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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ul 23. 2024

불면증 (5)





     “이거 참. 너무하네.”

     현태의 맞장구에 민규는 더욱 기세가 등등해져서 목청을 높였다.

     “아, 씨팔, 정말 사람을 뭘로 보고……. 밤낮 없이 부려먹더니 이렇게 하루아침에 내쫒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이건 분명 뭔가가 있는 거라구요. 얼마 전에 사장하고 사장 마누라 하는 얘기를 들으니까 사장 마누라 조카가 일없이 백수로 놀고 있다던데, 그 놈한테 내 자리를 준 건지도 몰라요. 아니, 어쩌면 다른 직원 놈들이 사장에게 나에 대한 험담을 지껄였을 수도 있구요. 사실 짚이는 놈이 하나 있거든요. 경리 새끼 하나가 이유도 없이 절 그렇게 갈구더라구요. 남해 어디 섬에서 올라왔다는데 깡촌놈인 주제에 뒤에서 남 흉이나 보는 비열한 새끼에요. (그는 결국 주스 캔 안에 침을 탁 뱉었다.) 내가 더러워서. 사실 따지고 보면 사장이 제일 한심한 인간 아닙니까? 게으르고 약삭빠른 놈들은 다 놔두고 나를 자르는 걸 봐요. 그딴 식으로 하는데 사업이고 뭐고 잘 될 리가 있겠냐구요. 씨팔, 하긴 이제 사장이 망하던 말든 내가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나도 그 거지같은 가게에서 오래 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민규는 분통이 터지는지 담배 필터를 질근질근 씹으며 씩씩거렸다. 반면에 나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감탄을 거듭하고 있었다. 별 볼일 없는 배달 직원 자리 하나를 두고 뭐가 이리도 치열하고 심각하단 말인가.

     “한 번 사장한테 가서 속 시원하게 따져보면 어때요?”  

     “그럼 분명히 그럴 듯한 핑계를 만들어 붙이겠죠. 뻔해요. 고객들한테 자꾸 불만이 들어온다느니, 내가 다른 직원들과 원만하게 지내지 못한다느니, 지각이 잦다느니. 다 헛짓거리에요. 내 꼴만 우스워질 겁니다. 진짜 웃긴 게 뭔지 알아요? 3달 전만 해도 열심히 하면 정식 직원으로 채용해 주겠다고 했었다구요. 그래서 새벽부터 한 밤중까지 몸 사리지 않고 뛰어다녔는데 갑자기 이 지랄이란 말입니다. 이건요, 분명히 뭔가 있는 겁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구요. 뒤로 구린, 뭔가, 그러니까 이건, 분명히…….”

     그는 얼굴이 벌게져서 입을 우물거렸다. 현태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음모죠.”

     “아, 예, 맞아요. 음모, 음모죠. 그렇죠?”

     하지만 막상 그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자 민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무래도 현태가 너무 거창하고 허무맹랑한 단어를 끌어다 붙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놀림감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또 너무 속없이 바닥까지 들어낸 게 아닌가 싶어 언짢아진 민규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짜고짜 문을 열어젖히고는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가게 밖으로 내던졌다. 꽁초는 핑그르르 날아가더니 보도블록 바닥에 부딪히며 붉은 불티를 날렸다.  

     “저,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요. 제가 사장님 바쁜 시간에 쓸데없는 말을 너무 오래 떠든 것 같네요. 신경 쓰지 마세요. 어쨌건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부자 되세요.”

     민규는 건성으로 인사를 마치더니 서둘러 트럭에 올라타고 차를 출발시켰다. 현태는 트럭이 사거리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서 있다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늘 그렇듯 가게 안은 밤사이 식물들이 뿜어낸 습기와 끓는 물에 시금치를 대칠 때 나는 것 같은 눅눅한 엽록소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문을 활짝 열어 놓고는 코트를 벗고 청록색 앞치마를 몸에 걸치고 가게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밝은 레몬 빛 미색으로 칠해져있는 네모반듯한 그의 가게는 화초와 꽃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서 모서리라고는 없는 둥그런 동굴 속 같았다. 그는 큰 이파리들이 꺾이지 않게 조심하면서 새로 들어온 대형 화분들을 가게 안쪽으로 옮기고 그보다 작은 화분들은 그 앞쪽에 배치했다. 포터와 그 밖의 미니 화분들은 쇼윈도에 마련된 판매대 위에 풍성하게 늘어놓았다. 떨어진 잎이며 흩어진 흙 쪼가리들을 말끔히 쓸어내고 나자 시간은 막 아침 9시를 지나고 있었다. 어느새 가게 앞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그는 열어 두었던 문을 닫고 히터를 켰다. 그리고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아 마분지 종이 상자를 끌러 놓고 생화를 다듬기 시작했다. 꽃을 한 송이씩 들고서 죽은 잎을 떼어내고 줄기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물이 담긴 통 속에 넣는 일이었다. 생화는 손질을 잘해두어야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싱싱한 상태로 팔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귀찮지만 중요한 작업이었다. 그는 노란색 장미 이파리를 기계적으로 다듬으며 아까 자신이 민규에게 했던 말을 되짚어보았다. 음모. 왜 갑자기 음모라는 단어가 튀어나왔을까.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낯 뜨거울 정도로 거창한 단어여서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사람의 관계는 첫인상 보다 마지막 인상이 더 중요하다는데 민규에게 그는 좀 엉뚱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긴, 그래 보았자 오늘이 지나기도 전에 민규는 현태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테지만.  

     그 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갈색 양복을 차려 입은 수철이 성큼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형님, 뭐하세요? 으아, 꽃 냄새가 진동하는 걸 보니 오늘 배달 차가 왔었나 보네. 여기는 언제나 냄새가 좋다니까. 기분도 좋아지고. 바깥하고는 완전히 딴 세상 같아. 나 커피 한 잔 줄래요?”

     그는 현태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구석에 놓인 탁자로 걸어가 스스로 전기포트에 물을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형은 커피 마셨어요? 안마셨으면 한 잔 줄까?”

     “그래, 나도 한잔 줘.”

     수철은 낱개 포장 되어 있는 인스턴트커피를 종이컵 두 개에 하나씩 쏟아 부었다. 그리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내내 들리지도 않는 음악의 리듬이라도 타는 것처럼 연신 몸을 건들거렸다. 그런 그의 태도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거나 질색하게 하는 극명한 첫인상을 남겼다. 현태 역시 처음에는 수철에게 질색했던 사람 중 한명이었다. 수철과 현태가 처음 만났던 건 3년 전 가을로, 아직 여름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10월의 정오 무렵이었다. 수철은 콩고물이 가득한 시루떡 2개를 은박 접시에 담아 들고 불쑥 그의 가게로 들어왔다. 수철은 그 당시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몸매가 들어나게 딱 붙는 양복을 입고, 머리는 모델들이 하듯이 무스를 잔뜩 발라 한쪽으로 몰아 넘긴 모양새였다. 얼굴은 어딘지 야비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는데 그건 단지 그와 닮은 배우 하나가 연속극에서 주로 야비한 역을 맡았던 탓이었다. 자세히 보면 실상 그의 눈빛은 좀 멍한 구석이 있었고 커다란 입은 늘 실실 웃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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