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세상에 유령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남긴 상처일 것이다.
우리의 강한 정념들
사무치는 후회, 끔찍한 연정, 타오르는 욕망, 넘치는 슬픔, 돌처럼 굳어진 외로움이
작지만 날카로운 손톱처럼 세상에
(우리에게 최소한 그 정도 힘이라도 있다면)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상처는 부풀어 오르고, 썩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면서
고통과 질문으로 자신의 존재를 세운다. 마치 살아있기라도 하듯.
만약 이 세상에 유령이 있다면
그들은 어딘가 또 다른 지구에 모여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지옥이라고 부르지만
불구덩이도 얼음 구덩이도 없이
그들은 그저 지극히 자기 자신일 뿐.
아니, 어쩌면 애초에 우리 자신이야 말로
누군가가, 무언가가, 혹은 또 다른 시간이 남긴
상처인지도 모른다.
부풀어 오르고, 썩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자신을
숨기고, 모른 척하고, 부정하지만
우리는 그저 지극히 자기 자신일 뿐.
아주 처음부터
아주 끝까지.
지금 이 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