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와이어스
Christina's World 크리스티나의 세계 / Andrew Wyeth 앤드루 와이어스 (1948)
이곳이 어디인지 모른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른다.
저 여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대신 이 여자가 크리스티나라는 건 안다.
내용물이 텅 비어있는 얇은 껍질뿐인 이름 하나.
어쨌든 그 얇은 껍질이 하나의 형상을,
하나의 현실을 구성한다.
나이도, 출신도, 얼굴도 없는 여자에게 과분할 정도로 구체적인 이름은
이 그림의 작위적인 추상성을 보완하면서 조롱한다.
우린 사실 크리스티나가 그림 속의 여자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이름 하나와 여자 하나가 있으니
이름이 여자에게, 혹은 여자가 이름에게
속하겠거니 짐작할 뿐이다.
아니어도 그뿐...
막연히 짐작하는 것,
그러나 알 수 없는 것, 딱히 알 필요도 없는 것, 결국 지나쳐 버리는 것, 끝내 잊혀지는 것,
이것이 이 그림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몇 겹으로 싸여있는 외로움이다.
크리스티나.
아마도 이것은 여자의 이름이 아니라 일종의 암호일 것이다.
보낸 사람도 받는 사람도 사라져 버리고
앞뒤가 다 잘려나간 채 정처 없이 허공을 떠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미지의 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