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저는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온라인 상의 모든 전자책에 접근할 수 있거든요. 물론 더 이상 물리적인 책은 소유할 수 없지만 저는 언제나 가질 수 없는 것보다는 가질 수 있는 것에 집중하니까요. 이것 역시 엘리니엄에서는 필수적인 덕목이지요. 이제 저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의 방해도 없이 제가 원하는 만큼 천천히 독서를 합니다. 읽지 못한 책들이 쌓여가도 더 이상 조급함도 부끄러움도 죄책감도 없어요. 언젠가는 모두 읽게 되겠지요.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결국 그렇게 될 겁니다.
저는 딱히 책의 종류나 장르, 주제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냥 눈에 띄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읽는 편이죠. 철학, 심리학, 신화, 종교, 기호, 언어, 인류, 문화, 역사, 고고학, 문화, 소설, 시, 희곡, 대중문화, 미술, 음악, 영화, 사진, 건축, 디자인, 무용, 연극, 각종 외국어, 뇌과학, 생명과학, 의학, 법의학, 동물학, 식물학, 물리학, 천문학, 수학, 화학, 공학, 연금술, 농업, 만화, 사회학, 교육학, 정치학, 외교학, 여성학, 법학, 군사학, 건강, 각종 공예, 낚시, 바둑, 애완동물, 스포츠, 정신건강, 경제학, 마케팅, 제테크, 동화, 에세이, 여행안내, 유머, 풍자, 요리, 제과제빵, 뜨개질, 바느질, 패션, 뷰티, 인테리어, 원예, 동화, 자기계발, 잡지 등등등.... 무슨 책이든 상관없습니다. 이 세상에 재미없는 책이란 없으니까요.
저런, 이해가 안가시나요? 세상에는 재미있는 책보다 재미없는 책들이 훨씬 더 많다구요? 솔직히 냄비를 받치거나 책장 다리를 고이기 위해 쪼개버려도 조금도 아깝지 않은 책들이 집집마다 한 가득이란 말씀이시죠? 그럼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세상에서 모든 책들이 사라지고 오직 단 한 권의 책만 남았다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 ‘참 쉬운 도시락 요리’라는 책이라고 해보죠. 설사 요리에, 더더군다나 도시락 요리에는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던 사람일지라도 분명 그 책을 읽고 또 읽을 겁니다. ‘돼지고기생강구이&채소구이샐러드’, ‘연인을 위한 피크닉 도시락’ ‘캘리포니아롤 3종 세트’ 같은 장들을 말이죠. ‘지속 가능한 도시락 라이프를 즐기고 싶다면 먼저 예쁜 도시락 통을 구입하는 걸로 시작해 보자. 일회용 호일에 대충 싼 김밥을 먹는 것과 예쁜 도시락 통에 정갈하게 담긴 김밥을 먹는 것은 천지차이다. 도시락 하나로도 점심시간에 폼이 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대접받고 있다는 생각에 어떤 날은 위로를 받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자존감이 높아지기도 한다’ 같은 구절들을 어떤 고귀한 계시라도 되는 것 처럼 소중히 음미할 거예요.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건 독서가 아니라니요? 그런 책이란 그저 해독과 상관없는 기호들로 가득한 부적에 불과할 뿐이라구요? 그런 독서가란 그저 개인적인 구호를 바라며 부적의 주문을 읊어대는 주술사와 다를 바가 없다구요? 천진난만의 불온함. 불온한 천진난만함. 이런, 그렇군요. 네, 맞습니다. 여러분이 옳아요. 솔직히 놀랍네요. 그건 저만의 비밀이었는데요. 여러분은 어느새 저라는 사람에 대해 많은 걸 알고 계시는군요. 그래요. 저는 그저 책을 통해 언어라는 현실계에 매달리고 싶은 것 뿐 정말 무언가를 읽고 읽는 건 아닙니다. 침묵마저 침묵하는 물질계는 한없이 단단하고 빈틈없이 매끈하지요. 태초의 물체 뒤로 영원히 드리워진 그늘 아래 붙어서 잠시라도 연명하려면 언어라는 미신이 필요해요. 먼지이끼는 한 번도 나비를 본 적이 없으면서도 '꽃'이라는 문자를 피울겁니다.
그렇게 저는 책을 읽고, 읽은 책의 목록을 작성하고, 그것을 여러 기준으로 분류하고 다시 재분류하면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우스갯소리로 말하자면 인문학 책은 노동처럼 읽고, 소설은 여행처럼 읽고, 희곡은 휴가처럼 읽고, 에세이는 산책처럼 읽고, 그림이나 삽화가 많은 책은 놀이처럼 읽고, 동화책은 휴식처럼 읽고, 만화책은 꾀병처럼 읽지요. 이런, 세상에나,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제 독서가 꼭 착취같다구요? 연민 없는 생산자와 불만 없는 노동자의 평화롭고 공고한 연합을 보는 것만 같다구요? 에이, 설마요. 그 정도는 아니겠죠. 네에, 그 정도는 아니에요. 다소 가혹한 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요.
여러분,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저는 되도록 엘리니엄의 좋은 점을 말씀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왜 여러분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지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자아, 기운을 내세요. 엘리니엄에서 오직 독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흠, 이건 어떨까요. 영화 좋아하시죠? 말씀드렸다시피 엘리니엄에서는 인터넷 상의 모든 매체와 자료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잘 알려진 영화는 물론이고 희귀한 영화까지 마음껏 관람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드라마, 예능, TV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연극, 무용, 뮤지컬, 음악, 콘서트 공연 실황까지 마음껏 볼 수 있어요. 참, 게임도 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온라인 게임은 할 수 없지만 가상현실 게임이나 컴퓨터 게임, 콘솔 게임은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그리고 개인 취미도 가질 수 있죠. 예를 들면 그림 그리기, 뜨개질, 사격, 천체관측, 바둑이나 체스, 악기 연주 등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 역시 엘리니엄 초반에는 피아노 연주에 열중했었네요. 피아노를 멋들어지게 쳐보는 게 제 생전의 로망이었거든요. 속세에 있을 때는 피아노 배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이 영겁의 시간동안이라면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줄 알았죠. 하지만 결국 제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무려 20년 동안 연습했는데도 되지가 않더군요. 결국 제가 피아노를 칠 수 없었던 건 배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저에게 조금의 재능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뭐, 그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인 셈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제대로 파악할 기회도 없이, 자신에게 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무슨 일이든 해내고야 말았을 거라는 착각 속에서, 그렇게 쓸데없는 자부심과 회한과 불안에 시달리며 죽음을 맞이하니까요. 제가 천 년을 살아도, 혹은 그 이상을 살아도, 100년도 살지 못한 베토벤이나 샹폴리옹이나 아인슈타인이나 에셔가 될 수 없다는 게 참 얄궂게 느껴집니다.
예, 이미 다들 눈치 채셨겠지만, 저는 시사적이거나 세속적이거나 현실적인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속세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죠. 마치 두부는 먹을 수 있지만 콩을 먹으면 설사를 하고 마는 사람처럼, 그것이 가십으로 문학으로 예술로 발효되지 않으면 그리 구미가 당기지 않아요. 지구가 공전하고 자전하듯 어차피 세상은 돌아가고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굳이 그 속도를 계산하며 멀미를 느낄 필요가 있나요? 더군다나 공전과 자전에 제 힘을 보태라구요?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만큼이라도 지구의 좌표를 옮기는 야심을 가져요? 지구의 진로를 영원히 바꿔놓는 꿈이라니,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네요. 다행히도 세상에는 위장도 크고 소화력도 좋은데다가 식욕까지 왕성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으니 그건 그들에게 맡겨놓는 게 좋겠습니다. 그들은 의사가 되고, 정치가가 되고, 학자가 되고, 과학자가 되고, 환경운동가가 되고, 경찰이 되고, 군인이 되고, 선생님이 되고, 인권운동가가 되고, 예술가 등등등등이 되지요. 나로 말하자면, 그 모든 걸 다 할 수 없다면 단 하나도 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저 역시 매일 이런저런 정치면이나 사회면 뉴스도 보고, 불의한 사건이 발생하면 자세한 내막을 찾아보기도 하고, 선거라도 있으면 하루 종일 개표 방송을 지켜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딱히 몰두하거나 흥분하지는 않아요. 지금껏 저는 여러 가지 것들을 보았고 또 그것들이 반복되는 것 또한 반복해서 보았으니까요.
저는 편향적이고 고집스러운 진영 논리에 빠져 집단 지성이 아닌 집단 무지를 조장하는 민주주의의 저능과 무능, 민주주의의 민주주의 코스프레, 그리고 결국 민주주의가 법치주의로 변질되는 타락을 보았습니다. 마치 절망의 규모를 증명하기 위해 자살자의 머릿수를 헤아리듯, 인구 절벽 앞에서 신생아의 머릿수를 헤아리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실존보다 본질이 우선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저 각 개인의 인성에 호소하거나 각 개인의 인격을 비난하는 수준으로 내몰린 이민자 문제와, 포스트모더니즘, 탈중심적이고 다원적 상대주의라는 순수한 선의의 파시즘 아래에서 상식과 양심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종, 여성, 장애인, 젠더, 계급 등등 타도되어야 할 차별이 오히려 양쪽 모두의 모방적이고 경쟁적인 비호아래 누구도 끝나길 원치 않는 공성전이 되는 걸 보았고, 평화를 외치면서 폭력에, 정의를 외치면서 불의에, 평등을 외치면서 차별에 기생하는 자들을 보았고, 모든 단어의 정의(正義)와 정의(定義)가 남김없이 모욕당하고 부정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안락사에 실패한 종교가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을 보았고, 대량 살상 무기의 그늘에서 전쟁은 점점 더 진지해지고 사람들은 점점 몽롱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진 자 만큼이나 못가진 자도 교만하고, 못가진 자 만큼이나 가진 자도 분노하는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성스러운 잡종의 세대를 보았고, 모든 직업군이 지식인-노동자로 변태되는 걸 보았고,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을 단지 지식인이나 단지 노동자라고 자처하는 호객꾼들을 보았습니다.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이 홀로코스트 가해자들의 훌륭한 후계자가 되는 것을 보았고, 살인마들이 남긴 지문을 자신의 피로 지워주는 어리석은 피해자들을 보았고, 죄의식으로 인해 탈선하고 회개로 인해 부패하는 개종자들을 보았습니다. 부지불식간에, 무의식 중에, 실수로, 혹은 오해로 인해 자신이 누군가를 모욕하거나 지레 상대가 그렇게 느낄까봐 미리 사거리에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무신론 순교자들을 보았고, 희생양 몰이꾼들을 희생양으로 삼음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정당한 희생양들이 풍년을 이루는 것을 보았고, 모든 희생양이 사라지면 모든 양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끈질긴 예감의 귀환을 보았습니다. 저렴해진 마약 덕분에 더 이상 마약을 구하기 위해 몸을 팔거나 강도짓을 할 필요가 없는 타락의 평등화, 민주화, 윤리화를 보았습니다. 예술과 철학이 자유시장의 선봉에서 1+1 기성품이 되는 걸 보았고, 전전긍긍 대중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 다니며 보통 사람을 자처하는 예술가들을 보았습니다. 애완동물이 반려동물이 되고, 인격화가 인간성이 되고, 모든 고기가 인육이 되고, 인간의 존엄을 동물이 똑같이 누릴 때에야 비로서 인간도 존엄해지는 걸 보았습니다. 가해자의 인권이라는 서구식 판타지가 상식이 되어가는 걸 보았고, 민주주의에게는 민주적으로 자살할 권리와 권능이 있음을 보았고, 민족주의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동시에 승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용감하고 예민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나약하고 비겁하기 때문에 진보가 되며, 인간에 대한 신뢰와 낙관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나약하고 비겁하기 때문에 보수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체주의는 불치병이고 민족주의는 고질병이며 극단주의는 전염병이라는 인류의 우성 유전이 여전히 건재함을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상향평준화 되는 것을 보았고 그 ‘상향’에 대한 기준이 하루가 다르게 낮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성의 성상품화를 없애는 대신 남성의 성상품화에 매진하는 풍요로운 쾌거를 보았고, 임신의 주체와 객체를 유권자가 결정하는 고도의 민주화를 보았고, 모든 의무와 책임과 양심이 이익 집단들에 의해 독점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던 본질 때문에 고통 받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본질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백인우월주의자인지 모르는 백인들, 자신이 백인우월주의자인지 모르는 유색인종들, 자신이 남성우월주의자인지 모르는 남자들, 자신이 남성우월주의자인지 모르는 여자들, 자신이 아동성애자인지 모르는 교사들, 자신이 동성애자인지 모르는 이성애자들, 자신이 이성애자인지 모르는 동성애자들, 장애를 자격으로 세분화시키는 비장애인들, 자신이 파시스트인지 모르는 민주주의자들, 자신에게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로 결함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지식인들이 머지 않아 자의식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미소 짓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술이 역사를 저만치 앞질러 따돌리면서 인류의 무의식이 영영 봉합되는 걸 보았습니다. 사람들의 자격지심이 거인과 난쟁이와 파충류의 기형적인 조합을 이루는 것을 보았고, 자살이 주권이자 무기가 되는 것을 보았고, 누구나 고아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 진심이거나 진지한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가상현실의 도래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