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곡도 Sep 14. 2024

내 아기가 똥을 쌌어

D+52, 녹색똥이냐 노란똥이냐

※더러움 주의※ 

똥 이야기가 잔뜩 들어 있습니다. 비위가 약하거나 노약자, 임산부, 식사 예정이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언니 집에 가면 엄마가 가끔 껙 하며 소릴 질렀다. '아니 니네 형부가 또 변기 물을 안 내렸네.'

형부는 조카가 황금색 똥을 싸면 기저귀에서 그 황금색 똥을 떼어내어 변기에 버리고는 물을 쉽게 내리지 못했다. 그 똥이 너무 예뻐서 보내기가 아깝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기에 똥이 그대로 있으면 그다음에 변기를 이용하는 사람이 황금똥 테러를 당했다. 어쩌다 '아앗 이 똥은 뭐여'라는 소리가 화장실에서 들리면 누군가 형부의 컬렉션을 봤기 때문이었다. 조카의 모든 것을 담고 싶은 형부의 바람대로 하려면 똥 박물관, 귀지 박물관, 코딱지 박물관을 옆 방에 만들어야 했다. 쓰기만 해도 더러워라.


인스타에 똥 게시물을 올리는 이상한 맘들 얘기가 나오면 형부랑 비슷한 사람들이 오버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남들도 자기처럼 자기 애가 예쁜 줄 아나, 하고. 그래서 나는 아이가 태어나면 절대 친구들과의 단체방에 아이사진을 올리지 말고 특히 똥 사진 따위를 찍어 올리는, 뇌 회백질이 줄어든 탓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엄마는 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근데 낳고 보니 아가의 똥은 정말 하나도 더럽지가 않다. 요즘 자주 하는 말은 '남편 이 똥 좀 봐'이다. 또는 '남편 이번 똥은 어때?' 아이가 똥을 싸면 너무나 좋다. 내가 준 젖으로 이렇게 똥을 만든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남편과 나는 아기가 똥을 싸면 둘이 노란색 물똥이 흥건히 묻은 기저귀를 보고 서서 진품명품 평가단처럼 신중한 표정으로 색깔과 질감을 평가하고 양에 대해서 심각하게 토론한다. '이 정도면 한 번 더 나올 분량이야.' '오늘은 좀 묽구먼.' '약간 소화가 덜됐나 본데?' 등등.


매번 봐도 질리지 않는 건 똥을 쌀 때의 표정이다. 그 어떤 때보다 진지하고 열심히다. 얼굴이 빨개지고 입을 아래로 꽉 다물고 양손을 쥐고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저렇게까지 힘줄 일인가. 어떤 유튜버 왈, 필라테스를 할 때 처음하는 사람이 어디에 힘을 주고 뺄지 몰라 얼굴에 힘을 주며 이상한 자세가 나오듯 아기들도 항문의 괄약근을 풀고 배에 힘을 주는 것을 아직 잘 못해서 온몸에 힘이 저렇게 들어가는 거란다. 하찮고도 위대해라. 똥을 싸고 나서 기분이 좋은지 씨익 하고 웃는걸 보면 똥을 자주 쌌으면 좋겠다. 



신생아가 하는 제일 중요한 다섯 가지 일은 

1. 먹기

2. 트림하기

3. 놀기

4. 싸기

5. 자기

이다. 어쩌다 사회적 미소 짓기(*웃음이 진짜 웃고 싶어서 웃는게 아니라 돌봐주는 사람에게 생존을 위해 보라고 나오는 웃음이라고 한다)나 옹알이 한두 마디는 서비스.

트림과 쉬와 똥을 해내면 아이가 하는 일의 절반을 한 것이라 굉장히 열일하고 있는 것이니 똥을 싼 그날은 잘했다고 궁디 팡팡 해주면 된다. 사실 우리가 하는 일도 뭐 다를게 있나 싶다. 뭐가 들어가면 잘 나와야 하는 것. 이상한게 들어가서 나쁜게 나오게 하지 말고 좋은거 들어가서 잘 소화하고 잘 싸야 한다. 그게 뭐든. 그래야 몸도 마음도 튼튼해질 수 있다. 


똥강아지야 엄마가 좋은거 먹고 좋은거 줄테니 오늘도 기저귀 한가득 잘 부탁해.

이전 04화 신생아 육아는 걱정의 연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