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곡도 Jun 26. 2020

오이디푸스 왕 (에디푸스 왕)


Odipus Rex 오이디푸스 왕 (에디푸스 왕)  (1967) 





우리는 절망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절망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운명이란 태생적으로 거창하고


비극이란 예언적으로 화려한데 


개똥밭에서 아무리 나뒹굴러도


우리의 삶은 운명이 아니고 


우리의 고통은 비극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행운보다 불행을 더 질투하는 이유.


우린 더 이상 아버지를 죽이지 않는다.


(내 아버지는 결코 한 나라의 왕이 아니기 때문에.)


우린 더 이상 어머니와 잠자리를 갖지 않는다.


(내 어머니는 결코 고귀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스핑크스는 더 이상 우리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우린 결코 스핑크스의 식욕을 돋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야기 거리가 없는 행복한 족속들.


영웅에게는 꽃다발을 죄인에게는 돌을 던지며


운명과 비극을 구걸하는 천진한 무리들.


어둠을 피해 빛을 향해 모여드는 


하루살이 불나방들.


그러나 어떤 어둠은 빛보다 더 눈부셔서


세상에 빛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우리가 그 풍경을 무심코 영영 스쳐지나갈 때


어리석고 위대한 장님은 그 곳을 네발로 기며 더듬거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솔라리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