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66)

by 곡도



그때 누군가 가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현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제 풀에 손님이 돌아가길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꼼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방이 계속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그는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유리문 밖에는 놀랍게도 선영이 서 있었다.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던 그녀를 불시에 마주하자 현태는 명치를 세차게 얻어맞은 것처럼 숨이 막혔다. 그는 뻣뻣해진 손으로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차분하게 인사했지만 현태는 얼떨떨해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좀 앉아도 될까요? 저기,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아, 네.”

두 사람은 어정쩡하게 소파에 앉았다. 다행히 오늘 그의 손은 별로 떨리지 않았다. 그나마 조금 떨리는 것도 병 때문이 아니라 너무 긴장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 때문에…….”

현태는 말끝을 잇지 못했다. ‘혹시’ 하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라 그는 가혹할 정도로 무방비였다. 그녀의 손짓, 숨소리, 눈빛 한 번이 수만 개의 바늘처럼 그를 찔러댔다. 그는 그녀가 단 한 마디라도 하기 전에 그만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그녀가 한 번 더 되풀이해서 말했다.

“네.”

현태는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았다.

“저기, 이제 와서 염치없이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녀 역시 말끝을 흐렸다.

“말씀하세요.”

그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며 재촉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미래가 그의 머릿속에서 구겨버렸던 종이가 펴지듯이 펼쳐졌다.

“여기 꽃집 내놓으셨잖아요.”

“네?”

“저, 이 꽃집 말이에요, 부동산에 내놓으셨잖아요.”

“아, 네. 네에.”

“혹시, 제가 인수받으면 안 될까요?”

현태의 한쪽 콧구멍에서 쉰 바람이 피시식 새어 나왔다. 주먹만큼 커다랗고 묵직한 것이 목젖을 긁으며 도로 뱃속으로 떨어졌다. 다시 조그맣게 쪼그라든 그 빈자리로 되직한 두통이 밀려들었다.

“이 꽃집을요?”

“네, 미안해요. 이런 말씀드린다는 게 염치없다는 건 알지만……. 평소부터 이 꽃집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거든요. 고민 많이 하다가, 한번 부탁이라도 드려보려고 왔어요.”

그는 거품이 터지는 소리를 내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더 치사한 기분이 들는지 그녀가 더 치사한 기분이 들는지 알 수 없었다.

“안될까요?”

그는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지만 어쨌거나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따지고 보면 굳이 그녀에게 넘기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솔직히 매몰차게 거절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그는 너무 피곤하고 지겨웠다.

“뭐, 안될 건 없죠.”

“정말요? 아, 감사해요. 제가 너무 제 욕심만 차리는 것 같아 죄송해서……. 그렇지만 현태씨가 이해해 주실 거라고 믿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감사하죠.”

“그럼 저기, 권리금에 가자제 값까지 다 포함되어 있는 건가요?”

“에어컨, 가구, 부자재까지 일체 포함입니다. 필요 없으신 건 계산에서 빼드릴게요.”

“아니, 저는 이대로 다 쓰고 싶은데요.”

“네, 그러셔도 되구요.”

“그럼, 가게는 언제 양도하는 게 좋으시겠어요?”

“솔직히 저는 오늘 당장이라도 좋습니다. 어차피 가게 문도 닫아 놓을 거라서요. 선영씨도 괜히 손님들 떨어지기 전에 빨리 시작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은 1시간가량 지극히 실무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분들과 부자재들의 단가, 도매 집 연락처, 가게 이름을 그대로 쓸 것인가 등등에 대한 것들이었다. 의논은 아무런 이견 없이 마무리됐다. 그들은 곧바로 같은 건물에 있는 부동산 업자를 불러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이 끝난 후 부동산 업자가 돌아가자 선영은 현태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고마워요. 이렇게 제 사정을 봐주실 거라고는 사실, 생각하지 못했어요. 너무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돈은 이따 4시까지 입금해 드릴게요.”

“그러세요.”

그리고 두 사람은 서먹하게 입을 다물었다. 현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선영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두 손만 비비고 있었다. 현태는 그녀의 작은 손을 멀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선영씨 가게니까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버세요. 아무래도 꽃집은 여자분이 하는 게 더 낫죠. 손님도 여자분들이 더 많기도 하고, 아무래도 더 세심하고 친절하시니까, 저보다 잘하실 거예요. 걱정 마세요. 처음에는 좀 힘들겠지만 금방 익숙해질 겁니다. 일 년 중에 기념일만 잘 준비하셔도 괜찮을 거예요. 자, 그럼, 내일부터 바빠지실 텐데 이만 들어가 보세요.”

“정말 감사해요.”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한 선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멈칫거리더니 돌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따라 일어나던 현태 역시 얼떨결에 다시 주저앉았다. 그는 이제 정말 짜증이 나려고 했다. 너무 피곤해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선영이 입을 열었다.

“제가 왜 현태씨를 좋아했는지 아세요?”

현태는 선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현태씨는 뭐든지 너무 열심이에요.”

“제가요? 그럴 리가요. 저처럼 게으른 인간도 없는데요. 매사에 쉽게 지치고, 눈치나 보고, 모른 척하고.”

“너무 열심이라 그런 거예요.”

그는 한 번도 자신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에요.”

그가 말했다.

“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열심히 할수록 더 엉망이 돼요.”

선영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종종 가게에 놀러 오세요. 제가 잘하고 있는지 조언도 해주시구요. 저도 현태씨가 잘 지내는지 궁금할 거예요. 꼭 오세요. 아셨죠?”

선영이 현태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그는 자신의 손 위에 얹어진 선영의 하얀 손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손은 염치없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서운하다거나, 분하다거나 하는 마음보다는 벌써 이 모든 게 추억처럼 아득했다.

“저, 그런데 열쇠는…….”

선영이 물었다.

“열쇠요? 아, 가게 열쇠요? 오늘은 제가 짐을 좀 정리해야 하니까, 가면서 부동산에 맡겨 놓을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저, 몸은, 열심히 치료하시면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무조건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무조건 의사를 믿고 따르는 게 제일 좋데요. 정말 그동안 감사했어요.”

선영은 슬그머니 현태의 손을 놓고는 가게를 빠져나갔다. 그는 곧바로 유리창으로 달려가 코가 눌리도록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서 사람들 틈으로 멀어지는 선영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가 짐을 다 꾸렸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자잘한 집기까지 모두 선영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에 그의 짐은 큰 가방 두 개가 고작이었다. 그는 가방을 양손에 들고 막 해가 져서 어둑해진 거리로 나섰다. 열쇠를 부동산에 맡기고 택시를 잡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다가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가게를 돌아보았다. 미숙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집을 피워가며 시작했던 꽃집이었다. 세탁소였던 이곳을 인수해 꽃집으로 만들면서 무엇 하나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지긋지긋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5년이 넘도록 그는 매일 이곳에서 일해 왔다. 최소한 10년은 더 이곳에 있게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이곳을 빠져나오게 될 줄 알았다면 그 15년 치의 염증을 5년 내내 미리 곱씹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이제 이곳은 내일부터 선영의 가게였다. 그 사실이 현태에게 위로가 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조금은 안심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가끔 먼발치에서나마 이곳을 돌아볼 핑계가 생겼으니까. 아니, 어쩌면 먼발치에서나마 이곳을 돌아 볼 용기마저 잃어버리게 될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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