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를 넘기고 난 뒤, 현태는 매일 밤 새벽까지 창문으로 망을 보다가 다음 날 오후 늦게까지 늦잠을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다리가 불편해서 층계를 오르내리기 힘들 때면 아예 길가에 나와 밤을 새울 때도 있었다. 그는 아무리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이 일만큼은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그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고,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와중에도 고양이는 계속해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꿈속에서도 길가에 나와 보초를 서곤 했다. 꿈속에서마저 어둡고 긴 밤이 이어졌다. 도로는 까마득히 넓었고 고양이들은 사방에서 불시에 튀어나왔다. 그때마다 그는 차도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뛰어들곤 했다. 나중에는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꿈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노란 호랑이 무늬에 한쪽 뒷발만 까만색이던 고양이를 쫓아냈던 게 어제였던가, 그제였던가, 아니면 꿈이었던가? 굳이 분간할 필요는 없었다. 현실에서도, 꿈속에서도, 밤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차들은 끊임없이 지나가고, 다른 듯 비슷비슷한 고양이들이 계속해서 건널목을 가로질렀다. 눈앞의 고양이가 실제 고양이인지 꿈속의 고양이인지도 모른 채 그는 허둥지둥 차도로 달려들곤 했다.
현태는 오늘도 오후 4시가 지나서야 어슬렁어슬렁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씻지도 않고 소파에서 뒹굴 거리며 텔레비전을 보았다.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보니 아픈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평등하고 야심 찬 사회에서는 오직 병자들만이 게으를 권리가 있었다.
오늘은 괜찮나 싶더니 어김없이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약 먹기 전에 뭘 좀 먹어 두기 위해 냉장고와 찬장을 뒤졌지만 하나같이 텅 비어있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빈속에 약을 털어 넣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잠깐 졸았던 모양이다. 목과 어깨 뒤쪽의 신경을 갉아내는 것 같은 불쾌감에 현태는 눈을 떴다. 이 이질감은 익숙해질 줄을 몰랐다. 그는 침대 곁에 놓아둔 쓰레기통에 연신 침을 뱉어 가며 이를 악물었지만 결국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신음 소리를 내는 건 여전히 창피했다. 파킨슨병 자체보다 이 고통이 더 혐오스러웠다. 그러나 이 고통이야말로 이제 그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현실 감각이었다. 고통 외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고통 외에 그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고통 외에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오직 고통 속에서만이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는 약기운이 돌아 몸을 움직이기 수월해지자 끼니를 때우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초겨울 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현태는 잠바 깃을 잔뜩 치켜올리며 무엇을 먹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입맛도 없었고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이럴 땐 오히려 맵고 자극적인 음식이 당기기 마련이었다. 그러고 보니 ‘매운맛’이란 실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지. 통증도 결국 익숙해지면 맛이 되는 걸까?
그는 근처 포장마차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비위생적이고 조미료로 범벅이 된 길거리 음식에 손사래를 쳤을 테지만 그는 이제 그런 걸 따질 의욕이 없었다. 게다가 며칠 전 뉴스를 보니 MSG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근거 없는 루머라지 않나. 이제껏 어떤 과학자도 MSG의 유해성을 명쾌하게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MSG가 들어간 음식을 피하기 위해 퍽이나 전전긍긍했던 그로서는 힘이 탁 풀리는 소식이었다. 이러니 신경을 곤두세워가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고, 공들여 기준을 세우고, 어떻게든 실천하려고 애쓰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같은 걸 두고도 어제는 좋다 하고, 오늘은 나쁘다 하고, 또 내일은 좋다고 할 것이다.
현태는 포장마차에서 순대와 매운 우동을 주문했다. 짭짤하고 뜨끈한 음식이 입에 들어가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소주도 한 병 시켜서 한 잔씩 들이켜다 보니 그래도 아직까지는 사는 게 영 재미없지만은 않았다. 현태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현지에게 계좌번호를 물어볼 요량이었다. 전에 부탁받았던 돈을 입금해 주기 위해서 말이다. 선영에게 받은 돈을 근 한 달간 움켜쥐고 있었지만 돈이 급해 발을 동동 구르는 현지를 두고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말라 터진 입술을 연신 혀로 훔쳐가며 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현지의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내일 통화해도 상관없었지만 현태는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은 조급함에 - 게다가 그는 꺼져있는 전화기를 견딜 수 없었다 - 우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예, 형님. 안녕하세요.”
“어, 잘 있었지? 저기 다른 게 아니라 혹시 현지하고 같이 있어? 현지 핸드폰이 꺼져 있길래.”
“아아, 현지는 지금 누구 좀 만나러 나갔는데요. 빠떼리가 얼마 안 남았다고 하더니 꺼졌나 봐요.”
“그래? 그럼 매제한테 얘기하지, 뭐.”
“아, 예, 말씀하세요.”
“예전에 현지가 돈 얘기를 했었거든. 학원 때문에 말이야.”
“네에.”
“내가 얼마 전에 가게를 처분해서 이제 돈이 좀 생겼어. 보증금하고 권리금하고 해서 7천만 원 정도 되더라고. 계좌번호 문자로 보내. 내일 오전에 입금해 줄게.”
“형님, 뭐라고 말씀드려야 될지……. 정말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돈 문제 때문에 현지도 저도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 살았습니다.”
“하여간 잘해봐.”
“예, 열심히 해야죠. 이렇게 도와주시는데. 진짜 열심히 해서 형님 돈부터 갚을게요.”
“그래, 돈 많이 벌면 좋지. 그럼 들어가 봐.”
“저기, 형님.”
핸드폰 너머로 머뭇거리는 낌새가 느껴졌다.
“현지는 나중에 말씀드리자고 했는데, 어차피 곧 아시게 될 테니까 그냥 지금 말씀드릴게요. 실은 현지하고 저하고 미국 생활 정리하고 들어온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어요.”
“그게 뭔데?”
“사실은, 현지가 아기를 가졌어요.”
“아기?”
현태는 깜짝 놀라 그만 테이블을 발로 걷어찼다. 술잔에 남아있던 술이 왈칵 철제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아기를 가졌다고? 임신했다고?”
“네. 아기가 생겼다는 거 알고 바로 귀국 결정한 거예요.”
“그런데 왜 어른들한테는 얘기를 안 했어?”
“지우라고 하실까봐서요.”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다시 우석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거기서 아이를 낳아 키울 형편도 아니었어요. 어른들 모두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지만 저희를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현태는 불현듯 공기가 부족한 것처럼 숨이 차올랐다. 그는 헉헉거리며 핸드폰을 고쳐 잡았다.
“후회하지 않겠어?”
“네?”
“애한테 책임을 씌우지 않을 거야?”
“네?”
“너 때문에 내 인생을 희생했다고, 망쳤다고, 네 잘못이라고, 애를 탓하지 않겠느냔 말이야.”
현태의 우격다짐에 우석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아차 싶어 현태가 말을 돌리려는데 핸드폰 너머에서 차분히 가라앉은 우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실은 전부터 돌아오고 싶었어요. 그런데 용기가 없었어요. 그냥 포기하기에는 나 스스로도 남들에게도 부끄러워서요. 그런데 어떻게 아이를 탓할 수 있겠어요. 오히려 우유부단한 제가 빨리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이한테 고마울 뿐입니다. 얘가 제 엄마 아빠 정신도 차리게 하고, 또 낯도 세워준 셈이죠. 현지하고도 그동안 많이 다투고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사이가 더 좋아졌어요. 소중하게 잘 키울 겁니다.”
담담한 우석의 말에 현태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람이 태어나는 건 누구의 잘못일까? 사람이 죽는 건 또 누구의 잘못일까?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려고 사는 걸까, 잘못을 만회하려고 사는 걸까. 결국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가 저지른 그 수많은 잘못들은 또 어떻게? 현태는 자신의 잘못도 우석에게 털어놓고 싶어졌다. 저기 말이야, 나 파킨슨병에 걸렸어. 뇌 신경계에 이상이 생겨서 신경세포가 점점 소멸하는 병이래. 왜 걸렸는지는 모르겠어. 여하튼 고치기 힘들데. 평생을 파킨슨병 환자로 살아야 되고, 잘못하면 치매나 전신마비가 올 수도 있데. 하지만 꼭 절망적인 건 아냐. 관리만 잘하면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거야. 병원도 열심히 다니고 있고 약도 꼬박꼬박 먹고 있으니까.
하지만 벙긋이 입을 벌리던 그는 도로 입을 다물었다. 용서받기에는 자신의 죄가 너무 큰 것 같았다.
“그래, 애기 아빠 된 거 축하해. 현지한테도 축하한다고 말해 주고. 애기 생각해서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하라고 해. 그럼 현지한테 내일 입금해 주겠다고 전해 줘.”
“네, 그럴게요. 이따가 전화드리라고 하겠습니다. 형님, 진짜 고맙습니다. 나중에 현지하고 제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태는 전화를 끊고 잠시 동안 어쩔 줄을 몰랐다. 이제 곧 새 생명이 태어날 것이다. 이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아이가 구태여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 겪으면서 이 모든 것을 또 이어나갈 것이다. 이 세상은 도무지 끝나지 않는 걸까? 기뻐해야 하는 걸까? 애석해해야 하는 걸까?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 그는 마음이 무거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