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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un 12. 2020

바베트의 만찬

Babette's feast / 바베트의 만찬 (1987)






자고로 집안 노인이 환갑을 맞으면 


아무리 곤궁해도 떡과 고기 등 갖은 음식을 푸짐하게 차리고, 


좋은 누룩으로 빚은 술을 한 독 가득 넉넉하게 받아놓고,


제일 좋은 옷을 입고, 가족 친지들과 친구들, 동네 사람들을 초대하고,


악사를 불러 풍악을 치면서 거하게 먹고 마시며 놀았다. 


평생 처음 해보는 호강에 


노인은 감격해서 눈물이라도 찔끔거렸겠지. 


어쩌면 그것은 허세에서 비롯된 어리석은 사치일지 모른다. 


차라리 그 돈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매일매일 반찬 한 가지라도 더 올렸다면


혹은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베풀었다면


삶이 더 윤택해졌을 거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언제나 옳다. 삶의 외부에서 번쩍이는 자신만만한 충고는. 


그러나 우리의 궁색한 삶에 한 번 정도는 그런 사치를 허락해야 한다.


긴 식사 뒤에 남겨진 음식찌꺼기와 빈 접시가 가득한 식탁처럼


이제 노인의 삶이 그러하고, 곧 깨끗이 치워져 걸레질마저 반질거리겠지만


한 번쯤은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난 음식을 먹고 향긋한 술에 취하고


평생의 친구들과 원수들과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울고 또 웃어야 한다.


모든 슬픔이 별처럼 높이 뜨는 그런 한순간이 


우리의 삶에는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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