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오 폰타나
Concetto Spaziale, Attese 공간적 개념 / Lucio Fontana 루치오 폰타나 (1961)
지금은
누구든, 무엇이든, 어디든, 언제든
자기 자신이 되는,
혹은 되어야 하는 시절이다.
그것은 일종의 전문성이다.
그리고 혹은 그러나, 그 이상이다.
꼼짝할 수 없는 좁디좁은 자기 자신 안에서의
무한한 자유.
이미 자기 자신 외에는 무엇도 될 수 없는
될 희망도 능력도 없는 자들과 것들에게 강요되는
순수한 냉담함.
나는 내가 되어야 하고
사물은 사물이 되어야 하고
역사는 역사가 되어야 하고
예술은 예술이 되어야 하고
캔버스는 캔버스가 되어야 한다.
-의, -의한, -을 위한
이 아니라
가장 비민주적이고 가장 비문법적이고
가장 비예술적이고 가장 비인간적으로.
나는 전에 썼던 글에서 잭슨 폴록에게 다소 가혹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생각해 보니 잭슨 폴록이야말로 정통 전통주의자가 아닌가.
그는 2차원의 평면을 존중하였고
시각적 표현(흔적)에 매료되었으며
또한 물감을 숭배하였다.
지나치게 숭배하였다는 것이 문제겠지만
숭배란 본래 그런 것이니까.
심지어 그의 [그림]은 여전히 [환상]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제 작가들은 모든 걸 발가벗기길 원한다.
말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남김없이 깡그리.
가장 기초적인 것을 가장 간단하게
가장 폭력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우리를 구도하려는 듯이.
환상과 희망과 평화와
무엇보다 예술로부터의 구원.
구원? 그래, 그것이 구원이라고 우긴다면.
그런데 우습게도 정작 작가 자신들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마치 털 한오라기 하나 없이 발가벗은 몸에
가장 무겁고 화려한 퍼루크 가발을 쓰고 뽐내듯
예술가라는 영광의 가발을 쓰고
당신은 화가인가요 조각가인가요 라는 질문에
참지 못하고 너털웃음을 터트리면서
삶이 자신을 속이는 걸 방관하면서
뜨겁게 그 삶을 사랑하면서...
아닌 게 아니라
한 개면 충분했을 것을
도대체 애꿎은 캔버스를 몇 개나 찢어발기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