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그림 속의 거울 속의 그림
Fountain 샘
마르셀 뒤샹
by
곡도
May 24. 2020
Fountain 샘 / Marcel Duchamp 마르셀 뒤샹 (1917)
우리는
(제일 좋은 옷은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품위를 유지하고서
의도적으로 거세된 공간에 대한 성적 긴장감을 느끼며
예술품이라고 명명된 무언가를 구경하러 미술관에 간다.
오늘은 예술가들이 어떤 잘난 척을 하면서
세상에 널리고 깔린 천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자신들의 시덥지않은 트라우마를 강요할까
재미난 구경을 할 생각에 우리들은 제법 기분이 좋다.
그런데 하얀 방 한가운 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건 고작
변기 하나.
(아,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자세히 보니 남성용 변기.
(물론이지. 모든 예술가는 남자니까.)
그리고 짐짓 '샘'이라는 문학적 제목.
(최소한 '변기'라는 제목을 붙일 만큼 냉담하진 않네.)
게다가 그 위에 보란 듯이 휘갈긴 싸인 까지.
(이걸로 이 변기는 몇 만배 비싸게 팔 수 있겠어.)
그런데, 그 다음에는 어쩌라는 거지?
세상에 널리고 깔린 천치 중에 하나인 우리는
예술가가 의도했던 정확히 그대로 당황스럽다.
하나. 가만히 보니 이 '작품'의 곡선이 제법 아름다워.
은은한 광택이 도는 하얀색은 진주빛이고
부드럽게 감싸면서도 도발적인 형태 감각을 가졌네.
사물에게는 사물을 돌려주고, 우리에게는 미학적 순수함을 돌려주는구나.
하나. 만약 변기를 쓰지 않는 다른 문화권에서 처음 변기를 봤다면
분명히 물이 솟는 '샘'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기꺼이 입을 대고 마셨을테지.
이건 고착된
문화적 편견에 대한 지적이자 천진한 인식론을 지향하는
일종의 사실주의, 낭만주의,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인 거야.
하나. 놀랍게도 이건 정말 그냥 변기인지도 몰라.
왜 이게 정말 그냥 변기냐면ㅡ 이건 정말 그냥 변기니까.
정말 그냥 변기를 정말 그냥 변기라고 부르면 안되는 거야?
우리가 정말 그냥 소시민적이고, 정말 그냥 무
식하며, 정말 그냥 불감증이라는 걸 감추기 위해?
우리는 주변을 둘러 본다. 마침 주변에 아무도 없으므로
(누가 있어도 상관 없지만 원래 예술이란 사적인 것이므로)
우리는 '이것'에게 힘차게 소변을 갈긴다.
(물론이지. 모든 관객은 남자니까.)
그리고 우리는 도망가야 하나, 아니면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자랑해야 하나
조금 갈등을 느낀다.
누가 아나? 어쩌면 작가는 웃음을 터뜨릴 지도 모른다.
(비로서 작품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혹여 작가가 화를 낸다면?
그 때는 관객인 우리가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휴, 고작 변기에 오줌 싸는 일에 이토록 가증과 피로를 느껴야 하다니...)
keyword
예술
그림
감상
6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곡도
창작 분야 크리에이터
곡도의 브런치입니다. 소설, 희곡, 연극 감상, 에세이 등을 쓰고 있습니다.
팔로워
65
제안하기
팔로우
매거진의 이전글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무덤 속의 죽은 그리스도 시체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