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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un 23. 2020

솔라리스


솔라리스 / Solaris (1972)






만약 이 세상에 유령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남긴 상처일 것이다.


우리의 강한 정념들


사무치는 후회, 끔찍한 연정, 타오르는 욕망, 넘치는 슬픔, 돌처럼 굳어진 외로움이 


작지만 날카로운 손톱처럼 세상에 


(우리에게 최소한 그 정도 힘이라도 있다면)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상처는 부풀어 오르고, 썩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면서


고통과 질문으로 자신의 존재를 세운다. 마치 살아있기라도 하듯.  


만약 이 세상에 유령이 있다면


그들은 어딘가 또 다른 지구에 모여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지옥이라고 부르지만 


불구덩이도 얼음 구덩이도 없이 


그들은 그저 지극히 자기 자신일 뿐.   


아니, 어쩌면 애초에 우리 자신이야 말로


누군가가, 무언가가, 혹은 또 다른 시간이 남긴 


상처인지도 모른다. 


부풀어 오르고, 썩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자신을


숨기고, 모른 척하고, 부정하지만


우리는 그저 지극히 자기 자신일 뿐.


아주 처음부터 


아주 끝까지.


지금 이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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