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5, 그래. 아무도 그런 말은 하지 않은 것 같다.
가끔 절규하며 저 조용필 노래를 읊조리면 그나마 기분이 나아졌다. 임신 기간 내내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아이를 어떻게 먹일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분유? 모유? 이 둘을 같이 하는 지옥의 길이라 하는 혼합 수유. 수유 방법의 선택에 대해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 갈등하던 장면을 머릿속에서 돌려봤다. 뜬구름 잡듯 모유와 분유의 장단점을 대충 살피며 남편은 분유를 주면 밤에 육아를 같이 할 수 있으니 분유도 좋다고 이야기했고, 모유는 산모의 살이 쭉쭉 빠지고 아이 면역력에 좋다고 하니 모유도 괜찮을까 싶었다. 선택이 힘들면 그냥 맡기면 되는 법, 나의 몸과 아이에게 맡기기로 했다. 애가 잘 빨고 젖이 잘 나오면 모유, 애가 유두 혼동이 와서 못 빨고 젖도 안 나오면 분유!
출산 이틀 차에 젖이 돌아 유즙이 나왔고, 사흘째 되는 날 가슴 마사지로 초유를 짜냈다. 나는 젖이 나오는 몸이었고, 아이가 먹기에 좋은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관건은 아이가 먹느냐 마느냐였다. 모자동실을 하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데 신기하게도 아이가 젖을 꽉 물었다. 이 작은 2.8킬로그램의 몸뚱이에서 모든 기관 중 입만 제대로 쓸 줄 알기에, 정말 빠는 힘이 어마어마했다. 그렇다. 당첨이었다. 모유 수유를 하게 될 운명으로 가고 있었다.
임신 중에 놀고만 있다는 죄책감을 덜고자 봤던 하정훈과 정유미의 유튜브에서 "모유 수유를 하기 위해서는 조리원에서는 24시간 모자동실을 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모유 수유를 하려면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썸네일을 보고, 워딩이 굉장히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전사라고? 무슨 모유 수유하는데 워리어씩이나 되는가?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나타난 유방 워리어는 모유 수유를 위해 필연적으로 전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유방 워리어는 일단 나와 싸우는 전사가 되어야 했다. 잠을 자고 싶은 욕구와 싸워야 하고, 먹는 텀이 긴 분유 수유를 하고 싶은 자아와 싸워야 했다. 그것을 넘어서서 조리원의 분유 수유 분위기와 싸우고, 인수인계 내용을 늘 무시해서 네 번째로 수유 콜을 놓친 관리사들과 싸워야 했다. (싸우진 않고 원장님께 조용히 건의했다.)
전사는 외로운 법. 유방 워리어는 산후조리원에서 외로운 존재가 되었다. 혼자 방에서 끙끙대며 한 시간 반 동안 아이에게 땀을 흘리며 젖을 먹이고 있을 때, 새 같은 아이는 (욕이 아니다) 새처럼 입을 벌려서 짹짹거리며 젖을 찔끔 빨아먹고, 먹는 것과 동시에 새처럼 오줌과 똥을 쌌다. 외로운 유방 워리어는 아이의 기저귀를 10분에 한 번씩 갈아주고, 5분 먹다 잠든 아이의 귓불과 발바닥을 만지며 깨우고,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벗기며 잠을 깨웠다. 예전엔 3대 100을 (*스쿼트,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의 무게 합) 넘게 치던 강인한 근육이 있었으나, 릴렉신 호르몬이 나오느라 너덜너덜해진 손목과 어깨에 무리를 줘가며 아이를 들었다 놨다 용을 썼다. 심지어 조리원에서는 "아이를 너무 오래 데리고 있어서 엉덩이에 기저귀 발진이 낫질 않네요"라며 관리가 안 되었다고 하루에 다섯 번 이상 데리고 있었던 워리어를 질타했다. 그렇게 조리원을 이틀 일찍 퇴소한 유방 워리어는 젖양과 아이의 먹는 양이 맞지 않아 유선염을 앓아야 했고, 밤도 없고 낮도 없이 두 시간 반마다 한 시간씩 젖을 먹이느라 정신도 온전하지 않았다.
유방 워리어를 계속해야 하는 걸까. 이 생각을 하고 또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완모 (*수유 기간 내내 모유 수유만 하고 분유 보충 및 유축 수유를 하지 않는 것) 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귀여워서"이다. 아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젖이 어디 있는지 알고 찾아 무는 게 대견하다. 똥 색깔이 황금색이 되고 있는 것도, 내 젖만으로 몸무게가 급상승하는 그래프를 그리는 것도, 울다가 젖만 보면 웃는 것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이 얘기도 45일 차, 5킬로그램이 넘었으니 하는 말이지, 그전까지 하루에 300분 이상 젖 물리고 있을 때는 (기저귀 갈고 트림시키는 시간을 포함하면 100분은 추가해야 한다) 아이가 귀여운지도 몰랐고, 요상한 호르몬 작용으로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부담만 느껴져 한없이 슬프기만 했다.
그래서 초반에 힘들어하는 유방 워리어를 위한 모유수유 팁
1.조리원부터 직수하기: 조리원에서는 쉴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아이가 무는 만큼 젖이 나오기 때문에 계속 직접 수유를 해야 젖이 충분히 돈다. 따라서 새벽에도 수유 콜을 받고 분유 보충은 가급적 줄이는 것이 좋다. 이 때문에 조리원을 가느니 산후 도우미를 쓴다는 사람도 있다.
2. 완모를 원하는가: 초반 50일까지는 죽음의 레이스가 되겠지만, 이것도 지나면 아이의 배 크기가 커져서 텀이 늘어난다. 첫 일주일, 첫 한 달만 주변에서 잘 도와주면 완모는 가능하다. 아이가 잘 때 반드시 자야 하는데,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는 자다 깨어 수유를 해도 수유 후 꿀잠을 잘 수 있는 호르몬이 나와서 수면 효율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 죽기 직전의 삶을 살 수는 있다.
3. 신생아 수유 시간: 모유수유 100문 100답에서는 한 달 된 아기 수유 시간이 한 시간이라고 했는데, 나의 경우 두 시간 가까이 된 적도 많았다. 5분 먹고 자면 깨우고 기저귀 갈고 또 5분 먹고 자면 깨우고, 그러면서 아이의 잠과 투쟁해야 했다. 아이는 잘 수밖에 없다. 모유를 먹으면 잠 호르몬이 솔솔 나오기 때문이다.
4. 신생아 깨어 있음 문제: 똑게육아에서는 신생아가 한 시간 이상 깨어 있으면 안 된다는 단정적인 말로 오랫동안 수유를 하는 나에게 죄책감과 불안감을 줬는데, 뭐 깨어 있어도 별 이상 없었다. 충분히 먹어야 잠도 많이 자기 때문에 일단 아이가 자신의 양만큼 먹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5. 젖 잘 나오는 법: 초반에 아이가 한쪽 젖을 5분 빨면 호르몬 작용으로 다른 쪽 젖이 줄줄 (수도꼭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듯) 나온다. 그러면 5분 뒤에 다른 쪽 젖을 먹여서 수월하게 먹일 수 있다. 그래서 양쪽 젖을 충분히 먹이면 된다. 하지만 이 방법은 개인적으로 초반 3주까지만 추천한다. 한쪽 젖을 비우고 다른 쪽을 먹여야 유선염이 안 생기는데, 한쪽 젖이 차 있는 상태에서 다른 젖을 먹이면 울혈이 생길 수 있다.
5. 유선염: 유방외과나 근처 내과에 가서 항생제와 소염제 먹고 나으면 된다. 애한테 먹일 수 있는 약을 지어줘서 계속 수유를 하면서 아이에게 젖을 빨려야 한다. 부루펜 계열은 젖양이 좀 줄 수 있어서 나는 타이레놀 계열로 먹었고, 울혈이 생긴 부분에 아이 턱을 대어서 먹이면 더 빨리 울혈이 없어진다. 따라서 수유 자세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연습한다. 풋볼 자세도 가끔 해주면 좋단다. (나는 유선염 있을 때만 했다.)
6. 수유 패드: 일회용 패드를 쓰다가 다회용으로 갈아탔다. 수유 패드와 유방 크림으로 유명한 회사 것을 잔뜩 샀는데, 10만 원이 넘는 돈이지만 매번 빨아 쓰는 게 맘이 편하다. 아이가 울어도 젖이 나오고, 다른 쪽 유방을 먹여도 젖이 나오고, 젖이 가득 차도 젖이 나오기에 수유 패드는 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생리대처럼 세 시간에 한 번씩은 갈아줘야 한다. 아니면 젖에서 쉰내 나고 세균도 드글드글 번식한다.
7. 수유 나시인가 수유 브라인가: 브라는 젖이 안 돌게 하기도 하고 (실제로 단유할 때 스포츠 브라를 입으라고 한다), 브라로 가슴 아래를 막아놓으면 울혈이 생겨 유선염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수유 나시를 추천한다. 이왕이면 내 몸을 조이지 않을 사이즈로. 생전 처음으로 3XL 사이즈를 샀는데 편하게 잘 입고 있다.
8. 모유 황달 문제: 모유 수유를 하면 황달기가 늦게 빠질 수 있다. 엄마가 O형이면 더 오래 간다고 한다. 조리원에서는 황달기 빼준다고 분유를 엄청 먹였었는데, 뭐 덕분에 황달기를 반 정도 뺀 채로 조리원을 나올 수 있었다. 삐뽀삐뽀에서는 그냥 알아서 다 빠질 문제니 분유 보충 따위는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런데 40일이 지나니 정말 하얘지고 있다. 정말 장기가 성장하면 해결될 문제였던 것 같다.
9. 모유의 재밌는 비밀
-모유는 전유와 후유로 나뉘는데 전유는 탄수화물 후유는 지방이다. 한 수유텀에 아이가 전유만 먹고 잔다고 속상해하지 않아도 된다. 하루에 나오는 젖 양에서 전유 후유가 다 소진된다.
-밤중 수유를 하면 젖이 다 안 차서 말랑한 상태에서 젖을 주는데 그럼에도 아이가 배불리 먹고 잘 수 있는 이유는 후유가 많아 지방을 섭취해서 칼로리가 높고 잠오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나와서 밤에 잘 수 있도록 해준다.
-아들 젖과 딸젖의 양과 성분구성이 약간 다르다. 아들
젖은 딸 젖에 비해 단백질과 지방이 좀 더 많고 호르몬도 약간 다르다고
-모유에는 소독 성분이 있어 구강과 소화시스템을 보호한다.
-모유에서는 아기의 나이와 질병 상태에 따라 다른 성분의 젖이 나온다. 애가 아프면 아이가 필요한 면역 성분을 만든다고 한다.
1년 완모, 2년 완모한 엄마도 아닌 주제에 이렇게 열정적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 초반의 힘듦을 까먹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면 젖을 흘리며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줄 수 없으니.
202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년 완모한 사람이 20~30%라고 한다. 직장 복귀와 집안일 도움 여부, 산모의 컨디션 문제를 모두 합하면 저것도 꽤 높은 수치인 것 같다. 나는 모유 수유를 찬양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분유와 모유의 장단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보가 부족하여 고생하는 나와, 나인 그대들이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그 누구도 모유 수유를 아름답다 하지 않았으나, 내 젖을 먹는 아이는 봐도 봐도 아름답다.
고로 나는 모유 수유를 계속한다.
출처
모유수유 100문 100답(최원령)
느림보 수면 교육(이현주)
베싸육아(박정은)
1세아이 잘 키우는 육아의 기본(이경선 외)
삐뽀삐보 정유미, 하정훈 유튜브
대한모유수유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