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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해부학 (50)

로버트 버턴

by 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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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jpg 악덕과 덕의 우화 by Giotto (1306)


그림 : 첫 번째 줄 왼쪽부터 신중함, 강인함, 절제, 정의, 믿음, 자선, 희망

두 번째 줄 왼쪽부터 절망, 질투, 우상 숭배, 불의, 분노, 변덕스러움, 어리석음




( 역자 - 라틴어는 명조체로 진하게 표시합니다. )




SBUS. X.


이해력에 대하여



"이해력은 정신의 힘으로써, 이를 통해 우리는 구체적인 것에서부터 보편적인 것까지 지각하고, 알고, 기억하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명료하고 선천적인 지각을 가지며, 기술을 발전시키고, 자기 자신을 판단하고 검토해 봄으로써 숙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의에 비추어 볼 때 (파악하는 주요 임무 외에도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을 어떤 도구나 기관의 도움 없이 판단합니다) 사람과 짐승 사이에는 세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첫 째, 감각은 각각을 단편적으로 파악하지만 이해력은 보편적으로 파악합니다. 둘째, 감각은 타고난 지각이 없습니다. 셋째, 짐승은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벌은 뛰어나고 기발한 작업을 해내며 다른 생물들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작업을 마쳤을 때 그들은 그것에 대한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경우 대상이 신, 존재, 모든 자연, 무엇이 되었든 간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순서에 따라 파악하지요. 이해력을 가능케 하는 첫 번째 것은 어떤 감각적인 것입니다. 종합적인 인식 후에, 정신은 물질적인 실체를 파악하고 거기에서 영적인 것을 발견합니다. 이해력의 활동은 (사람들이 말하길) 이해, 구성, 구분, 종합, 추론, 기억이며, 어떤 이들은 거기에 창조와 판단을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구분은 파악, 작용, 대상입니다. 사색과 실용, 습성과 활동, 단일함과 혼합으로도 나눌 수 있습니다. 스승 없이 스스로 창조하거나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작용은 인간의 기지, 통찰력이나 예민함, 창조의 예리함으로 불립니다. 그것은 그 관념에서 인식할 수 있는 것들을 발췌하여 심사숙고를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해력은 감각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이러한 작용은 감각으로부터 생긴 관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판단이 되면 그것을 수용해서 유지시킵니다. 작용은 의사이자 교사이며, 신중한 학자인 것이죠. 그리고 그것의 직무는 맡겨진 것들을 보관하고 더 잘 판단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날 것으로 기록된 목록과 같아서 모든 형태와 관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관념은 두 가지로써 활동과 습성입니다. 활동을 통해 우리는 사물을 인식하고 파악하며, 습성은 우리가 원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영속적인 빛들이자 관념들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그것을 여덟 가지로 꼽습니다. 감각, 경험, 지성, 믿음, 의혹, 오류, 의견, 체계. 여기에 기술, 신중함, 지혜를 더하기도 합니다. 보편 인식, 이성의 명령, 양심이 포함되기도 하구요. 그렇게 총 14가지의 이해력이 있는데, 그중 일부는 마지막에 언급된 세 가지처럼 타고난 것이고, 나머지 다른 것들은 원칙, 학습, 그리고 실행을 통해 습득된 것입니다. 플라톤은 모든 것이 타고난 것이라고 말하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적인 습성을 다섯 가지로 판단합니다. 그중 두 가지는 신중함처럼 실용적인 것으로 그것의 목적은 실천이고 제작입니다. 지혜란 모든 관념과 습성을,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사용과 실험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구분은 (만약 그것이 옳다고 간주된다면) 모두 앞의 설명과도 일치됩니다. 세 가지는 타고난 것이고 다섯 가지는 획득한 것이며, 나머지는 부적절하고 불완전하기에 더 엄격하게 검사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나는 더 충분히 설명해야 하지만 나의 주제에서는 벗어나기 때문에 나는 그중에서 이어지는 담론에 필요한 세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보편 인식①, 즉 양심의 순수한 부분은 타고난 습성이며 "선과 악을 알기 위해서 행하는 신과 자연의 법칙에 대한 지식의 대화"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그것은 의지보다는 이해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실질적인 삼단논법을 통해 주요 명제를 만듭니다. 이성의 명령은 우리에게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하라고 권유하는 것으로써 삼단논법에서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양심은 선이나 악을 판단하고,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비난하며, 삼단논법의 결론입니다. 카르타고인들에게 포로로 붙잡여 로마로 가는데 고통을 겪었던 로마의 레굴루스②의 예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다시 돌아오든지 아니면 자신의 막대한 몸값을 지불하기로 했었죠. 여기서 보편 인식①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의 말, 맹세, 약속은 설사 상대가 적이라고 해도 어김없이 지켜져야 하며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른 것입니다. "당신 자신에게 하지 않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 이성의 명령은 그것을 그에게도 적용하고는 다음과 같은 것을 지시합니다. 레굴루스②, 당신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맹세를 위조하거나 당신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양심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레굴루스②, 당신은 당신의 약속을 잘 이행하고 당신의 맹세를 지키십시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종교적 우울증에서 확인하세요.



SUBS. XI.


의지에 대하여


의지는 이성적인 정신의 다른 힘으로 "사전에 이해력을 이용해서 판단하고 파악한 것을 탐하거나 또는 피합니다." 만약 좋은 것이라면 승인하고 나쁜 것이라면 거부하지요. 그렇게 그 대상은 선한 것 혹은 악한 것이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우리의 이성적인 욕망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감각적으로 욕망을 따라 좋거나 나쁜 것을 향해 움직이고 감각에 의해 지배되고 지시받듯이 이성에 의해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감각적인 욕망은 특정한 대상, 즉 좋거나 나쁜 것을 따릅니다. 이것은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입니다. 좋고 즐거운 것만 솔직하게 추구하지요. 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서로가 자유롭고 다릅니다. 대상을 접한 감각적인 욕망은 그것이 좋은 것에 가깝다면 원하고 나쁜 것이라면 피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유롭습니다. "지금은 많은 것들이 타락하고, 불분명하고, 처음의 완전함과 동떨어지지만, 그 사람의 행위는 여전히 자유롭지요." 사람은 자신의 뜻대로 가고, 걷고, 움직이며 할지 말지, 훔칠지 말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규칙, 숙고, 권고, 조언, 지침, 보상, 약속, 위협, 형벌은 헛된 것이 될 것이고, 신이야말로 죄의 창시자라고 봐야겠지요. 그러나 영적인 일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가 거듭나서 성령으로 인도되지 않는다면) 선이 아닌 악으로 기울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욕정에 의해 부추겨지며, 우리의 능력에는 ἀταξία③, 즉 혼란이 있습니다. "우리의 의지는 신과 그의 법을 회피합니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자연적인 일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열기와 욕망에 의해 욕정으로 곤두박질칩니다.


저항하고 용감하게 맞서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저항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욕정은 근본적으로 악하고, 우리의 마음도 악하며, 우리의 기질은 우리의 의지를 움켜쥐고 강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과 선으로부터 어긋나고, 본성에 의해 그리고 더 나쁘게도 무지에 의해 사악해지고, 기술, 규율, 관습에 의해 수많은 나쁜 습관을 갖게 되는 것은 모두 자발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권세를 부리고 폭정을 가하도록 우리 스스로 그것들을 더 악화시키는 거죠. 그리고 악마는 우리의 타락한 의지가 고약한 행동을 하도록 만들고 우리를 파멸로 처넣기 위해 그의 사악한 제안을 여전히 손아귀에 쥔 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 신성한 지침과, 우리가 방종한 행로의 모든 생의 과정에 있을 때마다 수없이 우리를 제지하고, 가로막고, 점검했던 성령의 선한 영향에 의해 우리의 의지가 흔들려서 다시 균형을 이루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래서 다윗은 사울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을 때 자신을 바로잡았습니다. 두 명의 격렬한 적대자들 중 한쪽은 복수와 적의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다른 한쪽은 정직, 종교, 신에 대한 믿음으로 자제했습니다.

의지의 행위는 의지가 있는 것과 의지가 없는 것, 즉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두 단어가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자신들이 지시받은 방식에 따라 그것들은 좋은 것이 되거나 나쁜 것이 되며 그들 중 몇몇은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기도 합니다. 비록 스토아 학파들은 그것을 절대적으로 부인하면서 모든 것들은 운명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하지만요. 그렇게 그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저항할 수 없는 숙명적인 필연성을 강요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자유롭다고 말하며, 우연적인 것들은 신의 확정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기에 불가피하고 필연적이라고 말합니다. 의지의 다른 행위들은 그것에게 복종하는 하위 능력에 의해 수행되는데 감각적이고 유동적인 욕망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눈을 뜨게 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하고, 책을 만지지 않게 하고, 정직하거나 거짓으로 말하게 하죠. 그러나 이러한 욕망은 수없이 우리에게 반기를 들기에 명철함과 절제의 목록에 들지 못합니다. 그것은 (내가 말했듯이) 한 때 이성과 잘 일치했고 그 둘은 훌륭한 합의와 조화를 이루었지만, 이제 그것은 약화되었고 때때로 그들은 충돌하며 이성은 열정에 의해 압도당합니다. 마부는 앞으로 내달리지만 말은 고삐에 복종하지 않죠. 수많은 야생마들이 수레를 끌고 도망가는데도 제지당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좋은 것인지 매번 알지만 그것을 행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힘이 나타나 원하지 않는 것을 끌어당기고, 욕심이 겹쳐지고,

마음은 다른 것에 이끌립니다.


욕정이 이것을 제안하면 이성은 저것을 제안합니다. 사람에게는 언제나 저항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싫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싫어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저항할 수 없습니다. 파이드라가 그녀의 유모에게 고백했듯이, 당신이 진실을 말할지라도 나의 열정은 나를 더 나쁜 곳으로 몰고 갑니다. 그녀는 적절하고 진실되게 말했고, 스스로도 그것을 자인했지만, 완고한 열정과 분노는 그녀로 하여금 반대로 행동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다윗⑦도 간통을 저지르는 것이 추악하고, 불결하며, 몹쓸 짓인 줄 알면서도 살인을 저지르고, 다른 사람의 아내를 빼앗았으며, 자신의 욕망을 따르기 위해 이성과 종교를 거슬렀습니다. 이러한 자연적이고 식물적인 힘은 전혀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습니다. "누가 자신의 키에 1큐빗이라도 더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것들이 가능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서 모든 완고한 열정, 마음의 격렬한 동요가 일어납니다. 많은 경우 사악한 습관, 관습, 야생적인 질병이 나타나지요. 우리가 짐승들처럼 우리의 욕망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내어주면서 우리의 성향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주요한 습관은 두 가지로, 미덕과 악덕입니다. 이것들 특유의 정의, 설명, 차이와 종류는 윤리학에서 광대하게 다루어지며 사실상 도덕 철학의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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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ynteresis - 사람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좋은 행동을 결정하는 데 사용하는 양심의 한 측면



2) Regulus - 기원전 3세기 경 로마의 장군으로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인들과 싸웠다. 카르타고인들에게 포로가 되었을 때 그는 포로 교환과 평화 조건을 협상하고 다시 카르타고로 돌아오는 조건으로 로마로 보내졌다. 그러나 로마는 카르타고의 조건을 거절했고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카르타고로 돌아가 그 사실을 알리고 죽임을 당했다. 카르타고인들은 그를 나무통에 넣고 통 전체에 쇠못을 박은 다음 통을 언덕 아래로 굴려 죽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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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ἀταξία - 고대 그리스 말로 무질서, 혼란을 뜻한다.



4) Saul - 사울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초대 군주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르는 등 공을 세우자 사울은 다윗을 신하로 삼았다. 그러나 백성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고,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다"라는 노래까지 부르며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를 바라자 위협과 질투를 느낀 사울은 다윗을 여러 번 죽이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그는 블레셋 왕 아기스의 대공격에 포위되어 자살했고 다윗이 왕 위에 올랐다.


why-didnt-david-kill-king-saul-when-he-had-the-opportunity-21330786.jpg 다윗을 죽이려 하는 사울


5) Stoics - 스토아학파는 그리스 로마 철학의 한 유파이다. 기원전 313년 제논이 아테네로 건너와 창시했다.



6) Phaedra - 크레타와 아테네 사이에서 정략 결혼한 테세우스의 두 번째 아내. 테세우스의 전처의 아들인 히폴리토스를 사랑하여 유모를 통해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냉정하게 거절당하자 그가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는 모함의 편지를 남기고 자살한다. 일설에 따르면 파이드라가 히폴리토스를 사랑하게 된 것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때문이라고 한다. 아프로디테 역시 히폴리토스에게 반하여 구애했지만 히폴리토스는 처녀 신 아르테미스 여신의 열렬한 숭배자로 동정을 맹세했기 때문에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앙심을 품은 아프로디테는 파이드라로 하여금 의붓아들에게 연심을 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내의 죽음과 유서를 발견한 테세우스는 아들 히폴리토스를 저주하면서 포세이돈에게 아들의 죽음을 빌었다. 얼마 뒤 히폴리토스는 해변에서 전차를 몰고 달리다 갑자기 나타난 괴수에 말들이 놀라는 바람에 낙마하여 죽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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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David - 기원전 11-10세기 경 이스라엘 왕국의 제2대 왕으로서 40년 간 통치하였다. 소년 시절 적국인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돌팔매로 죽인 일로 유명하다. 다윗왕은 어느 날 자신의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반하여 그 남편이 전쟁터에 나간 사이에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이에 밧세바가 임신하자 다윗왕은 자신의 죄를 숨기고 밧세바를 독차지하기 위해 위험한 전투에 우리아를 보내 일부러 죽게 한다. 우리아가 죽은 뒤 다윗왕은 밧세바와 결혼하여 첫째 아들을 낳지만 예언자 나단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여 아이는 일주일 만에 병으로 죽고 만다. 이후 밧세바는 둘째 아들 솔로몬을 낳았고 이후 솔로몬은 다윗 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제3대 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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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정신이 생장 기능, 감각 기능, 이성 기능으로 나뉘어 있다는 이론에 관한 언급 같다. 식물은 생장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동물은 생장 기능과 감각 기능을, 사람은 생장, 감각, 이성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9) cubit - 1큐빗은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의 길이로, 약 18인치, 곧 45.72cm에 해당한다.





번역/우울증의 해부/우울의 해부/The Anatomy of Melancholy/Robert Burton/로버트 버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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