적으로 참여하도록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체측으로부터 출연료를 받아야 하는 아닌가 싶을 정도여서, 만약 테이블 좌석만을 판매했다면 나는 연극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연극이 시작되면 웨이터가 손님들에게 메뉴판을 나눠주며 주문을 받는다. 원하는 것은 뭐든지 주문할 수 있다고 웨이터는 안내하지만 사실상 메뉴판에는 각각 오직 한 가지 메뉴만이 적혀있을 뿐이다. 그저 연극의 원활한 진행상 어쩔 수 없는 약속대련의 설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예술은 정치와 같아서 의도나 목적이 아닌 결과만을 가지고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삶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기회의 협소함, 선택을 강요하는 폭력성, 수많은 주체들에게 주문하는 단일한 수동성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사들은 말로써 각종 음식들, 과일들, 야채들, 식재료들을 풍성하게 식탁 위에 늘어놓지만  막상 테이블 위에서 손님들에게 돌아가는 음식들은 초라하기만 하다. 이것 역시 세상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 우리가 세상에게 기대하는 것에 비해 우리가 향유하는 실제의 빈약함, 우리의 현실적인 허기와 실망감을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초라한 음식을 먹으며 (혹은 먹는 척하며) 미리 정해진 대사를 읽거나 일종의 자기 고백을 하면서 (하느님 맙소사다) 식사를 마무리한다.

    레스토랑 영업이 끝나고 혼자 남은 웨이터는 편하게 식탁 앞에 앉아 손님들이 남긴 음식들을 먹기 시작한다. 사과 대여섯 개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그득히 쌓인 야채를 단 번에 삼키고, 스테이크와 생선을 핏물을 뚝뚝 흘리며 야수처럼 뜯어먹는다. 그리고도 배가 차지 않아 냅킨을 먹고, 성냥을 먹고, 담배와 같은 물건들까지 먹어 치울 때 우리는 이 식탁이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들의 영역임을 알아차린다. 이윽고 신이 거대한 식탁을 덮고 있던 식탁보와 식기들을 한꺼번에 싹 걷어 치워 버리자 흙이 가득 차 있는 네모난 땅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신은 관객에게 (신만큼이나 전지적 시점의 관객에게) 그 땅 위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탄생부터 현재의 도시까지의 역사를 모욕적일 정도록 간추린 요약본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보기에 좋았더라인지 보기에 좋지 않았더라인지 알 수 없는 신은 자신이 모든 걸 시작한 그 흙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것이 이 연극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이다. 이 글만 읽는다면 이 연극이 제법 그럴듯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이다. 단언컨대 앞선 내 텍스트가 그 연극보다는 훨씬 나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실제 연극에 더 이상 첨가할 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연극에 기대를 많이 했다. 식탁과 무대의 결합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음식과 인간을 신성시하면서 모독하고, 음식을 먹으면서 토해내고, 아름다운 음식들과 접시들을 짓밟고 깨부수는.... 혹은 식탁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위선과 가증을 고급스러우면서도 신랄하게 풍자하는..... 하여간 이런 그림들을 그려보았다.  그러나 이 연극은 그런 도발이나 실험과는 거리가 멀었다.  메시지는 놀랄 정도로 직접적이고, 진부하고, 지루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유아적이었다.  게다가 아무런 상상력조차 없었다. 나는 이 연극을 성인용으로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초등학생, 중학생 정도를 대상으로 했다면 적당했을 것이다. 교육용 체험학습으로라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공연장에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웨이터-신-배우'가 음식들에 이어  물건들까지 게걸스럽게 뜯어먹는 장면에서 연극이 마무리가 되었다면 나는 분노까지는 느끼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식탁보가 걷어지고 흙이 가득한 땅덩어리가 드러났을 때부터야말로 진정한 모여라 꿈동산의 시작이었다. 아, 나를 거칠게 동심의 세계로 이끌려는 것일까. 하지만 단언컨대 요즘 아이들도 이 정도로 순수하지는 않다. 온갖 컴퓨터 그래픽과, 디지털 영상과, 상호 반응 게임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 공연은 거의 원시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솔직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더욱 당황스럽다. 대체 이 레스토랑은 어떻게 영업을 이어나가고 있단 말인가.

    나는 외국 초청 연극은 무조건 보는 편이다. 우리나라에까지 초청되었을 정도면 어느 정도 검증이 되었을 거라는 지극히 속물적이고 실용적인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더니, 나는 잔뜩 허기가 진 채 그 먼 먼 길을 지나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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