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68) - 완결

by 곡도




포장마차를 나와 빌라 앞에 도착한 그는 들어가려다 말고 그대로 화단 턱 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집도 절도 없는 사람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묵묵히 찻길을 바라보았다. 차들은 예리하게 빛을 뿌리며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고 거칠 것 없는 바퀴들은 너무 빨라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현태는 코트 속으로 몸을 깊숙이 구겨 넣었다. 뜨거운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그때 1층에 사는 반장 여자가 묵직한 비닐봉투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빌라로 들어가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현태는 떨리는 손을 뒤로 감추며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아, 오랜만이네요. 근데 요즘 가게 안 나가나 봐요? 계속 집에 있는 것 같던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현태는 탄복했다.

“네, 가게를 넘겨서 좀 쉬고 있습니다.”

“어머, 그래요? 왜요? 꽃가게 꽤 오래 했잖아요.”

“이제 다른 일을 좀 해보려구요.”

“그렇구나. 하긴 남자가 오래 할 일은 아니지. 아직 젊으니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좋죠. 근데 왜 안 들어가고 있어요?”

“그냥, 바람 좀 쐬려구요.”

“아유, 날씨가 이렇게 추워졌는데 무슨 바람을 쐬요. 옷이라도 좀 따듯하게 입고 나오지. 그럼 난 먼저 들어갈게요.”

돌아서던 그녀는 갑자기 목소리에 활력을 띄며 그에게 바짝 다가왔다.

“그런데, 얘기 들었어요?”

“네?”

“저 길 건너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이요.”

“무슨 일이요?”

“아직 몰라요? 오늘 뉴스에도 나왔는데. 어제 새벽에 누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데요.”

“네?”

그는 길 건너 아파트를 치켜보았다. 노란 가로등 불빛 위로 새까맣게 솟아있는 아파트 건물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무심하고 단단하기만 했다.

“그게 누군데요?”

“저도 모르죠. 듣기로는 403동이라던데.”

“403동이요?”

“그러니까요. 403동이면 바로 앞에 보이는 저 동이잖아요. 아유, 소름 끼쳐. 안 그래요?”

“네에.”

“자기 집 창문에서 뛰어내렸데요. 독하기도 하지. 어떻게 자기 목숨을 자기가 끊나 몰라. 죽을 용기로 죽을힘을 다해 살생각은 않구.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사람들은 너무 끈기가 없어요. 자기 뜻대로 안된다고 그냥 확 죽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니까. 그런데 자기만 죽으면 다예요? 가족들은 어쩌구요. 동네 사람들한테도 이만저만 피해가 아니잖아요. 본인이야 죽으면 편하겠지만, 어쩜 그렇게 이기적이래요.”

과연 죽음을 ‘편해졌다’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어야 했던 사람에게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게 마땅한가? 그렇다. 마땅하다. 그는 죽었고 이들은 살아있으니까. 살아가야 하니까.

“몇 시쯤 그랬대요?”

“새벽 2시에서 3시쯤이라는데 발견된 건 아침인가 봐요. 아유, 그 얘기 듣고 하루 종일 어찌나 기분이 뒤숭숭하던지. 옛날에는 몸을 던지려면 멀리 절벽 같은 곳을 찾아가야 했는데 이제는 천지가 다 높은 아파트니, 사는 것만큼이나 죽는 것도 참 편리한 세상이네요.”

반장 여자는 몇 번이나 혀를 차면서 빌라 안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현태는 여자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눈을 부릅뜬 채 건너편 403동을 올려다보았다. 어제 새벽 2, 3시면 현태가 바로 이 자리에 앉아 있었을 시간이었다. 그가 고양이에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이 누군가는 저 수많은 창문들 중 한 곳에서 뛰어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은 뛰어내리면서 한 번쯤 현태를 쳐다봤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 순간 현태가 고개를 들었다면 떨어져 내리고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모르고 지나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몰랐던 것과 모른 척한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때 현태는 21층 창문의 불이 꺼져 있는 걸 발견하고 가슴이 뜨끔했다. 아닌데, 저 방일리가 없었다. 어제 새벽 그가 자러 올라갈 때까지도 저 방에는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혹시 그땐 이미 저 방에 아무도 없었던 걸까? 방이 텅 비어있었던 걸까? 날이 새도록 불이 켜져 있었던 걸까? 그는 손등으로 입술을 부비며 불이 꺼져있는 21층 창문을 노려보았다. 창문들 너머로 저절로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불빛들과 영영 사라져버린 사람들. 그는 당장 길을 건너 21층까지 뛰어올라가고 싶었다. 그리고 문이 열릴 때까지 계속해서 초인종을 눌러대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열리면 그 사람을 붙잡고 묻고 싶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물어야 하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지? 살지 않고 죽어버린 사람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나?

현태는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더듬거리며 미숙의 번호를 눌렀다. 당장 그녀에게 자신의 병에 대해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자신과 함께 살아달라고, 자신을 도와달라고,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싹싹 빌 생각이었다. 앞으로는 좋은 아들이 되겠다고, 제대로 사람 구실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녀를 아끼고 존중하겠다고 약속할 것이다. 현지에게도 마음을 쓸 것이다. 만약 사업 자금이 더 필요하다면 빌라 보증금을 마저 빼어 줄 수도 있었다. 어차피 자신은 미숙의 집으로 들어갈 테니 필요 없었다. 병규에게도 어떻게든 연락을 취해서 단칸방이라도 하나 얻어 줄 것이다. 가끔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부자간의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나눌 것이다. 자, 그럼 결국 모두가 좋아지는 게 아닌가? 자신의 삶이 오직 수치만은 아니지 않은가?

막 핸드폰 너머로 미숙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현태는 길 건너편에서 찻길로 들어서는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다. 회색털이 푸석푸석해 보이는 제법 살이 찐 늙은 고양이었다. 11시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라 아직 많은 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도 고양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검은색 승합차 한대가 아슬아슬하게 고양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현태는 그대로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찻길로 뛰어들었다.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달려가는 그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차바퀴가 굉장한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너무 빠르고, 너무 크고, 너무 단단한 바퀴. 그에 비하면 고양이는 얼마나 작은지. 얼마나 연약한지. 그 피는 또 얼마나 붉고 또 따듯한지. 지금도 온 땅을 돌아다니는 수억만 개의 바퀴들이 수억만 마리의 고양이들을 향해 돌진하고, 그 위로 수억만 명의 사람들이 떨어지고 또 떨어져 내리고……. 순간 현태는 날카로운 굉음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현태가 눈을 떠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댄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경찰관도 두 명 보였다. 아까 얘기를 나누었던 1층 반장 여자도 끼어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현태는 어쩐지 그 사람들 모두가 낯설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그들은 미숙을, 현지를, 병규를, 선영을, 우석을, 정민을, 재황과 오마담과 경애와 토스트 가게 주인을 닮아 있었다. 모두 그를 내려다보며 한 마디씩 하고 있었지만 현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예 귀가 없어진 것처럼 깜깜했다. 그때 푸른 패딩 잠바를 입은 남자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더니 사람들을 향해 무어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는 어느 쪽이냐면 조금은 수철을 닮아 있었다. 순간 그의 목소리가 현태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아, 씨발 글쎄, 이 사람이 갑자기 뛰어들었다니까요. 그냥 다짜고짜 뛰어들었다구요. 아, 자살이라도 할 생각이었나? 아니, 뒤지려면 다리에서 뛰어내리든가 약을 처먹든가 하지 왜 달리는 차에 뛰어드냐고. 그리고 중요한 건 난 저 사람을 치지 않았어요. 닿지도 않았다구요. 보세요. 내 차는 저 앞에 서 있잖아요. 그냥 이 사람이 혼자 놀라서 자빠진 거라니까.”

경찰관이 다가오더니 현태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이보세요. 정신이 들어요? 괜찮아요? 움직일 수 있겠어요?”

그제야 현태는 자신이 찻길 한가운데 대자로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창피하고 당황스러워서 곧바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건 마음일 뿐, 실상 그는 여전히 아스팔트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있었다. 온몸이 쇳덩이라도 된 것처럼 무겁고 차가웠다. 한쪽 팔이라도 들어 올리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심지어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입에서는 침이 흘러내렸다. 푸른 옷의 남자는 계속 언성을 높여댔다.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현태는 그에게 입을 벙긋거렸다. 이건 병 때문이라고, 파킨슨병이라고, 횡단보도가 사라지는 병이라고, 길을 건널 수 없는 병이라고, 그러니 이건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그저 가족에게 연락을 좀 해달라고, 엄마를 불러달라고. 그러나 목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침과 함께 입가로 줄줄 흘러내렸다. 현태는 억지로 눈동자를 굴려 사람들 다리 사이로 찻길을 넘겨다 보았다.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이 난리에 놀라서 다시 오던 길로 돌아갔는지, 아니면 그대로 찻길을 건넜는지, 아니면 차에 치어 길가에 쓰러져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헛것이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것도 헛것이나 꿈인지도 모른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현태의 모습에 경찰은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하며 혀를 찼다. 모두들 푸른 잠바의 남자를 탓하듯 노려보았다. 그러자 남자는 끔찍한 표정을 지으며 현태에게 악다구니를 질렀다.

“이런 씨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아니, 차에 닿지도 않았는데 왜 이러는 거야. 이거 뭐 자해공갈이야? 맞지? 맞는 거 같은데? 틀림없어요. 이거 완전 사기꾼이라니까. 갑자기 차에 뛰어든 것도 이상하고, 치지도 않았는데 혼자 널브러진 것 좀 봐. 저 꼬라지를 좀 보라구요. 이봐요, 당장 일어나지 못해? 어디서 수작질이야? 그렇게 눈만 깜빡이지 말고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말을 좀 해보라고.”

음모. 현태가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다른 어떤 단어가 이보다 더 적당하단 말인가.

그때 하얀색 앰뷸런스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도착했다. 차가 서자마자 뒷문이 벌컥 열리더니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뛰어내렸다. 그들은 현태의 상태를 살피고는 그를 간이침대 위에 올려놓고 능숙하게 벨트로 잡아맸다. 현태는 온몸이 꽁꽁 묶인 채 앰뷸런스 안으로 실려 들어가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까만 밤하늘에는 회색 구름 두어 점이 떠있고, 낯설고도 낯익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기웃거리고, 반장 여자는 경찰관에게 현태에 대해 떠들어대고, 푸른 패딩 잠바의 남자는 목격자를 찾느라 여념이 없고, 21층 창문의 불은 여전히 꺼져있었다.

마침내 문이 닫히고, 앰뷸런스는 거창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빠른 속도로 밤거리를 달려갔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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