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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Aug 24. 2024

제왕절개. 왕보다는 손님.

 D+5, 하지만 진상 손님은 안받아요.

수술대를 걸어 들어간 것도 처음이지만 눈을 뜨고 배를 베이는 것도 처음이었다.

덜커덕, 의사 선생님이 뭔가를 빼려고 내 몸을 흔들자 5초 뒤 고음의 아기 울음소리가 울렸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보다는 오래 울었다. 녹색 천에 둘러싸인 빨갛고 찡그린 표정의 작은 얼굴이 내 옆으로 왔다.


'튼튼아 안녕'

 



D-day였다.

결전의 그날. Decision day 이제 큰 전쟁을 치르는 것인가!

이왕 제왕절개를 하니까 택일을 안 하면 뭔가 나쁜 엄마 같고 그래서 근처에 철학관 중에 가격이 네이버에 투명하게 게시된 곳을 선택해서 날짜를 받았다. 이 날 세시 반 이후에서 일곱 시 반 안에만 나오면 귀인이 된다고.


이 지역 최고라는 명의 선생님과 시간도 맞겠다, 주말도 아니겠다, 디데이로 하기엔 적합한 날짜였다. 하지만 나와 튼튼이에게만 적합한 날짜가 아니었다. 많은 산모들이 이 날짜에 입원을 해서 원하는 병실에 입원할 수 없는 결말이 나긴 했으니.


수술 당일은 움직일 수도 없고 고개를 들면 안 돼서 면회시간에 남편만 아기를 보러 갔다 올 수 있었다. 15분 이상 눈을 뜨고 아빠를 쳐다본 튼튼이를 만난 남편은 고슴도치아빠가 되어있었다. 신생아들 중에 제일 잘생겼다고 갓 태어난 아기가 어떻게 저렇게 똘망똘망한지 모르겠다고 눈코입이 완벽(?) 하다고. 찍어온 동영상을 돌려보고 또 돌려봤다.


마취가 풀리고 시간이 지나니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뭔가 상처도 아픈데 배 전체에 울리는 통증. 무통을 달고 있었지만 별 효과가 없어(효과가 없는 게 아니라 무통을 눌러도 너무 아파서 효과를 몰랐던 거였다) 주사로 진통제를 달라고 하니 '어머 진통제를 맞을 수 있다는 소문이 났나 봐요'라고 간호사가 말했다. '음? 간호사님 원래 아프면 진통제 줄 수 있다고 먼저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쨌든 지금 안 아프게 해 주시는 유일한 분이니 네. 하고 주사를 맞았고 자다 깨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했다.


D+2

둘째 날 미션은 소변줄을 빼면 걷는 것이었다. 그것도 열심히. 자궁은 유착이 되기 쉬운 장기이기 때문에 누워만 있으면 안 된다. 오전, 소변줄을 빼고 진통제 주사를 한번 더 맞고 나서 찢어지는 배를 부여잡고 일어나 걷기를 시작했다. 일어나고 앉고 밥 먹고 화장실에 가는 모든 것이 고통스러웠으나 상상한 만큼은 아니었다. 튼튼이를 신생아실 유리 너머에서 보고 돌아왔다.


D+3

전날 밤에 유즙이 나와서 젖몸살이 오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몸살까진 아니었고 유방이 퉁퉁 불기 시작했다. 오케타니 가슴관리사, 아니 가슴 선생님, 아니 선생님보다 더 한 명칭으로 불러야 하는 그분들. 유방 명장, 가슴 장인덕에 초유도 빼고 가슴도 약간 부드러워졌다. 오후 모유수유시간, 튼튼이를 낳고 이틀 뒤인 이날 처음 안아봤다.


D+4

붓기가 폭발했다. 코리끼 발가락, 소세지 손가락, 그리고 터져버릴 것 같은 유방까지 온몸에 붓기 파티를 하는 것 같았다. 바늘로 찌르면 어디 푸슉 날아가진 못.. 하는 통통한 몸이었으나 어쨌든 붓기 때문에 온몸이 속박당한 기분이었다. 압박 스타킹을 허벅지까지 메고, 배에는 복대를 하고, 가슴은 작은 브라, 그러니까 붓기 때문에 꽉 쪼이게 된 브라를 입고 있어서 온몸이 무언가로 꽁꽁 묶여있는 것 같았다.


'후 앞으로의 내 인생을 의미하는 건가'


짜증이 밀려 올라왔고, 온몸을 두른 천조각들과 붓기로 갑갑했다. 우울하고 화가 나고 언제까지 이러나 싶었다. 육아가 가장 편해질 때가 언제인가요? '임종'이라고 적혀있던 짤이 생각났다.


모자동실시간이 와서 작고 부서질 것 같은 아이를 병실에 데려와서 아이를 보니 임종까진 됐고 어느 정도까진 잘 키워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젖을 물렸고 남편은 마치 훈련병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우린 이제 언제 끝날지

모를 그곳으로 입대를 시작하노라.


D+5

일명 '신속한 퇴원'작전을 해야 했다. 오늘은 퇴원환자가 20명이어서(길일에 태어난 애가 많은가) 퇴원을 위한 수납도 줄을 서야 했고, 신생아실에 퇴원자 명단을 작성하는 것도 줄을 서야 했다. 이놈의 병원은 입원할 때도 병실을 광클릭질하게 하더니 퇴원도 마찬가지구나. 맛집도 잘 안 가는데 오픈런을 여기서 해보다니. 똘똘한 남편 덕에 네 번째 순서를 받아 실밥을 뽑고 퇴원 교육을 듣고 조리원으로 입성했다.




이 돈독 오른 경기도에서 최고로 출산율이 높은 도시의 제일 좋은 산부인과에서의 5일에 대한 제 점수는요..


3점입니다.


1. 자기네들의 약상담센터에서 산 유산균과 비타민D만 신생아실에 넣어주고 상처 치료제와 드레싱제품도 자기네가 파는 것만 수술실에서 발라주게 하는 약팔이 전략

2. 밤에 산모를 보호하겠다는(?) 명목하에 이 장마에 병실 에어컨을 꺼서 찜질방을 만드는 절약 태도(하지만 복도는 시원)

3. 유즙이 나오든 젖몸살을 하든 임산부의 가슴 상태에 대해 잘 모르고, 압박 스타킹을 오래 했을 때 부종으로 인해 물집과 상처가 나는 것을 경고하지 않는 간호사인지 간호조무사들인지 모를 그분들의 전문성

4. 1인실, vip실, svip실, vvip로 -1인실의 등급을 네 개나 둬서 이것도 돈의 격차를 두는 자본주의 정신

이라는 단점들이 마이너스가 됐고


가슴마사지사의 발 빠른 대처로 막힌 유관을 뚫어주고 다소 시크하지만 권위 있는 명의를 만났다는 장점으로 3점 정도를 부여하였다.



'제왕절개'


로마 황제령에서 유래한 말이다. 산모가 아이를 낳다가 사망할 경우 수술로 태아를 꺼내야 한다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이루어진 절개라서 제왕절개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래, 황제 카이사르가 제왕절개로 태어나서 제왕절개라고 불리는 것은 거짓이란다.


아이가 '왕'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말과도 같은 말.


-하지 마, 안돼 라는 말을 '절대' 하지 말고

-갈등에서는 철저하게 아이편만을 들어주고

-급식에서 싫다는 음식을 먹이지 말고


'왕의 DNA'를 가진 아이에게는 저렇게 부모를 비롯한 모두가 시녀처럼 복종해야 한다는 부모는 왕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왕이라 여기지 않는 자신의 고슴도치를. 며칠 처음으로 아이를 안아보고 깨달았다. 내 품 안의 왕은 다른 누군가에게 엑스트라이고 조연이고 npc라는 것,  왕으로 키우면 왕은 철저하게 거지가 되고 사람들에게 외면당한다는 것.


너무 소중하고 예쁘니까 '손님'으로 키우기로 했다.


아이는 왕이 아니다. 내가 곱게 먹이고 재우고 입혀서 세상에 다시 나갈 손님.

나의 분신도 아니고 나의 유일한 업적과 자랑거리도 아니다.

언제가 떠나갈 때 다소 아쉬워하며 손 흔들며 보낼 손님.


그럼 나는 이왕이면 '손님은 왕'으로 대해야 하는 볼품없는 가게가 아니라 손님도 기꺼이 감사할 줄 아는 맛집이나 명품업장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하지 마 안 돼라는 말을 엄격하게 하고

-갈등에서는 시시비비를 가리고 마음 읽기 후엔 훈육을 하며

-싫다는 음식도 한두 번 더 먹이며 엄마가 좋아하는 곱창과 생마늘과 추어탕을 거뜬히 먹을 수 있는


이 귀한 손님을 잘 만났다가 잘 헤어져야지.


빈이,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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